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안전문제는 다른 정치적 문제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해외학자들의 시국선언도 나는 하지 말자고 주장했었다. 구체적인 대책을 내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정치적 대결로 이끌 것으로 염려해서. 


도대체 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지 그 구체적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박근혜정부는 굵직한 대책을 내놨다. 지지율 관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 대책이 제대로 된 대책이 맞는가? 


박근혜 담화문은 사고 원인은 (1) 민관유착, (2) 비정상적 사익추구 때문이고, 사고 대처 미숙은 (3) 조직의 부재 때문이라는 거다. 따라서 대책은 (1) 민관 유착에 대해서는 퇴직공무원의 유관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2) 비정상적 사익추구는 정부가 일단 보상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3) 조직 부재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거다.


나는 셋 모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박정희 시절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분석한 사회학자 피터에반스의 "적절한 수준의 민관유착"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지. 유엔의 저개발국 개발 모형, 인적 자원의 활용의 모범 사례로 소개되었던 한국의 고시제도를 기억하는 분들은 없는지.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공무원을 "관피아"라고 부르면서도 국가의 행정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감은 한 편으로는 부럽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공포스럽다.


셋 중에 사고의 원인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게 비정상적 사익추구인데, 비정상적 사익추구는 그에 대한 적절한 형별을 가해야 하는데, 그걸 왜 징역형으로 한정하는가? 선 정부 보상 후 구상권이나 장기징역형이 아니라 징벌적 보상제도를 만드는게 먼저 아닌가? 박근혜의 방안은 사익 환수를 대형 사건 이후로 한정시키는 것 아닌가?


가장 염려되는 건 국가안전처. 국가안전처는 미국의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참고한 듯 한데, 미국의 이 조직은 막강한 권한과 정보의 집중으로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다. 안전 문제를 핑계삼아 또 하나의 공안조직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국가안전처의 수장은 장관도 아니라 아마 국회 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회 눈치 안봐도 된다. 막강한 권한으로 볼 때 청와대의 입김없이 임명될 수 없는 자리지만, 청와대 직속이 아니라 문제가 될 때 그 책임은 국무총리에 떠 넘기면 된다. 


이명박 시절에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사람이 국무총리실 차장, 박영준 국무차장이었다. 정보와 조직을 갖추게 될 국가안전처가 합법적으로 박영준 국무차장이 했던 사찰 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건가? <특수재난본부>의 통신 인프라 재난 예방, 대처가 정보의 집중 없이 가능한건가?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대책을 내놨는데, 그 대책은 핵폭탄급 조직 변화다. 앞으로 구체적 원인을 따지는 지리한 일이 남았는데, 그 일을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ps. 매뉴얼을 안지키는 일처리 습관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한국의 헌법은 국무총리의 권한이 상당히 세다. 그래서 국무총리의 권한이 실제로 센가? 우리는 헌법에 쓰여진 매뉴얼도 곧이곧대로 지키지 않는다. 국가안전처, 행정혁신처 만들면 국무총리가 갑자기 책임총리가 되나? 


pps. 말실수도 아니고 대통령 담화문에 선장을 살인행위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살인으로 기소한다 하고, 도대체 어느 민주국가에서 이럴 수 있는지. 책임방기, 의무방기가 살인이라는 논리는, 세월호 참사 구조실패의 책임이 있는 박근혜 정부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시위를 벌이는 논리와 유사하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박근혜 정부가 살인정부라는 논리에 동의하나? 그러면서 시위는 왜 막나.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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