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다 읽었다. 색인 주석 포함 685페이지. 


이 책에서 피케티가 주장하는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자본이익률이 역사적으로 constant로 4-5%였는지에 대한 사실 판단 자체를 못한다. 그래서 비평은 못하겠고, 간단한 독후감이나.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는 부(Wealth)의 불평등 문제를 매우 단순한, 그러면서도 파워풀한 논리로, 구체적인 자료를 이용하여 제기했다는 점이다. 


부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 보다 훨씬 심각한 건 누구나 알지만, 그 의미가 뭔지, 그게 중요하기나 한건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에서 20세기 후반의 부자는 자산 부자가 아니라 자기가 일해서 돈 번 Working Rich인데 부(Wealth)는 노동소득(Earnings)의 부속물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 역시 수업시간에 그렇게 가르쳤다. 


피케티는 역사적으로 노동소득보다 부의 중요성이 컸고, 20세기가 예외적인 시기였지만, 21세기는 20세기 이전의 노동소득보다 자산소득의 중요성이 컸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단 3가지 법칙을 가지고 매우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단순한 법칙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아내는 elegant한 논리와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의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는 넘들이 밝혀주겠지. 



두번째로 나같이 인구학과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 보기에 놀라운 점은, 인구학과 거시경제학, 계층론을 모두 통합하여 이론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율의 요소분해에는 인구성장률이, 부의 집중을 설명하는데는 출산율이, 총국가소득에서 유산/증여가 차지하는 비율에 대한 공식에는 사망률이, 미국이 유럽과 다른 점을 설명할 때는 이민인구의 비율이 등장한다. 


계층론에서 형제자매의 수가 교육투자에 끼치는 영향 등은 많이 연구했고, 최근들어 불평등의 multigenerational 관점이 제기되긴 하였지만, 자본주의의 역사와 형제자매의 수를 연결시키는, 인구학적 현상을 거시경제학과 연결시켜 큰 이론을 제기한 학자는 일찌기 없었다. 인구학자들 간 좀 키워야겠다. 



세번째로 팩트의 제시다. 이 책은 근거와 자료, 팩트의 파워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가 제기한 몇 가지 법칙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고, 어떤 주장은 오직 역사가 그 타당성을 밝히겠지만, 그가 제시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근거는 매우 구체적이다. 이 근거 제시만으로 피케티는 그가 지금 받고 있는 크레딧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한국 사회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 중 1인으로 가장 뼈아팠던 문장은 책의 맨 마지막에 인용한 Bouvieer, Furet & Gillet의 책의 한 구절이다. 


"현대 사회의 여러 계급의 소득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역사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


한국 사회의 소득 자료가 얼마나 엉망이고, 여러 계급의 소득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통탄할 문장이다. 한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사회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기울여야 할 노력은 소득과 부에 대한 객관적 자료의 확보와 확산이다. 자료가 없는게 아니라 자료가 숨겨져 있다. 학계 전체의 자료 확보와 확산을 위한 노력이 너무 미미하다. 



네번째로 여러 사람들이 얘기했던 발자크, 오스틴 등의 문학을 경제학 글쓰기에 들여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수준이 단순히 문학 작품을 인용했다 정도를 넘어선다. 당시의 소설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었던 사회과학적 배경까지 제시한다. 재미있다. 



다섯번째로 순전히 개인적 깨달음으로 1차 대전의 중요성이다. 나름 2차 대전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1차 대전이 유럽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체제의 시작은 2차 대전 이후였지만, 그 전 체제의 종말은 1차 대전의 시작이었다. 러시아 혁명이 1917년이었던 것도 더 잘 이해되고. 



여섯번째로 대안을 제시하는 4부에는 쓸데없는 얘기가 너무 많다. 설득력도 떨어지고. 



어쨌든 완독자/구입자의 비율의 가장 낮을 것이라고 얘기되는 책인데, 분자와 분모에 모두 기여한 1인이 되었으며, 이 책 얘기 나올 때 마다, "읽어는 봤나"라는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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