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 칼럼


... 뉴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 ... 응급실 이송요원은 (관리) 대상자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정규직원이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섰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박 시장을 향해 “흑색선전과 계급 선동을 중단하라”고 비난했다. 메르스 사태가 급기야 계급투쟁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일까. 


... 모든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건 사회과학의 상식이다. 같은 사회에서 빈자가 말라리아, 폐렴, 에이즈(후천면역결핍증) 등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부자보다 높다. 질병의 계급성은 전염병에 한정되지 않는다. 만성질환도 계급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비만도가 높고,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으며,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낮다.


... 그러나 불평등이 일으키는 여러 사회적 병리현상은 가난한 사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불평등이 빈곤층 문제로 제한된다면 부유층에게 불평등은 감성적 불편함이나 도덕적 이슈일 뿐 그들이 당면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불평등은 사회 전체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심해지고 빈곤층이 늘어나 이들의 건강이 악화되면 의료보험에서 빈곤층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지출이 늘어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빈곤 구제를 위한 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불평등 증가로 범죄가 늘면 치안에 소요되는 자원이 늘어난다. ... 이 모두가 사회 전체가 세금을 걷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고, 추가 재정수요의 큰 부분을 부유층에서 담당해야 한다.


... 하지만 부유층도 불평등을 줄이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이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회 전체의 간접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윌킨슨과 피킷의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은 빈곤층뿐 아니라 부유층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프2’에서 가로축은 지역 내에서 소득 수준이고 세로축은 사망률이다. ‘그래프2’의 실선은 불평등 수준이 높은 지역의 평균이고, 점선은 불평등 수준이 낮은 지역의 평균이다. 모든 지역에서 부유층의 사망률이 빈곤층보다 낮다. 그런데 불평등이 낮은 지역은 불평등이 높은 지역과 비교해 모든 계층에 걸쳐 사망률이 낮다. 불평등을 낮추면 빈곤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과 부유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 바이러스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응급차 이송요원이 옮기는 전염병에 대해서는 똑같이 위험하다. 삼성서울병원 용역업체 이송요원이 비정규직이어서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게 질병의 계급성을 드러냈다면, 이로 인해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감염 위험이 확대된 것은 계급의 문제가 어떻게 사회 전체 문제로 전환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사례 하나는 우연히 겹친 단순 실수일 것이다. 설령 비정규직 차별이 상존하더라도 삼성서울병원과 정부에서 관리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평등이 높고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 그래서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이 같은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가능성을 낮추는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 질병의 계급성을 줄여 모두가 안전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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