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에 넘긴 글이고, 디턴이 한경에 책을 회수 및 수정을 요구함으로써 판이 정리된 이슈지만, 그래도 경제성장에 대한 디턴과 피케티의 견해 차이는 추가로 얘기할만하다고 생각. 


... 한국 언론의 노벨상 기사는 디턴이 어떤 업적이 있기에 노벨상을 수상했는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노벨상 보도마저 이념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 엿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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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불평등, 특히 선진국에서의 불평등 증가에 대한 디턴의 생각은 ‘불평등이 성장의 기회’라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오히려 소득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민주주의라는 정치 문제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정치경제학을 복원하는 피케티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태도에서 디턴과 피케티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 언론은 피케티를 성장 반대론자처럼 보도하지만, 피케티는 그의 책에서 경제성장의 위대함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다. 디턴과 피케티 모두 경제성장은 많은 인류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기술한다. ... 피케티에 따르면 높은 경제성장률은 세대 간 사회이동, 즉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쉽게 만든다. 경제성장의 긍정적 효과를 부정하는 견해는 디턴의 것도, 피케티의 것도 아니다.


피케티가 자본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 20세기 인류가 누렸던 경제성장을 앞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턴과 피케티의 의견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하지만 디턴은 미래 경제성장률 예측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 역시 낮은 경제성장률에서는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경제성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으로’ 전망한다. 다만 이러한 그의 희망은 선진국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현재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의 경제성장 가능성에 방점이 찍힌 희망이다.


미래 경제성장률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피케티의 고유한 주장도, 좌파 학자들만의 레퍼토리도 아니다. 경제성장론의 대가 가운데 한 명인 로버트 고든도 앞으로 선진국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것이라 주장했고, 보수적 경제학자로 피케티를 비판했던 타일러 카우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도 장기 저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제성장률 1%는 재앙처럼 느껴지지만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초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연 1% 정도였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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