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과 소득 불안정(income instability / fluctuation)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보통 공시적 자료로 한 시점에서 파악하고, 후자는 통시적 자료로 개인의 생애사를 추적해 파악한다.


최근 한국 자료를 분석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불안정성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최근 7-8년 간 소득하층의 소득이 올랐고, 30-50대 내부의 불평등도 줄었다. 


20대가 예외적으로 소득도 감소하고 내무 불평등도 커졌지만, 이들도 20대 개인이 아닌 가구 전체의 소득으로 계산한 가처분 소득을 보면 다른 세대와 다를 바 없이 생활수준이 다소나마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소득은 20대에 낮고, 30-50대 초반까지 상당히 괜찮다가, 50대 중반 이후 절벽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50대 중반이후 30-40년간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축적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미래가 불안하고, 설사 1억 가까운 소득을 현재 올리고 있어도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혁이라니... 



주간동아 칼럼.


이렇게 얘기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 없겠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소득불평등은 줄어들었다. ... 객관적 기준으로 중간층이나 소득 상층에 속하는 비율은 전체 국민의 92%에 달하지만 자신이 중산층이나 상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53%에 불과했다. 중간층에 속한 국민의 55%가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지표의 이 같은 괴리는 객관적 지표가 중산층의 핵심 가치 중 하나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삶의 안정성이다. ...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직업 및 노동 안정성 결핍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015년 12월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근속연수가 높아지면 다른 국가에 비해 임금은 지속적으로 더 빠르게 상승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근속연수가 짧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의 보고를 보면 근속연수 1년 미만 단기근속자 비율은 3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고, 근속연수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은 1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 


한국의 비정규직이 받는 고통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한번 비정규직으로 밀리면 정규직으로 바뀌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물론 격차도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가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


일부에서는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 역시 2004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줄었기에 고용안정성이 낮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실제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중은 2004년 37%에 달했던 것이 2014년 33% 미만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55세 이상 중년·고령층에서는 이 기간 비정규직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0, 40대의 안정성 증대와 50대의 안정성 하락이 맞물린 셈이다. 상대적으로 고소득 중산층에 속하는 40대 역시, 지금 당장은 매를 피했지만 이내 내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태다. 노동생애 측면에서 안정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마저 미래를 불안해하는 이유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젊은 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명분으로 해고를 좀 더 쉽게 하는 개혁은 한국을 더 심한 헬조선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에서 기업가 정신이나 도전 정신은 주로 안정된 삶을 누리던 중산층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한국이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미래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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