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넷님 블로그에 번역된 폴크루그만의 2002년 칼럼


... 인간적,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9월 11일의 효과 자체는 군사 공격의 그것이 아니라 자연 재앙의 그것을 닮았다. 실제로 9월 11일과 1995년 일본을 강타한 지진의 효과 사이에는 기이한 유사점이 있다. ...


테러리즘을 영원히 축출했다고 우리가 선언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범죄와의 전쟁과 같다. 진짜 전쟁과는 달리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공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승리는 결코 최종적이지 않다. ...


현재 미국이 직면한 진짜 도전은 테러리즘 박멸이 아니다. 그것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도전은,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자유와 번영을 잃지 않으면서 테러리즘의 위협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고 근절, 재앙 근절, 테러리즘 근절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원초적 공포심을 느끼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다. 


테러리즘이나 안전사고, 자연재해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과도한 대응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이성적인 사회, 수준높은 사회는 이런 공포심을 극복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업하지 않고, 경제적 활동이 위축되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제한적인 대응을 하는 사회다.     


더민주당과 정의당은 인권 침해 독소조항을 이유로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보수언론은 테러를 당해봐야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겠냐고 협박한다. 개인의 자유는 테러방지라는 상대적 성공의 목표를 위해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가치라는 것. 한국 보수가 자유주의의 전통이 아닌 전체주의에 경도되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일어나지도 않은 테러에 대해 이런 식으로 협박하니 실제로 테러가 일어나면 어떤 광풍이 몰아칠지 섬찍하다.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테러방지법을 비판하는 이한 변호사님의 글을 추천한다. 


... 이런 식의 실체적 요건을 널리 규정해 놓으면, 내국인의 통신제한의 경우 절차적 요건으로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영장을 요하고 있는 절차적 요건도 유명무실해진다. 왜냐하면 실체적으로 저런 광범위한 활동에 필요한 것이라면 판사는 법률에 따라 영장을 발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제처분이 지켜야 하는 실질적 적법절차(due process)를 완전히 어긴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은 허핑턴포스터에서 잘 정리해 두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테러나 재해에 대한 성숙한 대응의 사례는 노르웨이가 있다. 


슬로우 뉴스: 테러 겪은 노르웨이는 왜 테러방지법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경찰의 대응이 늦어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며 안전 증진과 테러방지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과 싸우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려운 원칙을 두고 여러 그룹이 줄다리기를 했다. ... 


77명이 숨진 노르웨이의 테러 후 노르웨이 사회가 보여준 숭고한 노력, 두렵지만 테러를 방지하겠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모습이야 말로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다.  



 


ps. 이 시점에 굳이 상기할 필요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세월호 사건에 우리 사회, 특히 진보 진영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재난, 사고, 테러에 대응하는 열정적 태도는 개인의 자유와 그 사회의 번영을 해친다. 대형 사고와 테러는 근절이 불가능한 사건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번영을 위한 절제된 행동. 이것이 테러와 재난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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