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글


우리나라에서 현재 최고세율은 38%이다. 1억5000만 원이 넘는 소득분에 대해 이 세율로 세금을 부과한다. ... 한국 명목세율은 미국과 비교해 그닥 낮지 않지만, 여러 공제 때문에 실효세율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크게 낮다. 고소득자뿐 아니라 중산층도 실효세율이 낮다. 이 때문에 한국이 복지국가로 이행하려면 고소득자와 중산층이 모두 세금을 더 내는 ‘보편적 증세’가 꼭 필요하다. 그럼 보편적 증세만 필요하고 고소득에 대한 높은 ‘최고세율’은 필요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높은 최고세율은 세후 소득 불평등을 낮출 뿐 세전 소득 불평등을 낮출 순 없다. 불평등의 주된 이유은 재분배가 아니라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차적 분배 때문인데, 재분배 문제에만 천착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문제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 임시방편으로 세금만 올린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최고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최고세율 인상이 세전 소득의 불평등까지도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19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최고세율 변화를 살펴보자. 1913년에는 7%에 불과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최고세율은 1917년 15%에서 67%로, ...전쟁이 끝난 후 25%로 다시 낮아진 최고세율은 대공황이 발발하면서 63%로 올랐고 이어 79%까지 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44년에는 94%에 이르렀다. ... 70년대에도 최고세율은 70%에 머물렀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70년대 후반 한국 근로소득세의 최고세율은 70%에 달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최고세율은 50%였다. 최고세율이 지금처럼 40% 아래로 떨어진 건 21세기 들어서다. ...


미국 역사상 가장 높았던 94%의 최고세율이 적용된 1944년의 명목 과세구간은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이었다. 현 가치로 환산하면 연 260만 달러를 넘는 소득분에 대해서만 94%라는 세율을 적용했다는 이야기다. 한화로 바꾸면 연 31억 원 이상에 해당한다. ...


당시 최고세율은 아주 높은 소득에만 적용됐으므로 이 정도 소득을 올린 납세자의 비율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60년대 전체 납세자의 0.0001% 이하가 최고세율을 적용받았다. 이들이 납부한 총 세금도 전체 세수의 0.1% 미만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


그렇다면 높은 수준의 최고세율이 어떻게 세전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지만 최고세율이 높았을 때 이 세율을 적용받는 고소득층의 수가 적었다는 데 비밀이 숨어 있다. 


개인 소득은 그가 시장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라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 논리란 ... 시장행위자 사이 역학관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강하면 임금 협상에서 노동자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더 관철된다. 높은 최고세율은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공동체의 합의나 압력에 의해 작용한다.


그러한 사회적 압력의 결과로, 또한 부분적으로는 고소득층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로 최고세율이 높을 경우 고소득층은 그렇게 많은 소득을 추구하지 않는다. 31억 원이 넘는 소득분의 91%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이처럼 높은 연봉을 받으려고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노력할 동인이 떨어진다. 그 결과 세전 불평등이 감소한다. ...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데, 한국에서 중산층의 조세 저항이 매우 심함. 중산층의 조세저항은 부자는 세금을 조금내고 월급쟁이인 자신들만 많이 낸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음. 조세저항을 극복하고 보편적 증세를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고소득에 대한 최고세율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즉, 경제적 필요성도 있지만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최고세율 인상이 필요함.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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