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발휘해서 사고실험을 해보자. 역사가 달랐다면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호남패권주의는 가능했을까? 


많은 논의들이 정치적 패권이 지역 경제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영남의 정치적 패권주의로 영남이 발전한 것이 아니고, 영남이 발전해서 영남의 정치적 패권이 가능했다는 것. 달리 말해 정치와 경제 모두를 포괄하는 영남패권주의를 가능케하는 물질적 조건은 있었지만, 호남패권주의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은 없었다는 것이다. 


영남 정치 권력은 영남의 경제적 발전을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 일치시킬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지역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지역민들에게 지역출신 정치인의 권력유지를 통해 지역 발전이 가능하다는 허위의식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호남의 정치적 패권주의는 설사 일시적으로 시도했더라도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가의 경제적 발전을 지역의 경제적 발전과 일치시키기 어려운 물질적 제약때문이다.   


김대중 정권 동안 호남지역 발전이 지체된 것은 IMF사태라는 경제 위기 이후의 회복 과정이 영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물질적 한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논의 중인 조선산업 구조조정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지역은 영남일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아래 그래프는 지난 1세기 동안 영호남의 인구 변화다. 영남의 인구는 1925년부터 90년까지 선형적 증가를 보이는 반면, 호남의 인구는 1925-1940년 사이의 공업화 기간 동안 인구가 감소하고, 1970-2000년 사이 산업화 기간 동안 인구가 감소한다. 


일제 초기인 1925년에는 호남의 인구가 영남의 인구보다 많았다. 1940년이 되면 1925년 대비 영남인구는 150만명, 비율로 40% 증가하지만, 호남인구는 오히려 줄어든다. 영남 패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1930년대 공업화 과정에서 이미 영호남의 인구는 역전되었다.  


한국의 최초 철도는 경인선이고, 경부선은 1905년에 개통되는데, 호남선은 1911년이 되어야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된다. 당시 조선이 농업국이고 호남평야의 식량 생산량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의 첫걸음인 철도 부설은 경부선이 먼저다. 


이 후 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변기에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이루어진다. 영남, 그 중에서도 경남 지방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 기간 호남의 인구 증가율은 영남의 절반에 불과하다. 당시의 인구이동은 난민이 주라고 할 수 있는데, 난민은 경제적 기회가 있는 도시에 집중된다. 1950-60년 사이 박정희 정권 집권 이전에도 호남의 인구 증가율은 영남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이후 70-80년대 TK 패권이 창궐하던 시기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곳은 대구경북이 아니라 부산경남이다. 산업화 전시기에 걸쳐 경남의 인구가 경북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였다. 1925년에는 경북 인구가 경남보다 40% 많고, 박정희 집권 전인 1950년대만 해도 경북의 인구가 경남보다 많았으나 지금은 경남의 인구가 경북보다 60%이상 많다. 



그래프. 지난 1세기 동안의 영호남 인구 변화 (단위, '000)




대부분의 국가에서 산업발전 초기에는 지역 불균형 발전이 이루어진다. 미국의 경우에 North 지역 대비 South (특히 deep south) 지역의 1인당 소득 수준의 격차가 해소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산업화가 먼저 이루어진 북부지역과 농업지역이었던 남부 지역의 1인당 소득 격차 해소에 남북전쟁 이후 130년이 걸렸다. 


한국도 영남, 특히 경남의 발전은 패권주의가 아닌 지리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최근의 영남경제 침체는 2차 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수명이 다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3차 산업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영남 정권이 아니라 영남 정권 할아버지가 와도 이 경향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화는 서울-부산을 중심으로, 정보화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라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영남, 특히 경북이 패권주의에 기반하여 경제적 이득을 본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구미산업단지가 대표적 예. 아마 영남 정권이 아닌 다른 정권이 산업화를 주도했으면, 지금보다 국토균형발전은 더 잘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정권이 집권했더라도 서울-부산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은 작다. TK가 집권해도 발전은 부산-경남에서 이루어지고, 영남패권이 여전해도 경북의 침체를 막을 수는 없다. 정치적 논리에 의한 자원 분배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설사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더라도 국가 전체의 경제적 변화에 의해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을 국가발전으로 등치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세력은 지역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이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세력은 지역주의를 국가 권력 취득과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기 어렵다. 




요약하자면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의 영남패권주의는 영남의 산업화라는 지리경제적 필연성 (내지는 구조적 조건)을 영남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이용한 결과다. 


영남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서울-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구 이동은 불가피했다. 지역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 권력을 일치시킬 수 있던 영남 정치 세력은 지역주의의 혜택을 보고, 그렇지 못한 세력은 지역주의의 피해를 본다. 한국에서 지역주의를 이용하여 패권을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곳은 영남 밖에 없었다. 




ps.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인식을 현 상황에 대입하면, 


1) 투표를 통한 호남지역 경제발전이라는 국민의당의 목표는 설사 성공하더라도 장기적 성장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보다는 상징직 조치에 그칠 것이다. 


2) 앞으로 지역 패권주의가 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이유는 지역발전과 국가산업발전을 등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경제 패권은 수도권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3) 수도권 리버럴이라는 정치 세력을 고향으로 귀속시키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이들의 물질적 이해는 고향의 발전이 아니다. 


4) 산업화 과정에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정착한 호남인들이 그 때 고향에 머문 영남인들보다 90년대 이후 수도권 중심 3차 산업 발전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인생은 새옹지마.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