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치과 투어 썰

기타 2016. 5. 8. 02:13

본의 아니게 같은 치과 문제로 한국, 미국, 프랑스 3개국에서 5명의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는 진기한 경험을 하였다. 


파리에서 영어할 줄 아는 치과의사를 찾아 헤매는 그 아득함이란. 


남들은 파리의 낭만, 적어도 파리의 택시기사를 기억하는데, 나는 파리의 치과의사를 기억하게 될 줄이야. 


80년대 격동의 시절에 쓸데없이 과격하게 나대다가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려 영락없는 영구가 되고 말았다. 


그 전에도 과격한 행동을 하다가 방패에 입술 위를 찍혀서 성형외과에서 꼬맸는데, 꼬맨 자리에 실밥도 뽑기 전에 이를 다친 것이다.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돌이켜보면 이 치료과정이 코메디였다. 


시위 중 이를 다친 직후 학교에서 멀지 않은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치과의자에 누워 있는데 담당 치과 의사가 와서 입술 위에 꼬맨 걸 보더니 누가했는지 정말 꼼꼼하게 잘 꼬맸다고 감탄하며 옆에 있던 레지던트들 불러서 구경시킨다. 얼굴을 뚫고 입안까지 찢어진 "빵꾸"(정말 빵꾸라는 용어를 쓰더라)였는지 아니었는지 입술뒤집어 확인해가면서... ㅠㅠ. 다 아물었다면서 치과치료하기 전에 실밥부터 뽑았다. (실밥 뽑는 돈 굳었다고 내심 좋아했다.)  


대학시절부터 노가리 푸는 걸 좋아했는데, 당시 나의 동료들은 저거 물에 빠져 죽어도 입만 동동 뜰거라고 놀렸다. 입술과 이를 연속으로 다친 것은 인과응보라며 은근 고소해 하더라.  


발치 후 곧바로 치료를 해야 하지만, 하필 이 때 내가 다닌 학교 담당 경찰서에서 학생회 간부들 싹쓸이 검거에 나섰다. 간부 한 명이 구속되었는데, 면회간 친구에게 다음 타겟은 나라고 짭새들이 벼르고 있다고 알려준터라 바짝 쫄은 나는 집에도 못들어갔다. 엉겹결에 도바리 생활. 추가 치료도 못받고. 


일단 모양만 낸 플라스틱 틀니를 끼우고 몇 달 지내는데, 재채기하면 정말로 틀니가 튀어 나온다. 재채기할 때 손으로 입을 제대로 막는 아주 좋은 습관이 이 때 생겼다. 튀어나오는 틀니를 잡아야 하니까. ㅠㅠ 


시간이 지나 결국 브릿지를 씌웠다. 브릿지라는 건 없는 두 개 치아의 양쪽 치아를 깎아서 기둥처럼 만들고 이 위에 4개짜리 단단한 의치세트를 씌워 치과용 시멘트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당시에는 임플란트라는게 없여서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백그라운드 설명은 여기까지. 




세월이 흘러 사반세기를 넘게 지탱하던 고마운 브릿지가 지난 겨울에 한국에 갔을 때 간장게장을 먹다가 앞니 한 쪽이 부러졌다. 다시 영구가 되어 버렸다.  내가 다시 간장게장을 먹으면 성을 간다.ㅠㅠ


하필 12월31일이라 문연 치과도 없었다. 앞니 없는 갈갈이 상태로 세배를 하고, 산소도 다녀오고 ㅠ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1월2일 토요일에 오픈하는 치과에 가서 레진으로 임시로 모양을 냈다. 정말 깜쪽같이 만들어 주더라. 놀랄만한 실력이었다. 너무 감사~


그리고 가능한 롱텀 옵션을 알아보니 브릿지로 교체하면 140만원, 소요 기간은 맥시 5주 걸린단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바로 그 다음 주인데 ㅠㅠ


다른 옵션으로 가운데 2개는 임플란트를 하고, 기둥을 세운 2개는 크라운을 씌우면 총 400만원. 기간은 1년이 넘게 걸리고. 임플란트를 할 경우 일단 2개월 정도 치료받으며 기둥을 세운 후 여름방학 때 다시 와서 검사하는 뭐 그런 스케쥴. 임시로 떼운 레진은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단다.  


중요한건 뭘 하든지 기둥을 씌운 2개 치아 신경치료 부터 하라고 한다. 왜 애초에 신경 치료를 하지 않았는지 의아해 하더라. 


이미 한국에서 3달 가까이 지내며 호텔과 기숙사에서 지낸터나 너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외지 생활 3달 하니 홈 스윗 홈의 의미를 절로 알게 되더라. 게다가 멀쩡한 치아에 왜 신경치료를 하라고 하는지 마구 의문이 인다. 쓸데없이 구글링을 하니 대부분의 미국 치과의사들은 브릿지나 크라운 할 때 신경치료가 필요없다고 써놨더라. 


미국으로 돌아오는걸 미룰지 최종 판단을 위해 알고 있던 다른 치과의사로 부터 다시 검사를 받았다. 신경치료부터 해야한다는 똑 같은 의견인데, 레진으로 모양을 낸 치아가 의외로 오래갈 수도 있고, 신경치료가 100%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일단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여름에 한국에 다시 올 때 시간 여유를 가지고 치료를 하란다. 앞니로 씹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도 주고. 


오호라. 내가 듣고싶은 대답인지라 바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두 명의 치과의사를 만났다. 





미국으로 돌아와 정기 치과 검진을 위해 담당 치과의사를 찾으니 한국에서 레진으로 떼운 것을 보고 정말 실력 좋다고 감탄한다. 자기는 그렇게 못한다고 솔직하게 고백도 하고. 신경치료가 필요하냐고 물으니 엑스레이 찍어보더니 필요없단다. 일단은 레진으로 떼운걸로 지내기로. 


마구 느슨하게 생활하다가, 어느날 아침 베이컨을 먹는데 딱딱한 부분이 레진으로 떼운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레진 탈락. 앞니 빠진 영구로 귀환.


치과에 연락하니 바로 오란다. 갔더니 내 담당의사는 금요일 휴가라 없고 다른 의사가 있더라. 이 의사의 의견도 동일. 신경치료 필요없고, 브릿지 교체는 아주 간단하고 루틴한 작업이란다. 


한국의 두 의사가 모두 신경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던 반면, 미국의 두 치과의사는 필요없다고 의견이 일치한다. 국가에 따라 치과의 메이져 결정 중 하나인 신경치료 의견이 달라진다. 한국의 과잉진료인가?  


견적을 받아보니 신경치료를 안하고 브릿지 하는데 총 400만원이란다. 보험카바되어서 230만원. 신경치료 하면 총 600만원이고, 보험카바되면 350만원. 한국에서 보험없이 치료받는게, 미국에서 보험을 가지고 치료받는것 보다 200만원 넘게 싸다.ㅠㅠ   미국의 살인적 의료비를 실감. 


여름에 한국갈 때까지 영구인 상태로 버티고 싶었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았고, 게다가 1달 뒤에 프랑스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한국은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미국은 필요없다고 하니, 이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신경치료한 치아는 크라운을 씌워도 그렇지 않은 치아보다 손상되기 쉽단다. 가격 차이가 90만원 나지만, 그 정도 차이는 한국에서 추가로 머물렀을 때의 체류비를 생각하면 감당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기존 브릿지를 빼고 기둥치아를 다듬었다. 퍼머넌트 브릿지가 완성될 때까지 임시 플라스틱 브릿지를 씌워준다. 플라스틱 브릿지가 투박하고 이물감이 있었지만, 뭐 임시치아이니 그러려니 했다. 


황당했던 건, 플라스틱 브릿지는 임시 시멘트로 붙이는데, 이게 잘못하면 빠질 수 있단다. 그래서 나한테 준게 임시 시멘트 키트다. 빠지면 병원에 다시 올 필요없이 물로 씼어서 시멘트 바르고 알아서 다시 끼워넣으면 된단다. 참나. 


구글링을 해보니 치과용 임시시멘트는 미국 약국에서 많이 판다. 임시 브릿지 빠지는 정도로는 병원을 안가는게 천조국 국민들의 위엄이다.


플라스틱 브릿지로 3주를 버텼는데,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원래는 2주 걸린다더니 중간에 전화와서 내거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1주 미루더라. 한국에서는 10일 정도면 된다는데 ㅠㅠ.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너무 그립더라. 


그렇게 힘든 3주를 지내고 퍼머넌트 브릿지를 하기 전날, 밤에 기분 좋게 맥주 한잔을 병채로 들이키는데, 어이쿠 먹자마자 기둥치아 한 쪽이 갑자기 너무 아팠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맥주 먹는걸 중단해야 하지만, 내일이면 병원가서 치료받으니 괜찮다고 위로하며,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여 아픈 기둥치아에 맥주가 닿지 않게 마셔보니, 의외로 먹을만 한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어 맥주를 입안에 따르며 마시다, 문뜩 이거 미친 놈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ㅎㅎ  


마침내 퍼머넌트 브릿지를 하러가서 그간 겪은 고충과 증상을 얘기했더니, 의사가 이것저것 검사한다. 양쪽 치아 중 한 쪽은 신경이 손상되어서 신경치료를 해야 한단다. 아니 3주 전에는 필요없다면서요? 다른 쪽은 멀쩡하댄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한 쪽은 신경치료하고 다른 쪽은 안하고 브릿지를 강력 시멘트를 발라 부착하였다.  


그 후 이틀을 해피하게 지내고, 3일째. 허걱. 라면을 먹는데 뜨거운게 닿자마자 신경치료하지 않은 기둥치아가 너무 아픈거다. 주말을 통증을 안고 지내고 월요일 긴급하게 의사를 다시 만났다. 수요일부터 프랑스 여행인데, 걱정만 한가득. 


엑스레이를 다시 찍더니 아무 이상 없단다. 브릿지 높이 문제라고 약간 갈아서 조정하고 끝냈다. 프랑스 잘 다녀오라는 친절한 인사와 함께... 





그리고 수요일 예정대로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신경치료 하지 않은 기둥치아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코 옆, 잇몸 윗쪽을 누르니 살짝 통증도 느껴지고. 망할 놈의 미국 치과의사!


그러더니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잇몸 위에 농양이 차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통증도 동반하고. 안그래도 프랑스 음식이 맛이 없어서 투덜대고 있었는데, 이까지 신통치 않으니 음식이 맛이 있을리가. 도대체 어떤 놈들이 프랑스 요리가 맛있다는 거야. 


드디어 참는데 한계에 달해서 영어할 줄 아는 파리의 치과의사를 찾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에 일하는 치과의사는 아무도 없더라. 호텔에서 알려준 주말대기 의사에게 연락했더니, 정 못견디겠으면 응급실로 가라면서 한국으로 치면 119 번호를 알려준다. ㅠㅠ  


파리에서의 주말을 그렇게 아픈 이를 부여잡고 지내고, 월요일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드디어 파리의 치과의사를 만났다. 


이 의사는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왜 처음부터 안했는지 의아해 하더라. 한국의사와 프랑스 의사의 의견이 일치하고, 미국 의사의 의견만 달랐던 것.  


결국은 한국 치과의사의 처음 진단처럼 두 개 기둥치아 모두 신경치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보험없이 신경치료 비용은 400유로. 미국에서 보험없이 했을 때의 절반값이다. 


프랑스 치과에서 특이했던 점은 엑스레이를 의사가 직접 찍더라. 한국과 미국은 간호사가 찍었다. 


그리고 치과의 리셉셔니스트가 의사보다 영어를 잘했다. 상당한 미인이었고. ㅎㅎ


나도 파리 다녀와서 채훈우진아빠님과 같은 인텔렉츄얼한 여행기를 올리고 싶었다. 멋있는 사진도. 빠리 쿄뮨 공동묘지를 본 느낌 그런거. 하지만 에펠탑을 봐도, 개선문을 봐도 감회가 없다. 이만 아쁘지. 


내가 강력한 느낌을 가지고 공유할 수 있는 사진은 에펠탑이 아니라 팬시한 치과 대기실이다. 아래의 사진이 내가 간 파리의 치과 대기실이다. 


파리의 치과 건물은 아무런 간판도 안내도 없다. 가정집을 들어가는 건지 상업건물을 들어가는건지도 구분이 안되더라. 건물 내에도 몇 층인지 안내문도 없고. 한국의 간판 덕지덕지 붙은 건물이 그립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최종 신경 치료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했다. 그 후에도 작은 문제들이 계속되어 여러번 치과를 다시 들락거렸고. 


그렇게 장장 4개월에 걸쳐 3개국 5개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으며 브릿지를 교체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아편성분이 들어 있는 강력 진통제. 


이거 자주 먹으면 아편 중독된단다. 아직 여러 알 남아있다. ㅎㅎ





* 치과 치료 가격 비교


미국 >> 프랑스 >> 한국


정말 미국은 말도 안되게 비싸다. 신경치료 하나에 보험 없이 100만원인데, 프랑스는 신경치료 한 번에 50만원, 한국은 10만원. 내가 가진 치과 보험은 이 중 절반을 카버해준다. 황당한 건 신경치료는 평생 두 개 치아까지만 카바해주고 나머지는 생돈을 내야 한다. 구체적인 카바 내용은 보험마다 다르다. 카바리지가 더 좋은 보험도 있고, 더 나쁜 것도 있다. 


보험이 있으면 비용이 싼 이유는 보험에서 돈을 내주는 것도 있지만 insurance write-off라고 보험 회사에서 지정하는 맥시멈 가격이 있다. 그걸 넘어가면 깎기로 병원과 계약이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보험수가라고 국가에서 이걸 해준다. 의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국은 보험수가가 상당히 싸다. 이래서 의료보험은 국가에서 관장하는게 좋다. 미국은 병원과 보험회사가 각각 계약되어 있다. 


또 황당한 것은 치과 보험이 맥시멈이 있어서 1년에 170만원 이상의 비용은 보험에서 카바를 안해준다. 그 돈 이상은 생돈을 내야 한다. 임플란트같은건 당연히 몇 천만원대의 비용이 나온다. 


의료보험, 특히 치과 의료보험은 한국이 울트라 캡숑이고, 미국 썩스. 



* 신경치료


도대체 왜 한국과 프랑스 의사들은 브릿지나 크라운 전에 신경치료를 디폴트로 실시하는데, 미국은 안하는 것일까? 주위에 물어보니 미국에서는 신경치료 안하고 센서티브한 신경이 가라앉을 때까지 몇 달을 고통 속에 기다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신경을 살리는 것이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는데 더 좋은 면도 있지만, 너무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10만원인데, 여기는 100만원이다. 


비용이 너무 비싸니까, 미국은 일단 안하고 고통 속에 버틴다. 결국 신경에 큰 문제가 생기면 브릿지 위로 구멍을 내서 신경치료를 하면 되고. ㅠㅠ 



* 치과의사들의 실력


프랑스 의사는 잘 모르겠고, 내가 겪은 소수의 의사만으로 판단하면 한국 의사들의 실력이 미국 의사보다 우수했다. 


한국은 수도 한복판의 유능하다고 알려진 개업의이고, 미국에서 내가 치료 받은 곳은 한적한 대학도시다. 두 국가의 실력차이가 실력있는 의사들의 지역적 분포의 문제인지, 아니면 한국은 치료비가 싸서 환자들이 부담없이 브릿지나 임플란트를 하고 그러다보니 의사들은 경험이 많아 더 좋은 실력을 쌓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미국은 가격이 비싸서 웬만해서는 비싼 치료를 안하고 그러다보니 의사들의 경험이 한국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큰 치과 문제는 웬만해서는 한국에서 하고 올 생각이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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