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 출산 양극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란 사회이동률이 높은 사회임. 출신계급이 성취계급과는 다른 사회. 많은 사람들이 상향이동만 생각해서 사회이동률이 높은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하는데, 높은 사회이동률은 용이 개천으로 떨어지는 사회이기도 함.  


사회이동률(social mobility)은 사회학에서 부모 세대의 상대적 위치와 비교해서 자식 세대의 상대적 위치의 변화로 측정하는 것. 따라서 순수한 의미의 사회이동률은 부모 세대의 경제발전 정도나 자식 세대의 경제발전 정도와는 무관한 개념임. 사회학 전문 용어를 쓰자면 structural mobility를 통제한 후 net mobility (or fluidity)를 계산해야 함.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이동률은 부모 세대의 상대적 지위와 자식 세대의 상대적 지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절대적 지위와 자식 세대의 절대적 지위를 비교함. 따라서 경제가 발전해서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비록 상대적 지위는 여전히 중간에 속해서 부모 세대에 비해 상대적 지위의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위가 올라갔다고 느낌.  




어느 사회나 사회이동률이 제로인 사회는 없기에, 언제나 개천으로 떨어지는 용이 있음. 왜냐하면 상대적 지위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이 개천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는 잘 느끼지 않음.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회이동률이 낮아서 출신계급과 성취계급이 같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얘기했듯,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설사 같은 코호트 내에서 상대적 위치는 부모 세대에 비해 하락하더라도,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와 비교해서 경제적 지위가 나아지기 때문. 


즉, 사회이동률이 낮거나, 경제발전 속도가 빠르거나, 둘 중 하나의 조건만 충족되어도 용이 개천으로는 떨어진다고 느끼지는 않음. 이는 사회이동률이 낮아도 경제발전 속도가 빠르면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착각한다는 얘기이기도 함.   


그런데 용이 개천으로 떨어지는 사회가 드물게 있는데, 그게 어떤 사회냐 하면 경제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고, 하위계층의 출산률이 상위계층보다 더 낮은 사회임. 하위계층의 출산률이 낮기 때문에, 상위계층 출신의 자식 중 일부는 상대적 지위의 측면에서 하위계층으로 떨어져야만 함. 이는 그냥 산수임.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건 다 아는 사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임. 낮은 경제성장률 조건 하에서 상층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됨. 사회이동률을 낮추는게 바로 자신들의 계급적 목표가 됨. 


그런데 위 경향신문 링크에서 보듯 한국은 출산률도 계층에 따라 양극화되고 있음. 소득하층은 대가 끊기고, 소득상층은 자식 중 일부가 필연적으로 하층으로 떨어지는 사회로 한국이 바뀌고 있다는 것. 





역사적으로 산업 혁명 이전의 영국사회가 이랬음. 소득 하층의 생활 수준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이들의 수명이 짧고,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낳지 않았음. 설사 자식을 낳아도 영아사망률이 높아서 살아남는 숫자도 적었음. 반면 소득상층의 출산률은 꽤 높은 편이었음. 그 결과 영국 인구 전체가 중산층 이상의 자손들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음. (하지만 영국에서는 곧 산업혁명이 이루어져 경제성장률이 폭등.)





어쨌든 위 기사에서 보도한 계층에 따른 출산양극화가 지속되면, 앞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장면은 못봐도, 용이 개천으로 떨어지는 꼬라지는 심심치 않게 보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 


인구성장과 경제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상향사회이동의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였던 한국이,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인구성장률이 계층별로 양극화되면서, 하향사회이동의 분위기가 지배적인 사회로 전환. 이런 사회의 전반적 모랄이 어떻게 망가질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함.  


출산율의 양극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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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