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한국의 불평등은 왜 1995년을 기점으로 확대됐을까?


최병천 전 국회의원 정책 보좌관의 글이다. 한국의 불평등 증가 시점이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아니라 1995년을 기점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그 원인은 IMF가 아니라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의 확대라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 근거도 없이 IMF를 불평등 증가 분기점으로 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왜 95년을 기점으로 불평등이 증가했는지 나름 해답을 제시한 것이다. 나 역시 이전부터 IMF 기원론이 틀렸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했고, 지난 해 한국불평등연구회에서도 "한국의 소득 불평등 변화 추이"라는 발표에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기에 매우 관심있게 글을 읽었다.


최병천 전보좌관은 정이환 교수의 "한국 고용체제론"에 근거해서 한국의 소득 불평등 확대의 원인은 기업 간 이중노동시장, 특히 기업규모별 이중 노동시장에서 찾는다. 이 글을 보고 정이환 교수 책을 꼭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병천 보좌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닌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995년이 모든 불평등 증가의 분기점인 것은 아니다. 아래 그래프들은 지난 해 한국불평등연구회에서 발표했던 내용들이다. 


첫번째 그림은 가계동향조사에 기반해 소득을 균등화하고 그 후 불평등지수를 계산한 것이다. 이 지수가 OECD 등에 보고되는 한국의 공식 소득 불평등 지수와 가장 유사하다. OECD 소득 불평등 지수는 모두 균등화 소득을 이용한다. 


보다시피 소득 불평등 증가 시작 시점은 1995년이나 1997년이 아니라 1992년이다. 90년대 중반보다 더 일찍 소득 불평등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균등화 소득이 아니라 노동자의 개인소득으로 한정해도 1995년 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그림에서 1995년을 기점으로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BSWS) 자료다. 가계동향조사(HES)는 이 보다 1-2년 빠르다. 


Gini가 아닌 90분위 소득과 10분위 소득의 상대비로 보면 소득 불평등 증가 시점은 1993년이 된다. 


이러한 실증자료는 불평등 증가의 IMF 충격설에 대한 반증으로 충분하지만, 1995년을 새로운 터닝포인트로 확정해주지 않는다. 


2-3년 격차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1995년에 벌어진 event나 거시경제적 상황논리로 소득불평등 증가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일련의 움직임을 보다 폭넓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1. 가계동향조사 기반 가처분 균등화 소득 Gini & 상대빈곤율 변화



그림 2. 노동소득 불평등 Gini 변화 (한종석 외 2015)




두번째로 과연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로 불평등의 전반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정이환 교수가 2015년 한국사회학지에 발표한 "한국 임금불평등 구조의 특성"이라는 논문이 있다. 이 논문에서 정 교수는 "외국에 견주어 한국에서 성(性)과 기업규모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규모의 효과와 관련해서 "한국의 특징은 고임금층에서 대규모 기업체와 여타 규모 기업체 간의 격차가 현저히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 교수는 이에 덧붙여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큰 것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의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일차적으로 대기업의 고임금 근로자들이 누리는 혜택의 문제라는 사실도 밝혔다."고 말한다. 


기업규모의 상대적 중요성이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클 수 있지만, 한국의 불평등 증가가 기업규모에 따른 격차 확대라고 결론내리기에는 타 국가의 기업규모 간 격차도 작지 만은 않다.  


기업규모 가설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는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기업규모의 중요성은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신경제의 출현과 함께 기업의 세분화가 심화되었고 기업에서 핵심노동자 외의 인력을 외주화하는 경향이 커졌다. 기업 간 격차는 커졌지만, 기업규모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불평등 증가의 기업규모 격차 확대설은 한국만 전세계적 조류와 다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정말 그런가? 기업규모에 따른 소득 격차 확대가 일부 기여했을 수는 있지만, 이 요인이 전반적인 불평등 증가의 주요 원인인지는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사례가 될 것이다.  




세번째로 최병천 보좌관의 요약을 보면 기업규모간 임금 격차 확대 이중구조의 기원을 1987년으로 본다. 불평등 증가 원인을 1987년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위 두번째 그래프에서 보듯이 한국의 불평등은 1980년이후 1990년대초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이 불평등 대감소 시기의 중간에 위치할 뿐이다. 이는 1980년대와 90년대초까지의 불평등 감소의 원인이 노동자 대투쟁이나 그 때의 고용체제(즉, 기업규모별 소득 격차 확대)와는 무관한 다른 변화에 의해 추동되었음을 암시한다.   


1987년 이후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가 커졌음에도 불평등은 80년대초부터 90년대 초까지 꾸준히 줄었다. 정이환 교수는 이를 당시의 특수한 노동의 수요공급 상황으로 설명하는데, 이런 시각은 1980년 이후 지속된 불평등 감소의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 


1987년을 기점으로 불평등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이념적 기대일 뿐 현실의 변화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네번째로 조금 다른 얘기로 최병천 보좌관은 최근에 불평등이 다소 줄어드는 상황 역시 하층의 소득이 상승해서가 아니라 대기업에 종사하는 소득 상층의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본다. 


과연 그럴까? 아래 그래프는 예전에 올렸던 2008년 이후 한국의 불평등 변화 포스팅의 일부다. 붉은 점선이 2008년에서 2014년 사이의 소득분위별 소득상승률이다. 소득 분위를 10개로 나누었을 때 2008년 대비 2014년에 하위 10%의 소득은 35% 상승하였다. 이에 반해 상위 10%는 20% 정도 상승한다. 


2003-2008년 사이의 변화, 2008-2014년 사이의 변화가 모두 소득 수준에 따라 linear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는 소득불평등이 전반적 분포의 변화에 의해 추동된 것이지 특정 분위의 증가나 감소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변화 비율이 1 이상이라는 것은 적어도 장기적 측면에서 모든 계층의 소득이 상승했다는 의미이다. 소득불평등 감소를 상위 소득의 감소에서 찾는 시각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이론적으로 거의 소멸된 주장이다 (누군가 다시 쌈빡하게 다듬어서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중구조론에 입각해 큰 변화를 설명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가 다 실패했다. 구조론적 설명의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는 유용성은 크지 않다. 1980년대 미국 사회학계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지금은 이 이론에 기반해 현실의 변화를 설명하는 시도는 드물다. 이 관점이 한국의 불평등 변화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상당히 유용하다면 이는 한국사회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설은 무엇인가? 


나는 자본의 시장권력화가 1990년대 초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5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서 자본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하고, 세계화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유입되고, 개인의 성과 보상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87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자본의 조직적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자본이 employment stickiness에 대해 염려하면서 각종 입법으로 비정규직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라는 것이다. 


기업규모도 아니고, 고용형태도 아니고, 숙련편향기술발전도 아니고, 자본의 시장 대응이라는 게 나의 가설. 




어쨌든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90년대 초반이후 증가하기 시작한 원인,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소득 불평등이 다소나마 감소한 이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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