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로봇, 생산방식의 변화. 말들은 많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로봇이 일자리를 뺏아간다는 막연한 공포만 생기기 쉽다. 인터넷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올 때에도 혁명적 변화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IT 혁명으로 칭해지는 기술 발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대표하는 얘기가 바로, 


"우리가 원한 것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였지만, 우리의 손에 쥐어진 것은 140자의 트위터."


그런데 4차 산업혁명, 로봇, 인공지능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생산방식과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번에는 다를까? 


물론 나도 정답은 모른다. 그런데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닌 사람도 상당한 정확도를 가지고 예측해볼 수 있는 기준은 제시할 수 있다. 


그 기준은 집안의 장식과 풍경을 살피는 것이다. 이 방법은 Richard Gordon과 Brad DeLong이 그들의 책과 논문에서 제시했던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집안 거실에 티브이가 있고, 소파가 있고, 부엌에는 냉장고와 렌지, 개수대가 있다. 2017년의 영화에도 그 풍경이 다르지 않다. 티브이가 브라운관이 아니고 LCD인 것이 다르고, 냉장고와 커지고 타입이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만 해도 TV라는 것이 없었다.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은 화롯가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미국 시골지방에 수도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다. 냉장고가 보급되고 음식을 집에서 보관할 수 있게 된 것도 1930년대 이후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리창문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다. 그 전에는 집안은 빛이 안들어오게 문을 닫아두거나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그냥 들어오게 열어두어야 했다. 겨울에 집안은 매우 어두컴컴했던 공간이었다. 이 안에서 오랫동안 초를 키고 있으면 폐는 완전히 망가진다. 


부엌이 집안으로 들어온 것도 역사적으로 얼마되지 않는다. 상하수도의 완성이 1930년대고 가스레인지가 가정에 보급된 것은 20세기 초다. 장하준 교수가 얘기하는 세탁기의 위대함이란, 하루에 4시간씩 강가나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오던 노동을 줄인 것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의 완성으로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집안의 모습을 갖춘 것이 선진국에서 1950년대다. 그 이후로 집안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그 전 시대와 비교해 집안의 모습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는 혁명적 변화가 없었다. IT 혁명이라고 해봤자 집안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스맛폰이 들어온 정도의 마이너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글이 좀 늘어지기는 하지만 한국의 모습도 생각해 보면 경제변화를 집안 풍광의 변화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40대 후반 이상은 기억하겠지만 1970년대만 해도 도시에서도 화장실과 부엌이 온전히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엌이 집안에 있어도 따로 신발을 신고 1-2 계단을 내려가서 있는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빨래를 한 후 세탁물을 쥐어짜던 가사노동이 사라진 것도 "짤순이"가 보급된 1980년대 이후다. 빨래를 할 때마다 식구들이 모여서 빨래를 쥐어짜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족의 도움없이 혼자 여러 식구의 빨래를 하다보면 손목 다 나간다. 거실이 가족의 공동 공간이 된 것도 1980년대 중반 이후다. 그 전에는 안방이 가족 공간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냉난방 방식과 연료의 공급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4차 산업혁명, 자동화, 로봇의 등장이 집안의 풍광을 바꿀 것인지를 상상해보면, 이 기술변화가 혁명적이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발전은 "냉장고에 들어있는 채소를 꺼내 칼질을 하는 것"이나 "진공청소기로 청소한 후 걸레질"과 같은 인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은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에 로봇 기능이 들어와 인간의 반복적인 단순노동을 대체할 수 있게되면 이는 생산방식과 삶을 조직하는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집안에 필요한 appliance가 달라지는 그 시점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진짜 혁명이 되는 순간이다. 


이게 무슨 의미이지 아직도 상상이 안되면 성별 "가사노동분담"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라. 4차 산업혁명이 현실이 되면 이 주제는 없어진다. 분담할 가사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은 없다. 산업혁명으로 옷을 저렴하게 사서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만들어 입는 옷은 취미활동이지, 가사노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현대에, 텃밭은 취미활동이지 생산활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면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취미활동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까? 아마도 결국은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속도다. 대표적인 기술변화론자인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의 주장은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고, 고든같은 비관론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속도가 얼마나 붙을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앞에서 기술한 변화를 아직은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 설레발은 적당히 치는 것이 좋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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