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사: 학벌주의 심해지길 바라는 고대생글

국민일보 기사: 사이다 팩트 폭격이라는 반박글


고대생은 제공된 기회에서 내가 성공했으니 더 이상의 불확실성은 없어야 한다는 관점, 그에 대한 반박글은 대입 기회 제공이 완전히 공정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추가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얘기. 


최근 몇 번에 걸쳐 얘기했듯 학벌주의를 바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박글이 모두 공정한 기회 제공과 반복적 기회 제공을 이상적 사회로 그리고 있다. 두가지 논리 모두 기회균등 기획이라는 틀에서 나오는 사고다. 




그런데 설사 기회균등의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대생의 소망과 달리 학벌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다른 하나는 능력지표로써 가지는 교육의 한계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배제적 컨셉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현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어떤 활동은 기존 지식의 완벽한 습득과 반복을 요구하고, 다른 활동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혁신을 요구한다. 교육은 주로 전자의 지표인데, 이 지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시간주립대 교수인 스캇 페이지가 행한 실험 중에 이런게 있다. 시험 성적이 좋은 애들끼리만 10명 모아놓은 그룹보다, 시험성적 좋은 애들 5명, 중간 성적 5명을 섞어 놓은 그룹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는 것이다. 다양성이 곧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더라는 것. 


현재의 대학 입학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혁신은 비슷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할 때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때 생겨난다. 학문 분야에서도 자기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끊임없이 곁눈질해야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우수 인재들끼리만 끼리끼리 뭉치고 다양성을 추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고, 학벌이 어떤 능력의 완벽한 지표일지라도, 완벽한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도태된다.  


(그런데 다양성을 강조하는 페이지 교수의 실험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 지식의 습득을 잘한 우수 성적 그룹이 기존 문제 해결과 혁신 모두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록 한계가 있지만, 우수 인재를 우수 대학에서 선발하는 과정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교육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는게 바로 수월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학 입학 선발 기준으로 미래의 모든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최대적용의 원칙을 가지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지만, 그 기준이 향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정확한 기준은 아니다. 


학벌이 20대 중반의 청년의 능력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표이기는 하나 사회적 성공지표로써의 신뢰성(reliability)이 매우 높지는 않다. 학벌이라는 가장 좋은 지표도 미래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지표로써의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40-50대에 이른 사람들은 학창시절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있던 친구들의 처지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실감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 성적 몇 점으로는 측정할 수 없던, 하지만 돌이켜 보면 뭔가 달랐던 능력 차이다. 통계에서 항상 얘기하는 학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고용주나 인사 담당자는 알 수 없는 능력(unobserved heterogeneity)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학벌이 한계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분야들이 해보기 전에는 누가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신뢰감있게 잘파는 세일즈맨이 있고, 똑같은 이론을 배워도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학생이 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더욱이 경제가 변화하면서 학벌주의가 가지는 능력 지표 기능이 강화되기 보다는 약화되고 있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게 소프트 스킬이다. 경제가 변화하면서 피플 스킬 내지는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는 이유를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공감 능력이 높으니까. 


그런데 정규 교육은 소프트 스킬을 측정하는 지표로써의 기능이 작다. 소프트 스킬이 생산성 향상과 회사 이윤 추구에 중요해질수록 학벌주의의 기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좀 더 포말하게 얘기해 보자.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정규 분포가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고, 파란색이 낮은 사람들이다. 능력 지표로써의 교육의 한계 때문에, 또한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 불확실성 때문에, 현 시점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의 variance가 학벌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요구되는 능력의 최고점에서 학벌이 높은 사람들 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포션이 커지게 된다. 설사 고학벌의 평균이 높더라도, 최상층 인재 충원으로 갈수록 학벌의 중요성은 낮아진다.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