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씁쓸한 점은 중증외상센터를 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냐에 대한 의견 개진은 별로 없다는 것.  


중증외상센터는 사회 밑바닥 계층을 위한 의료 시설이라는 것을 이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 


사회의 최저계층은 정치적 목소리가 없음. 여론 형성에 거의 참여하지 못함.  


중증외상센터가 중산층을 위한 시설이었으면 이 시설의 필요성, 이 시설 때문에 받은 혜택에 대한 간증이 쏟아져 나왔을 것. 


이국종 교수가 김종대 의원의 비난에 대해서 대응하며 했던 얘기 중에 "여러분들은 귀순 군인 1명에게 관심을 쏟지만, 우리 병원에는 이런 환자가 150명이 있다"는 것이 있음. 그렇게 아주대에 중증외상 환자가 많고, 이 병원을 거쳐간 중증외상환자가 많겠지만, 아무도 이 논란의 와중에 나와서 의견을 내고 있지 않음. 


중증외상센터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여론형성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 


늘상 하는 얘기지만 이 때문에 최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확대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움. 최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비용은 들지만 정치적 이득은 없음. 동네에 공원을 만들면 중산층이 산책하며 즐기고, 표로 연결되지만, 최빈곤층에게 혜택을 주면 님비현상으로 오히려 표가 떨어짐. 그렇다고 최빈곤층이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도와주는 것도, 제대로 감사를 표하는 것도 아님. 이분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쁨. 복지의 확대는 중산층에게 혜택을 주는데 빈곤층도 묻어갈 수 있도록 정책을 짜는게 최선임. 




그런 면에서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150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큰 자산이자 기회임. 목소리가 없는 중증외상의 위험에 노출된 소외계층에게 이국종이라는 스타 의사를 통해 목소리를 안겨줄 수 있는 것.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가 아니었으면, 병원에 큰 적자를 안기고, 중산층은 별 혜택도 받지 못하는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기나 했겠음? 폐와 복부에 여러발의 관통상을 입은 병사가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중증외상센터가 갖춰져 있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음? 


한 사회의 진보는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고, 집단의 시위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과장된) 영웅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정의당에서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테러 운운하며 헛발질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