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야당이 염려하는 그런 개헌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개헌은 여야 합의가 필수이기 때문. 여당과 청와대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이는 그런 개헌은 불가능함. 설사 여당의 의석수가 2/3에 달한다고 할지라도 개헌을 수의 논리로 밀어붙일 수는 없음. 개헌은 여야와 국민적 합의가 필수. 


두번째는 지난 촛불혁명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는 것. 모두가 개헌을 얘기하니 개헌을 해야 하냐고 물으면 그게 좋겠다고 답하지만 딱히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론 형성이 안되어 있음. 국회에서 뚝딱 만든다고 개헌이 되는게 아님. 


현재의 헌법은 1987년의 국민적 열기를 담아 만들어진 것. 그 때 만큼의 열기와 합의는 아니더라도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헌법 개정은 어려운 일. 


문재인 정부가 지금하는 일은 개헌 방향에 대한 여론 형성임. 개헌하면 권력구조에 대해서만 신경썼지만, 기본권이라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있다고 여론 형성을 하고 있음. 87년에는 직선제가 참정권 확보라는 기본권을 담보했지만, 현재의 대통령 4년 중임과 내각제 같은 논의는 그런 내용이 없음. 기본권을 둘러싼 논쟁을 박터지게 해야, 사람들이 개헌의 실제 의미를 인식하게 되고, 개헌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가지게 될 것.  


문재인 정부 초기에 앞으로 개헌은 기본권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음. 작년 여름에 한국 방문 때도 몇 분들에게 말했는데 관심을 끄는데는 실패. 일부 분들은 한국에서 추가할 기본권이 별로 없다느니, 오바하지 말라고도 함. 하지만 지금 보듯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하는 개헌의 방향은 이렇게 형성되었음. 


설사 이 번에 개헌이 안되어도 앞으로 개헌 얘기가 나올 때 마다 국민들이 권력구조와 함께 기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매우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 개인의 자유 확대를 통한 평등을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권력구조보다 기본권이 훨씬 중요함. 


그럼 야당은 이대로 당하고 마는건가? 


내가 생각하기에 야당이 개헌에 초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함. 


그건 바로 지방분권 개헌이 21세기의 경제 발전 경향과 맞지 않다는 이슈를 제기하는 것. 이 이슈를 제기하면 지자제 선거에서 불리할 수 있지만, 어차피 집권 1년 내 실시되는 선거는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선거임. 한 번의 선거보다 더 중요한 헌법 이슈를 장악할 수 있음. 


얼마전 뉴욕타임스 칼럼으로도 소개되었듯이 미국에서 지역 불평등은 더 커지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빅시티와 스몰시티 간의 연계가 끊어졌기 때문. 글로벌화된 빅시티는 자국 내 스몰시티를 배후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글로벌화된 빅시티와 더 연결되고 있음.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 국가별 상위 계층은 자국 내 하위 계층과의 연계가 끊어지고 다른 국가의 엘리트층과 더 관계가 깊어지고 있음. 


적어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지방분권강화가 국가의 경제 발전 전략으로 힘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 당분간 메가시티로의 집중과 그 인구에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경제를 지배할 가능성이 큼. 전세계의 경제 연결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는 피하기 어려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2천만 인구 수도권 집중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음. 서울과 경기, 최대 확장해도 충청도 정도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종의 도시 국가같은 상황은 한국처럼 인적 경쟁력이 높은 사회에서 인적자본의 총역량을 한 지역에 쏟아부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음. 


인적자원이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으면,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인적 자원 재분배에 상당한 애로점이 있지만,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면 재분배가 매우 용이함. 인터넷이 발전해서 지역 집중의 중요성이 약화될 것 같지만, 쓸데없는 정보의 범람은 오히려 인적 만남을 통한 정보 교류의 중요성과 역할을 키우고 있음. 핵심 역량 인구 전체의 수도권 집중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장점일 수 있다는 것. 


대부분의 국가가 지방활성화에 실패하고 소수 도시 중심의 발전이 대세를 이루는데, 왜 한국만 전세계의 이런 경향에 반해서 지방분권 개헌을 해야하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 지방분권개헌을 제2의 수도이전 시도로 규정하는 것. 


TK를 기반으로 재기할려는 자유한국당의 계획에는 반하지만, (미래의) 통합당처럼 수도권 중심의 정당이 되겠다고 계획을 수정하면, 수도권에 기진입한 계층의 수도권 중심주의가 극심하기 때문에 못할 것도 없는 주장임. 


이 경우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개헌은 도덕적으로는 지지를 받을 수 있어도, 경제 논리로 밀리기 때문에 적어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커더란 불안감을 심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음. 




Ps. 개헌과 관련해 흥미 위주로 쓰기는 했지만, 지방 발전 지체의 심각성이 커질 것 같다는 염려가 이전부터 있었음. 위에서 얘기한 논리를 넘어서는 지역균형발전의 전략이 뭐가 있는지...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