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놀랐음. 기왕 외교 잘알못, IR 완전 문외한의 감상을 아래 포스팅에도 적었으니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일대 사건에 또다른 인상비평 감상문 하나쯤 남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듦. 




김정은의 트럼프 초청은 정의용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그걸 바로 수용하고 5월 내에 만나겠다고 하는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를 의제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 비핵화는 당연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아직 특정되지 않았음. 최종 단계로 북미수교를 여러 분들이 주장하지만 미국이 그걸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없었음. 


북이 핵을 내주고,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 평화체제로의 이행, 수교를 받아낸다고 윈윈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북에게 남는 협상카드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음. 한국으로써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북은 모든 카드를 내보인 것. 


결국 일련의 드라마틱한 전개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쥔 것. 북미수교를 최종단계로 명시하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지, 경제지원 정도만 제시하고 북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토를 선언하고 경제제재를 지속할지 (이 경우 한국은 당연히 미국과 함께해야), 아니면 전쟁으로 돌입할지, 모두 트럼프가 결정함. 중국도,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트럼프 혼자 결정하는 것. 


그런 면에서 이 번 북미대화는 김정은의 일대 도박이라고 생각함. 





어제 오후 한국 정부에서 북한 관련 중대발표를 백악관에서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내용이 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음. 북미정상회담이라면 당사자인 미국이 발표하는게 상식임. 중대발표는 북미정상회담이어야 하는데 이걸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를 자처하는 한국이 발표한다는게 말이 됨?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특사가 백악관에서 발표하는 중대 내용이 뭐가 있을지? 정의용 실장 발표 이전에 김정은이 트럼프를 초청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미국이 아닌 한국이 발표하는 걸 보고, 트럼프가 아직 결정을 안내렸을 것으로 짐작했음. 정의용 실장이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수용을 넘어 만나는 날짜까지 5월 이내로 명시할 때 허걱 했음. 


트럼프 답지 않게 북미정상회담의 공의 일부를 한국으로 돌린 것.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함. 모든 결정권을 자기에게 갖다바쳐준 한국 정부에게 일종의 배려를 한 것으로 생각됨.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자기에게도 credit을 달라고 말은 함. 





그리고 아래 포스팅에서 댓글을 단 보수 분은 주한미군철수를 큰 걸림돌로 보던데 과연 그럴지는 의문임. 주한미군철수가 협상의 레버리지일지는 몰라도 최종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김정일이 여러 번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음. 클린턴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에게 그 얘기를 했고, 2007년 정상회담 때도 그 얘기를 했음. 


북한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북한이 미국과 수교를 하게되면 중국과의 관계 정립을 새로 해야 함. 이 때 이이제이를 할 수 있으려면 주한미군이 있는게 북한 입장에서 나쁠게 없음. 





이 일련의 사건을 기획한 브레인들에게 찬사를. 최종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만으로도 이 분들의 기획력은 외교사에 남을 업적임. 


한국의 입장을 미들맨으로 바꾼 것은 커다란 전략적 변화였음. 박정희-김일성의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외세의 간섭없는 자주적인 통일"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지켜야 하는 원칙이었음. 김대중-김정일의 6.15 남북 공동성명에도 자주가 첫번째 항목으로 들어가 있고, 노무현-김정일의 정상선언문에도 6.15 성명의 고수가 담겨져 있음. 


이런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북핵위기 국면에서 한국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세운 것. 이 시나리오의 기획자로 알려진 문정인 교수는 학자로써 자신의 주장이 정책이 되고 현실이 되는 최고의 영광을 보고 있음. 나님과는 비교가 안되는 급의 학자지만, 그래도 무지 부러움. 





한 가지 덧붙여 글을 수정하자면, 이제야 4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이해가 됨. 미들맨 외교가 전략이었는데 북미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미들맨 전략과 매우 괴리됨. 


대북특사의 발표를 보고 대북정책관련 문재인의 최대 위기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 정상 회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미들맨이면서 책임은 지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염려.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김정은이 6개 항목을 다 받아준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김정은이 제안한 정상회담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으로 생각. 


하지만 북미정상회담 직전의 남북정상회담은 북미회담 성공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미들맨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음. 오히려 북미정상회담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요소가 됨. 톱니가 안맞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이제보니 다 들어맞음. 





Ps. 정의용 실장의 영어를 들으면서 역시 영어는 빠다발린 발음이 아니라 또박또박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 


Pps.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현재 상황은... 현실도피. ㅠㅠ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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