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사: 폼페이오, "북 비핵화 땐 한국만큼 번영토록 조력."


한국에서 보수가 가진 두가지 사상적 기둥 중 하나가 반북 이데올로기, 다른 하나가 박정희의 개발독재 신화. 촛불혁명으로 박정희 신화가 무너졌고, 최근 일련의 대북 외교로 첫번째 기둥도 무너지는 중. 


박근혜의 몰락으로 박정희 개인에 대한 신화는 무너졌지만,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하게되면 박정희 신화의 코어인 개발독재는 오히려 그 정당성을 더 확보하게 되는 아이러니. 


Catch-up economy인데 민주주의를 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케이스는 네델란드를 따라잡은 영국, 영국을 따라잡은 미국 등 제1세계 케이스 밖에 없음. 한국을 포함한 후발주자는 모두 개발독재을 통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이에 바탕해서 경제가 발전하였음. 





부시 주니어 시절에 (트로츠키주의자 출신) 네오콘들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내세웠던 논리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으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그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체제 변혁의 도미노가 일어난다는 것. 


알다시피 이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고 외부로 부터의 제도이식, 민주주의의 외부 이식, 민주주의 제도 이식을 통한 자본주의 발전 등의 아젠다는 작동하지 않는걸로 결론남.  


네오콘의 실패를 보고 사회과학 전반에서 일었던 반성과 과제 중 하나가 제도(institution)가 어떻게 발생하고 안착되는지 우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뭔가 중요한 분기점이 있고, 이 분기점에서 지리적 조건과 제도적 친화성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 





네오콘이 실패한 후 체제 변혁 아젠다는 금기 사항이었는데, 북핵 문제의 해결방식으로 독재체제 용인 하의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체제 변혁 아젠다가 이론적 논쟁 한 번 없이 제시되는 중. 


북한을 자본주의 체제에 안정적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준 김씨 일가의 세습체제를 상당기간 용인하는게 비용이 적게들고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길이라는게 지금까지 박정희(와 중국공산당 1당 독재)와 같은 개발독재가 주는 교훈.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여러 독재체제의 몰락이 보여주듯, 체제붕괴 후 상당 기간의 혼돈과 인명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체제 이행한 케이스는 하나도 없음. 





보수 인사들이 신봉하는 근대화 이론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필요조건. 김정은 독재 하의 경제발전은 개발독재를 옹호했던 분들의 이론적 승리와 더불어 정치적 패배를 안길 것. 반대로 박정희 개발독재를 비판하며 대북 유화책을 지지했던 분들에게는 이론적 패배와 정치적 승리를 안길 것. 


북미 회담 장소가 하필 또 다른 개발독재의 성공 사례인 리콴유의 싱가폴인 것도 재미있는 역사적 우연. 


어찌되었든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박터지는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이 어서 오기를... 





Ps.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이행기 경제와 체제에 대한 사회학 논문이 쏟아져 나왔음. 북한 경제가 변화하면 한국은 Development 이슈 이후 다시 한 번 전세계 사회과학계의 주 연구 대상이 될 듯.  


북한에 센서스를 할 돈이 없어서 한국 통계청에서 돈을 대고 대신 센서스 자료를 받는 계획도 한 때 얘기되었는데, 이건 어찌되고 있는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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