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사정

기타 2009. 6. 3. 08:53
어느 조직이나 아주 많은 룰이 있다. 이 룰들은 일이 잘못되는 것을 막는 최선의 행동양식이라고 문서상으로 규정된 것이지만, 모든 룰들을 지키면서 할려다보면 일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문서상의 조직의 룰을 조금씩 어기면서 일한다. 이걸 모두 지키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관료제의 폐해라고들 욕한다.

조직에 속해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모든 룰을 지키면서 일을 하는 조직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어쩌다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평소에 아무도 안지키고 거들떠보지 않던 조직의 룰을 이용하여 몇몇 사람을 벌하고, 조직을 보호한다. 조직이 잘못된게 아니라, 룰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잘못으로 마무리짓는다. 이런 측면에서 사문화되다싶이한 조직의 룰도 기능이 있다.

기능주의적 해석이고, 조직사회학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게 현대 관료제의 특징 중 하나이기에, 모든 조직이 털면 조직의 룰에 어긋나는 행위가 나오게끔 되어 있다. 조직이나 조직에 속한 특정인을 벌할 목적으로 잘못이 불거지지 않았음에도 조직의 룰을 어긴 경우를 세밀히 찾는 행위를 "표적사정"이라고 한다.

룰로 따지면 위반인건 맞는데, 악의가 있었던 것도, 일이 잘못된 것도, 과거와 달리 행위한 것도, 남들과 달리 행위한 것도 아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달리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정작 조직을 털고 있는 사정주체의 행태가 다른 것도 아니다. 단지 사정권을 가진 권력자에게 찍혔다는 거다.

표적사정의 결과를 보고, 니가 룰을 위반한 건 맞지 않냐고 목소리 높이는 양반들은, 조직의 개선이라든가, 룰의 합리화라든가, 잘못의 시정이라든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적어도 이 사안은 권력자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거다.

선진국에서 매니져들에게 정해진 원칙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할 권리를 많이 주는 이유는, 엄격한 잣구해석을 통해 조직을 진단하는 것의 오류를 알기 때문이다. 관행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소소한 잘못으로 조직과 그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드물다.

표적사정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새로운 법이 아니라, 그렇게는 안한다는 광범위한 암묵적 사회적 합의다. 그런식으로는 안하는게 상식이 되는거다. 법으로 정하기 어렵고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사회 문화다.

최근에 문화부 감사 이후에 쫓겨나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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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ate gap은 환경이 변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본다는 개념이다.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한 분야가 농업일테고, 농업 생산량이 줄어들면 저개발 국가에서는 폭동이 난다. 아프리카가 환경 변화 때문에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는 뉴스에 여러번 나왔다.

Scientific American에 소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환경 변화의 영향이 국가 간에 다를 뿐만 아니라, 미국(캘리포니아) 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변화에 경제적, 신체적으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본다고 데이타를 이용해서 주장하고 있다.

대충 결과를 살펴봤는데, 크게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시나리오로 얘기하니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인구 문제를 다루다 보니, 환경하는 분들이 환경변화의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잘 몰라서, 데이타가 있으면 하겠다고 발뺌한다. 

이전에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을 예측하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파생효과를 추정하는 것은, 아직 "과학적 방법론"의 적용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직관"의 영역인 듯 하다. 그 직관을 얼마나 우아하게 과학적인양 포장하는지도 능력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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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서 노대통령 서거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했다. 대략적인 내용이야 신문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여론조사의 세부결과를 보면 두 가지 주목해야할 내용이 있다.

하나는 호남의 반응이다. 노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공정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6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는데, 호남은 81%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냐는 질문에 전체 국민의 56%가 그렇다고 했는데, 호남은 83%다. 노대통령 서거에 관련된 모든 질문에서 20대보다도, 화이트칼라보다, 386(40대)보다, 호남이 더 분노하고 애통해 하고 있다. 그런데 친노세력보고 호남과 척을 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과 "결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서프라이즈의 일부 글들은 머리가 없거나, 고급알바거나 둘 중 하나다. 생각해보라. 여권의 고급 알바에게 가장 큰 책무가 지금 무엇일지. 민주당과 친노세력, 호남과 진보세력을 분리시키는게 급선무다.

어차피 상층에서는 연대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김두관의 인터뷰, 조기숙의 고쳐쓴 반성문, 한명숙의 태도, 최장집의 글 등에서 보듯, 모든 분들이 야권, 진보세력 통합을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로 꼽는다. 이 흐름을 방해할 수단은 흥분한 지지자들의 염장을 지르는 수 밖에 없다. 아마, 분열을 조장하는 서프의 글 중에 새로 본 아이디가 꽤 있을거다. 상층연대의 시작은 49재가 끝나고 어떻게 노대통령의 유지를 이을지 논의하면서, DJ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 즈음에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상층은 몰라도 인터넷 열성분자들의 분위기를 바꿔놓는게 알바의 지상목표다.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지점은 서울지역의 반응이다. 서울이 대구/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보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의 고향인 부울경남보다 서울이 더 보수적이다.

검찰수사의 공정성 면에서 공정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전체 국민은 24%다. 60세 이상은 33%, 경북은 34%다. 그런데 서울이 31%다. 참고로 호남은 11%, 충청은 15%에 불과하다. 이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전체 국민의 38%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서울은 44%가 동의하지 않았다. 대구경북이 50%, 부울경남이 41%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견은 서울이 20%로 대구경북(11%)보다 상당히 높다.

단지 노대통령, 명박정부에 대한 태도 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방송 소유,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 개성공단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서울 주민이 대구경북 다음으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차이도 서울에서는 1%포인트 밖에 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는 거의 8%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경기지역의 반응은 서울과는 확실히 달랐다.

1천명 정도를 조사하는 여론조사에서 지역별  세부분석은 다소 무리가 있다. 서울의 보수화라는 결과가 이 번 조사의 특이사항인지, 일반화될 수 있는 내용인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던 내용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그 동안의 반응과 경제기반의 변화를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서울 내 권역별 자료가 없어서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의 이러한 변화를 보니 다가오는 지방선거의 중요성이 더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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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5월)에 OECD에서 Society at Glance 2009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잠을 제일 적게 자고 제일 열심히 일한다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언론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창피한 순위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사회 복지 지출. 아래 그래프는 공공 사회 복지 지출의 NNI (Net National Income) 비율이다. 한국 끝에서 이등이다. OECD 평균이 전체 국민 소득의 24%를 공적으로 사회 복지를 위해 쓴다. 한국, 8%다. 멕시코(7.9%)한테 한 끝 차이로 밀려서 꼴찌에서 일등을 못했다.

하위 3개 국가를 제외하면 모든 OECD 국가가 비슷한 수준에서 복지를 위해 돈을 쓴다. 20-30% 사이의 전체 국민 총소득을 복지를 위해 쓰는게 선진국의 국제 표준이다. 한국은 선진국 국제표준 따라갈려면 지금의 3배 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

한국이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아져 그렇게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있을 텐데, 한국과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바키아 를 보라. 다들 20%가 넘는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복지 지출은 확실히 적지 않냐고? 끝에서 4등이니 한국이랑 2끝 차이 밖에 안나 지 않냐고?

아래 그래프는 공적 지출 뿐만 아니라 사적 지출, 즉 기부금까지 포함한 사회 복지 지출이다. 미국은 OECD 평균 보다 높다. 미국은 세금으로 복지를 책임지지는 않지만, 부유층이 전체 국민소득의 10%(자신의 소득의 10%가 아니다)를 기부하여 복지를 카바하는 국가다. 스쿠루지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미국도 우리나라보다 3배 가까운 비율을 복지를 위해 쓰고 있다. 한국과 복지가 비슷한 나라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아마도 터키 포함) 뿐이다.


멕시코, 터키, 한국 중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건 물론이다. 전세계에서 최악의 스쿠루지 국가를 꼽으라면 어느나라가 꼽힐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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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부에 위치한 캔사스 위치타에서 낙태 시술하는 의사를 교회에서 총으로 살인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http://www.huffingtonpost.com/2009/05/31/george-tiller-killed-abor_n_209504.html

생명을 중시한다는 낙태반대론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를 보라. 이런 일이 미국에서 한 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낙태 시술은 목숨걸고 해야 한다.

자기들의 사회적 가치(pro-life)를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것. 이런 게 자국 내 테러리즘이다. 개발이익 나눠 갖자고 철거민들이 건물점거하고 짱돌 던지는게 테러리즘이 아니고.

참고로 위치타는, 항공 산업이 발전한, 캔사스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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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정치 참여가, 부유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정치 참여보다 훨씬 낮다.

미국에서 지난 1/4세기 동안 전체 불평등의 심화와 더불어 소득에 따른 거주 지역 간 분리가 심화되었다. 2000년대의 못사는 동네는 1970년대의 못사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더 못산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끼리,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끼리 모여사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가난한 동네는 동네 리소스의 부족으로 거주민의 시민 사회, 정치 참여도는 낮아지고, 그에 따라 정치인들은 투표안하는 이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으로 부터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참여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차원에서 참여할 수 있는 리소스가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참여한다. 오바마가 했다는 지역 운동이라는게, 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높이는 운동 비슷한 거다.

아래 그래프는 1970년대에는 가난한 동네나 부유한 동네나 투표율에 차이가 없었는데, 1990년대 이후로는 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율이 비슷한 수준의 부유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보다 유의하게 낮음을 보여준다.



그래프는 Soss & Jacobs. 2009. "The Place of Inequality: Non-participation in the American Polity." Political Science Quarterly 124(1):95-125.에서 캡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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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의 칼럼

http://robertreich.blogspot.com/2009/05/future-of-manufacturing-gm-and-american.html

"1995-2002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11% 줄었고, 일본은 16%가 줄었다. 개도국도 예외는 아니다. 브라질은 20%가 줄었고, 중국은 15%가 줄었다."

신경제에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라이시가 제시하는 Symbolic-analytic work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의 The Work of Nations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비록 크루그만이 Peddling Prosperity에서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긴 했지만, 그래도 건질 내용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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