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노 세력'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지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개혁진영이 연대해 한나라당이 지지하는 후보를 이겼다. 또 울산에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이뤄 승리를 거뒀다. 이는 진보진영에게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틀에서 하나가 되라는 국민이 내린 명령이라고 본다. 친노, 민주당, 진보진영 그리고 시민사회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몸을 던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본다."


 - 진보개혁 역할을 '친노 세력'이 할 수 있다고 보나.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그의 가치관은 남은 것 아닌가. 친노 그룹끼리 모여서 가치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그걸 뛰어 넘어 하나의 진영을 잘 키워야 한다. 민주 개혁진영이 큰 틀에서 힙을 합쳐야 한다. 국민과 함께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반듯한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유지라고 본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김두관 전장관의 인터뷰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거다. 그게 친노세력도 살고, 민주당도 살고, 호남도 살고, 진보세력도 사는 길이다. 지난 1년반의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그 많은 일들을 통해서 뼈 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그럼 정치일정 상 왜 지금 꼭 연대를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자체 선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들이 지자체 선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선 한 방에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지자체를 통하지 않고는 대선도 없다.


2000년부터 국회의원 당선자의 상당수가 지자체를 거쳐서 온 사람들이다. 중앙 정치권 인재 공급의 풀이 운동권 출신에서 이제 지자체 출신으로 바뀐 것이다. 지방 단위에서 정당별로 좋은 정책을 실현해본 경험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그 성공 경험은 정책을 국민에게 설득하는데도 좋다.


노무현 효과 이명박 효과 때문에 당선자를 잘 베팅하는게 국회의원 당선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이들은 탄돌이 이명박의 졸개들이라고 비하되었다는 점도 상기하라.


당장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군을 보라.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는 당연히 회자되지 않는가. 지난 대선도 생각해보라. 노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혁규 도지사도 물망에 올랐다. 수도권 지자체장은 거의 당연직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이런 예비 후보군은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지자체 선거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3년 뒤 대선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대선을 대비하는 징검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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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Andrew Eungi Kim 교수가 한국사회는 급속히 다민족 국가가 될 것이라는 연구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민에 대한 과거의 경험에 바탕한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사회의 패턴은 더 이상 단일 민족 국가로 유지될 수 없다는거죠.

팩트의 확인, 사실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노동이주, 출산율, 노령화, 결혼이주 등과 관련된 팩트를 이민에 대한 이론과 접목시켜 설명한다는 점에서 논문의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통계청에 계신 분으로부터 국제 결혼의 비율이 지역별로 30%를 넘는다는 애기를 듣고 놀란적이 있는데요, 2005년 현재 전체 혼인 중 15% 가까이가 국제 결혼이군요.

논문 말미에 보면 정부에서 이민 정책을 "control and management"에서 "understanding and respect"로 변경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건지 궁금하군요.

참고로 이 논문이 발표된 Ethnic and Racial Studies는 사회학에서 인종/민속 연구의 탑저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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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론과 검찰이 너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과 언론종사자들이 너무하는 언론과 검찰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대부분의 언론종사자들이 너무한다고 지금 얘기하는 그 행위에 동참 하였다.

우리는 왜 이러는걸까?

사회조사방법론 시간에 꼭 배우는 내용으로 밀그람의 실험이라는게 있다. 1963년에 밀그람이라는 학자가 독일에서 왜 홀로코스크가 일어났는지,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잔인한 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문제를 읽고 옆방에 있는 응답자가 잘못된 답변을 하면 전기충격을 주도록 하였다. 피실험자는 응답자를 보지는 못한다. 전기충격은 처음에는 약했지만, 갈수록 강도가 세어진다. 150볼트가 넘어가면 옆방 응답자의 비명도 들리고, 330볼트가 넘어가면 더 이상 비명도 들리지 않게 된다. 연구자는 피실험자에게 옆에서 전기충격을 계속 주도록 지시한다. 물론 전기충격은 가짜다.

충격적이게도 80%의 피실험자가 1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고, 비명이 들린 다음에도 65%의 피실험자가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

문제를 맞추면 좋겠지만, 틀리더라도 그게 어디 전기 충격을 가할만한 잘못이겠는가. 대부분의 인간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권위와 분위기에 복종하며, 10볼트씩 올리는 충격 강화에 설마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80볼트의 충격을 이미 주었는데, 10볼트 올린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1963년은 옛날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 전에 버거 교수가 유사한 실험을 하였다. 인권에 대한 가치도 높아졌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전히 70%의 피실험자가 150볼트까지 권위에 분위기에 복종하여 응답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였다.

150볼트 이상으로 볼티지를 올리는 실험은 이 번에는 행해지지 않았다. 밀그람의 실험은 응답자의 비명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입은 피실험자에 대한 윤리 문제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과학 실험의 대표적 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실험의 교훈은 이념, 의식, 문화가 발전하더라도,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가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그 지시가 권위있는 상부로 내려올 때, 그 지시를 어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사 그 지시를 어김으로써 자신이 당하는 피해가 전혀 없더라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언론인, 정치인,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사회적 분위기와 권위에 복종하여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자신도 눈꼽보다 작은 정도라도 기여했다는 죄책감과,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감정이 뒤섞여 일어 나는, 인간들의 보편적 행동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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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가 파산할 거라는 얘기가 많다.

부유하고 리버럴한 캘리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예산안 통과는 하원의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고, 세금 인상도 2/3 이상을 얻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예산안 통과와 세금 인상 각각에 대해 2/3 이상의 동의를 요구하는 주는 여럿 있지만, 둘 다 2/3를 요구하는 주는 캘리 뿐이란다.

게다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 끼리 모여사는 Demographic Balkanization이 심화되었고, 정치인들은 게리맨더링을 통해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끼리 한 선거구로 묶고, 공화당은 공화당세가 강한 지역끼리 한 선거구로 묶어 놓았다. 그 결과 캘리 전체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가 강하더라도, 당선되는 정치인은 타협을 모르는 강경파가 세금 인상을 막을 수 있는 1/3은 된다.

제도가 안따라주면, 다수의 의견과 정치적 결정이 따로 놀고, 그 결과는 파국이다.



ps. 아마 Demographic Balkanization이 여기 저기서 토론되었던, 정치세력의 양극화를 일부는 설명할 거다. 미국 전체 국민은 중도가 다수더라도 주별로 성향이 다른 유권자끼리 모여사는 성향이 있으면, 상하원에 당선되는 정치인은 중도보다는 극단적 성향이 차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호텔링 이론은 선거단위와 이념분포 단위를 일치시켜야만 의미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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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57672.html

한국은 세금과 사회보장의 불평등 해소 효과가 매우 작은 나라이다. 세전 불평등과 세후 불평등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전 소득의 불평등 증가가 삶의 질의 불평등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세전 소득의 불평등이 실질 생활에서의 불평등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지국가는 둘 사이의 관계가 너무 밀접하게 되지 않도록 만드는 다양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는 물론 세금으로 뒷받침된다. 이 때문에 서구의 불평등 연구 학자들은 세전 소득을 연구할 때의 이론과 세후 소득을 연구할 때의 이론이 다르다. 궁극적인 불평등 연구의 대상이 세전 소득이 되어야 하는지, 세후 소득이 되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한국은 그런거 신경 안써도 된다. 둘이 똑 같으니까.

북구 유럽에서 경기가 안좋아지면, 소득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늘고, 복지 혜택의 대상이 늘어난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자동적으로 증가한다. 북구 유럽에서 복지 비용이 감소했다는 소식은 그 나라 경기가 호황이라는 얘기고, 복지 비용이 늘었다는건 경기가 꽝이라는 거다.

따라서 북구 유럽의 복지는 경기 순환 사이클이 제대로 돌아갈 때만 작동한다. 장기 불경기가 오면 복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복지를 축소시켜야 한다. 복지 때문에 장기 불경기가 오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장기 불경기가 복지 제도에 영향을 끼치는 효과가 더 크다는 거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평등이 늘었지만, 세후 불평등의 변화는 국가별로 다르다. 미국도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다. 한국처럼 세전 불평등의 증가가 세후 불평등으로 그대로 반영되는 시스템, 남들이 1930년대에 가지고 있던 시스템이다.

한국이 각박한 사회인 이유는 소득의 절대 액수 때문이 아니라, 그 소득을 사회 성원들 사이에 배분하는 방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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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살았던 한 남자
1946. 8. 6 ~ 200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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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계급론

정치 2009. 5. 29. 00:53
이명박 정권의 광장 공포가 이해 안되는 건 아니다. 무섭긴 하겠지.

하지만, 공포는 미지의 것에 더 크게 느낀다는 점에서, MB정권의 광장에 선 사람들에 대한 사회과학적 이해는 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뭘 모르니 저 모양이다. 2MB 용량으로는 방대한 정보처리가 아무래도 무리인가 보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저녁 시간의 광장과 새벽 시간의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계급은 달랐다. 전자는 중산층이고, 후자는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이다. 전자는 평화적이고, 옐로카드를 드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경기가 스무스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반면 후자는 폭력적이고 레드카드와 난장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MB정부가 촛불에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 두 계급의 이해관곅와 시위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전자와 후자가 하나가 되어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후자만 남았다. 시위양상에서 중산층이 룸펜계층을 제어하기 보다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조되어 갔다. 지도부가 확립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반군이 있지 않은 모든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항상 룸펜이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많은 국가에서 반군의 지속적 인적 공급도 룸펜층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명박정부가 폭력적으로 전도되는 건, 중산층의 분노표출 방식이 룸펜들의 그것에 동조되어가는 바로 그 지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야 정상이다. 디제이와 노무현이 10년 동안 축적해온 경제의 펀더멘탈 덕분에 중산층은 아직도 경제적 측면에서 안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명박정부가 살아남은 것도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 평안함을 자진해서 깰 중산층은 아무도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광장을 열라는 계급도 전자이지 후자가 아니다. 어떤 정치세력도 중산층이 누리는 평화를 깰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정권은 중산층을 위한 광장마져도 닫고 자신들만의 벙커로 깊숙히 들어가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마져 광장을 닫고, 전경차 틈새의 조그만한 공간만 허락하겠다는 이 가공할 무대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명박정부에 대화와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새벽의 폭력적 촛불에 굴복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저녁 시간의 평화적 촛불, 중산층의 다양한 요구에 조응하는 정상적 정부로 작용하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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