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실업률 3%대이지만… 체감 실업률은 10% 넘어

노동연구원에서 잠재실업자와 부분실업자를 합친 확장 실업률은 10%가 넘는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여러 사람들이 예전부터 한국의 실업률 계산방식은 외국과 달라서 믿을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마치 정부가 구라를 친다는 식으로. 하지만 한국의 실업률 계산 방식은 국제 표준을 따른다. 국제 비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 앞 포스트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국은 실업률이 문제인 나라가 아니다. 쓸만한 일자리(decent job)라 얘기되는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다.

공식적으로 쓰이는 국가별 고용 비교 지표는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따지는 <실업률>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체 인구 중 취업자의 비율을 따지는 <취업자비율>이 있다.

경기 확장 국면에 쓸만한 일자리가 늘어나면 비경제활동인구가 경제활동인구가 되어서 구직자가 되기 때문에 실업률은 생각보다 줄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할 때의 가치와 구직을 해서 공식 경제활동을 할 때의 가치를 비교해서, 쓸만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전자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가사와 육아를 접고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소위 얘기하는 체감 경기, 체감 실업률은 <실업률>보다는 <취업자비율>이 더 정확히 반영한다. 한국은 <실업률>로 따지면 OECD 국가 중 앞에서 자리를 다투지만, <취업자비율>로 따진 국제비교에서는 저 뒷자리를 차지한다. OECD의 노동통계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비정규직 일자리수를 늘리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절대 한국사회의 체감 실업률을 줄일 수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실업 대책은 IMF 직후 대량실업으로 다수 대중이 거리로 나앉는 상황에서 한시적으로만 쓸 수 있는 정책이다.

경제 위기 시의 한시적 대책을 항구적으로 쓰고 있으니 사람들이 항상 경제 위기라고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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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폐지해야"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줄여 이들의 실업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건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실업률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3%대 중반이다. 지금은 실업률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문제인 상황이다.

이공계 기피, 의대편중, 교대편중 등등의 젊은층의 패기 상실 현상이 모두 비정규직 문제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적인 문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여 <고용안정>을 제공하든가, 비정규직의 단위 임금을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내지는 정규직보다 더 높게 상승시켜 <임금안정>을 제공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사회가 안정되게 돌아간다. 실업률이 5% 정도로 높아지더라도 정규직이 늘어난다면 경제적 불안감은 오히려 사그라들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둘 중 하나로 방향을 잡아 정책을 피지 못한 것도 아쉽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2만불이 조금 안되는 한국의 일인당 평균 GDP는 유럽으로 따지면 그들의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따지면 그들의 1970년대 후반 GDP다.

당시에 이들 국가가 복지, 고용, 건강, 주택 보조 등에 사용한 비용은 국가 전체 GDP의 대략 20-25% 정도였다. 미국은 10-15% 정도.

이 통계는 미국은 기부금이 전체 GDP의 10% 가까이 이른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은거다 (기부금의 상당수가 대학 기부금이긴 하다). 한국은 거의 0%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전체 국가가 버는 소득의 1/4은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사회의 공공복리를 위해 쓴다.

이들 국가가 복지국가로 전환한 것은 몇 백 년에 걸친 유구한 전통의 결과가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느닷없이 그리된 것이다.

한국은 현재 교육을 제외하면 6%다. 포함하면 11%.

한국은 복지라는 좌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게 아니라,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잇는 사회적 능력이 안되는거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사회는 노블레스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가 더 많은 개입을 하는 경제구조를 노블레스도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사회다.

노블레스가 서민보다 벌어들인 수익의 더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진보성이 중요한게 아니라, 똑같은 %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세금을 많이 내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사회를 만드는게 복지 사회를 이루는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두가 50%씩 일률적으로 세금으로 내는 국가 A와 부자는 30%, 빈자는 0%를 내는 진보적 세제를 갖춘 국가 B를 생각해보자.

국가 A에서 한 달에 1000만원버는 의사와 한 달에 100만원 버는 노동자가가 똑 같이 50%씩 세금을 내면 총 세금은 550만원이다. 이를 공평하게 공공 복지에 사용하면, 의사는 50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을 봐서 총 775만원 어치 , 노동자는 5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으로 325만원 어치의 물질적 효용을 누린다.

반면 진보적 세금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세율이 최대 30%인 국가 B를 생각해보자. 1000만원 버는 의사는 30% 세율을 적용받아 3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100만원 버는 노동자는 세율이 0%라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국가B의 총 세금은 300만원이어서, 이를 공평하게 사용하면, 의사는 700만원의 세후 개인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850만원 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고, 노동자는 100만원의 개인 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250만원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게 된다.

결국 진보적인 세율이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 세율이 낮은 B보다는 세율은 진보적이지 않지만 절대적 세율이 높은 A의 세후 소득 불평등이 낮아진다.

Lane Kenworthy에 따르면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의 북구 복지 국가는 모든 시민이 5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내고, 미국은 모든 시민이 3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국가의 세율이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간접세, 지방세까지 모두 고려하면  모든 시민이 자기 소득의 비슷한 비율로 세금에 기여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소득 중 소비 비중이 높아 간접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은 직접세의 비중이 높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복지를 위한 전사회적 동참"을 높이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 노블레스를 강제해야 한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블로그를 열며...

기타 2009.05.24 18:50
블로그를 열 생각이 없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마주하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가 일생을 통해 꿈꾸었던 지역주의의 극복, 특권 없는 사회는 대연정과 같은 정치적 빅딜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의 (생산) 분배 구조를 변화 개선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이념에 대한 견결한 믿음이나, 개인적인 청렴결백의 유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이에 걸맞는 정치적 정책적 실천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겠죠. 

노무현의 눈물은 뒤로 하고, 노무현이 좋아했다는 "정연한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이 블로그는 다같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사회과학도가, 한국사회에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연구물들을 공유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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