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MS에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동일 전공을 선택할 것인지를 꾸준히 물어봤다. 

 

그래서 이공계 위기론이 기승을 부리던 2007-2008년과 그로부터 10년 후 문송합니다의 시절이 도래한 2017-2018년의 응답을 비교해봤다. 아래 그래프가 동일한 전공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의 비율이다.  

2007-08년에는 이공계 전공자들이 동일한 전공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공학계는 44%, 이학계는 39%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인문사회계는 각각 47, 51%였다. 그로부터 10년 후 인문사회 전공자들은 동일 전공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이 전보다 낮아졌는데, 그렇다고 큰 변화가 있는건 아니다. 

 

이에 반해 이공계 전공자들은 10년 전에 비해 동일한 전공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급등하였다. 공학계는 무려 58%로 44%에서 14%포인트, 비율로는 30% 이상 증가하였다. 10년만에 전공에 대한 태도가 크게 변화했는데, 그렇다고 실제로 각 전공의 가치가 10년 만에 이렇게 변하였을까? 

 

아래 그래프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이 현재의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 응답의 비율이다. 위 그래프에서 동일 전공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급증한 공학계는 전공 지식이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 비율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에 반해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이 자신들의 전공 지식이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줄었다. 

 

인문사회계는 예전보다 딱히 전공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줄었고, 공학계는 예전보다 전공 선택을 잘했다고 여기지만, 공학지식이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크게 늘지는 않았다. 전공 지식의 업무 활용도 측면에서 공학 지식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글쓰기와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인문사회 지식에 대한 평가는 더 주관적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사회계의 전공활용도 긍정 응답 하락은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일관되지 않은 태도 변화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이 얼마나 스토리에 영향을 받는지 보여준다. 이공계 위기론이 팽배하던 10여년 전에는 이공계 선택을 후회하다가, 분위기가 바뀌어 이공계가 각광받으니 답변이 바뀐다. 10년 뒤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이러한 변화의 패턴은 아래 포스팅에서 강조한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을 행동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한 사례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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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기사. why we still need English majors

 

쉴러 인덱스의 쉴러 교수 책을 소개하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 이공계나 경제학의 숫자 이해도 중요하지만, 스토리텔링이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는 것. 그렇기에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전공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기사는 말한다. 

 

거기에 더해서 이 기사는 Deming & Norary의 연구를 소개하며, 이공계 전공자들은 10년 정도 일하면 원래 배웠던 스킬이 옛날 기술이 되어버려서 일자리를 떠나기 시작하는데, 인문계 전공자들은 고소득 경영자 자리를 꿰차기 시작한다. 청년기에는 STEM 전공자가 잘나가지만, 중년이 되면 전공간의 소득 격차는 거의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럼 한국은?

 

2006년에 당시 한참 떠들던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있다. 공저자 덕분에 일반공개가 되지 않던 2000년 센서스 세부 자료를 이용할 수 있어서, 전공에 따른 좋은 직장 취득 확률을 계산했었다. 여기서 좋은 직업이란 세부직업별 취업자의 학사 학위 소지 비율이 평균보다 1 표준편차 높은 직업으로 규정하였다. 

 

아래 그래프가 연령에 따른 전공계열별 좋은 직업 취득 기대확률이다. 취업을 한 후의 조건부 확률을 헤크만 모델로 계산한 것이다. 노란색 줄이 공학계 전공자의 좋은 직업 취득 확률, 청색줄이 인문계 전공자의 좋은 직업 취득 확률이다.

 

중요한 건 위 WP기사에서 보고한 패턴이 한국에서도 발견된다는거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는 공학계가 잘 나가지만 30대 후반 이후에는 인문계와 공학계의 처지가 역전된다. (그래봤자, 의약계는 넘사벽으로 저 위에 존재하지만)

 

좋은 직업 취득 확률이 그렇다면, 고위직 취득 확률은 어떨까? 젊을 때는 고위직 진출이 어렵지만, 나이가 들수록 전공별 고위직 취득 확률이 중요해진다. 직업세분류의 "의회의원,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의 취득확률을 전공별로 계산했더니 공학계 출신도 인문사회계와 다르지 않았다. 연령이 높아지면서 다른 전공대비 공학계의 고위직 취득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위 그래프에서 좋은 직업 취득 확률 넘사벽, 의약계는 고위직 취득 확률은 다른 전공보다 낮았다. 

 

그래서 논문에서 내렸던 결론은 공학계 출신자들의 양극화였다. 대학에서 습득한 기술이 빠르게 노화하여 좋은 직업 노동시장에서 탈락하지만, 신기술을 계속 습득하여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남은 공학계는 다른 계열 전공자와 다를 바 없이 고위직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20년전 자료이고, 현재는 변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걸 볼 때, 나이가 들수록 공학계 전공의 메리트는 낮아지고, 인문계 전공의 메리트는 상대적으로 커지지 않을까 싶다. 공학을 전공하고 계속해서 좋은 위치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에 반해 인문사회계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가 나이가 들수록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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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나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골포스트를 계속 옮기면서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한겨레 신문의 작년 6월 보도 중 하나가 "‘경제적 보통 사람’ 그 많던 중산층은 어디로 갔을까?"이다. 중산층이 줄어들어서 문제라는 기사다. 어제 KDI 보도자료를 보고 쓴 한겨레 기사의 헤드라인은 "61%가 중산층이지만…자녀 세대 ‘계층 상승’ 기대는 뚝"이다. 줄어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늘었지만, 계층상승 기대가 떨어졌으니 여전히 문제. 

 

경제가 고도화되어 중산층이 늘어나고 소득이 안정화되는데, 상향계층이동의 기대도 계속 높아지는 사회는 없다. 그런 사회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현상은 개발도상국일 때의 미래 기대와 선진국이 된 후의 미래 기대가 뒤섞여서 편의에 따라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여론뿐만 아니라 학술적 논의도 그 영향을 상당히 받는 듯. 

 

아래 그래프는 KGSS에서 다른 한국 평균 가족의 소득 대비 우리집의 소득(문항 finrel05)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어제 KDI의 중산층 비중이 가구소득을 기준으로한 객관적 지표라면 아래 그래프는 주관적 지표라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중산층인지 묻거나 계층지위를 물어본건 아니지만,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보다시피 자신들의 소득이 한국 평균이라는 대답이 2007년 33%에서 2021년 52%로 대폭 늘었다. 19%포인트, 증가율로 보면 근 60%에 달한다. 이에 반해 하층이라는 응답은 47%에서 36%로 11%포인트 줄었다. 상층이라는 응답도 20%에서 12%로 줄었다. 2007-8년에는 하층이라는 응답이 중산층보다 15%포인트 많았는데, 이제는 중산층이라는 응답이 하층이라는 응답보다 16%포인트 더 많다. 객관적 지표에서만 중산층이 늘어난게 아니고, 주관적 인식에서도 중산층이 늘었다. 

 

소득하층이 줄고, 중산층이 늘었다는 것은 상향이동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소득하층 가구라면 지난 10년 사이에 계층 상향 이동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도대체 누가 계층상향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느낄까? 위 그래프에서 보듯 예전에 소득 상층이었던 사람들은 중산층이 되니 하향이동이 늘었다고 느낄거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소득 1-2분위 하층의 상승률은 높았고, 9분위의 증가율은 낮았던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의 계층별 소득 변화와 일치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소득최상층의 증가율이 가장 낮았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상층이 아니라 차상층의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한국에서 계층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집단은 사다리를 실제로 필요로 하는 계층이 아니라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차고 싶어하는 중상층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여론시장에서 목소리도 높다. 중간층과 중상층의 차이가 더 벌어지지 않아서 느끼는 두려움은 아닌지. 

 

 

Ps. 그럼 여러 설문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기는 비중이 줄었다는 조사는 뭔지 의문이 든다. 제가 생각하는건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다. 중산층의 정확한 규정은 없다. 사회과학자에게 물어봐도 중간 50%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상위 10-20%를 실제적인 중산층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 설문에 따라 중산층의 의미가 중간일수도, 꽤 괜찮은 경제적 지위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중간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다가 갈수록 괜찮은 경제적 지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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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보고서 원문

연합뉴스

 

아래 글에 종종님이 댓글로 기사를 링크해줘서 알게되었는데, KDI에서 "우리날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를 냈다. 내용은 네가지다. 

 

1. 2010년대 이후 중산층은 줄어든게 아니라 늘었다. 전체 소득 중 중산층의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이에 반해 소득상층이 전체 소득 중 가져가는 비중은 줄었다. 빈곤층도 줄었다. (그러니 당연히 불평등은 줄어든다)

2. 주관적으로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비율도 높아졌다.

3. 하지만 계층이동성 인식은 낮아졌다. 

4. 그런데 연간소득 변동률로 본 소득이동성은 줄었다.

 

아래 그래프가 기사에서 제시한 KDI 보고서의 소득이동성 자료다. 

 

이 내용 중 1,2,3은 이 블로그에서 계속했던 얘기다. 2008년 이후 불평등은 줄었고, 자신을 중상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늘었다. 상층의 소득이 훨씬 크게 증가했다는 주장들이 많은데, 이 번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그렇지 않다.

 

이 보고서에서 4가 새로운 내용이다. 그러니 4의 의미에서 대해서 조금 알아보자. 

 

이 보고서에서 소득이동성은 연간 소득의 격차이다. 연간 소득을 로그로 전환한 후 그 차이를 절대값으로 바꾸어 평균을 낸 것이다. 시장소득 이동성이 .30이면 아주 대략 연간 가구 소득이 30% 정도씩 증감한다는거다. 보고서에서 사용한 방법은 Fields & Ok (1999)가 이렇게 보는게 제일 낫다고 주장했던 그 방법인데, Fields & Ok은 논문에서 자신들이 연구하는 소득이동은 세대내 이동 (intragenerational mobility)의 측정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니 KDI 보고서는 세대 내 이동으로 세대 간 이동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셈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Fields & Ok이 제시한 소득이동은 소득불안정으로 인한 변동과 경제성장으로 인한 소득 증가 모두를 포괄한다. 그러니 소득이동성이 높아진다고 반드시 좋은게 아니다.  Fields & Ok은 원 논문에서 미국 소득이동의 두 시기를 비교해서 소득이동성이 낮았던 70년대가 높아진 80년대보다 바람직하다고 기술한다. 

 

동일한 방법으로 유럽 5개국을 비교했던 Ayala & Sastre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과 비슷한 소득이동성을 보이는 국가는 이태리(.278)와 스페인(.295)이고, 독일(.192)과 프랑스(.166)은 한국보다 훨씬 낮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동성에 끼치는 경제성장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 노동시장 유연성, 낮은 사회복지, 높은 불평등으로 인한 소득 불안정 때문에 이태리와 스페인의 소득이동성이 높다. 

 

한국에서 소득이동성이 2011-2019년 사이에 낮아진 것은,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지표가 아니라 소득불안정성이 줄어들어 안정적 수입이 늘었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 스토리가 중산층이 늘어난 경향과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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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한차레 떠들썩하게 아비투스에 대해 설왕설래하다가, 한국은 상위계급의 아비투스랄게 없다는 식으로 정리되는걸 보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비투스의 의미에 대한 복잡한 논의들은 많다. 구조와 행위자의 관계로 기든스의 구조화와 연결시켜 비교하는 연구도 있고. 이 논의는 문화를 행위의 툴박스로 규정하는 논의와도 연결된다. 

 

어쨌든, 몇 해 전에 수저계급론이 유행하고, 중산층이 세습된다는 책도 나올 때, 사회학자들이 한 주장이 그거 아니다라는거다. 한국은 다른 어떤 사회보다 계층 이동이 활발하며, 1980년대 후반 출생자가 노동시장에 진출한 시점까지 계급의 대물림이 강화되기 보다는 약화되었다. 교육지위의 획득 면에서, 직업지위의 획득 면에서, 소득 랭크의 상관성 면에서 모두 그러하다. 

 

서베이 자료에서만 그런게 아니고,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자료 행정자료로 소득의 rank-rank association을 봤더니 유럽이나 미국의 수치대비 절반 이하로 극히 낮은 부모 자식 간의 소득 상관성이 나오더라. 이 자료를 분석했던 학자들이 오히려 당황했었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1990년대생은 달라요다. 그럴수도 있기는한데, 당시에는 아예 90년대생 노동시장 자료가 없던 시절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측해서 사회가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회과학이라니. 1990년대생에 대해서 확실했던 자료는 교육수준이다. 하지만 교육의 대물림이 1990년대생에게서 강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은 계급의 대물림, 계층이동의 저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회가 아니고, 오히려 상위계급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계급/계층 출신에 상관없이 다 같이 참여하기 때문에, 경쟁이 극심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회다. 

 

 

 

 

아래 그래프는 몇 년전 출간한 책에 포함했던 건데, 1960년 이후 센서스에서 관리전문직의 비중 변화를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 25-64세 전체 노동인구나, 25-34세 청년층이나 관리전문직 비중에서 차이가 없었다. 1995년에는 11.1%로 정확히 일치한다. 1990년대에도 청년층의 교육수준이 장년층보다 높았지만, 관리전문직 획득에서 경험의 중요성이 학력 대비 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대적 고학력 청년층과 그 윗세대 간의 관리전문직 비중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25-34세 청년층에서 관리전문직의 비중이 다른 세대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청년층 교육팽창이 이들의 직업 선택에 크게 영향을 끼쳤고, 관리전문직 획득에서 경험보다 교육의 중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출신계급/계층에 상관없이 확대되었는데, 대학 학위를 획득한 후 관리전문직을 획득할 수 있는 오즈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대비 전체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대학 졸업 후 바로 관리전문직을 획득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졌다. 이렇게 교육이 급속히 팽창하고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 상층 계급/계층의 아비투스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몇 년 간 떠들었던 청년층의 몰락이 과장된 얘기였다는 주장이 늘지 않을까 싶다. 

 

중하층이나 하층 출신이 자신들의 부모와 중산층 부모를 비교하며 요즘은 다르다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1970년대도 그 정도 차이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6세대가 대학에 가고 사회에 진출하던 시절에는 계층이동이 활발했고 상위계층의 별도 아비투스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관련되어 있지만, 조금 다른 얘기로 미국과 영국의 계층을 비교하며 왜 영국에서는 자수성가형 상층이 진보가 되고, 미국은 보수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사회학 연구가 있다. 이유는 미국은 계층에 따른 문화 취향의 차이가 없고, 귀족이 없어서, 경제적 상층이 된 후 배제(exclusion)되는 영역이 없는데, 영국은 경제적 상층이 되어도 보수적 귀족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지위불일치(status inconsistency)가 있다는거다. 이 지위불일치를 타파하기 위해서 영국 자수성가형 부자는 진보가, 지위불일치가 없는 미국은 자신의 계급 이해에 따라 보수가 된다.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줬던 옛날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가 있다. 영국에서 노동계급 출신으로 발레리나를 꿈꾸는 어린이가 어떻게 집안 내에서 계급갈등을 겪는가이다. 노동계급 출신 남자 아이는 축구나 복싱을 하는거지 춤을 추는게 아니다.  영국 사회는 좋아하는 스포츠도 계층에 따라 달아져야 했다. 미국은 이런 식의 구분이 없다. 계급/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다 야구를 한다. 

 

한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는 어떤가? 다들 알다시피 보수가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상층의 아비투스가 아니라 "노오력"이 계층을 결정짓는 요인이라는 이데올로기다. 한국에서 한 가지 예외가 출신지역이다. 영남 위주 권력에서 호남 출신을 오랫동안 배제했기에 호남출신 자수성가 부자들이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지게 된다.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사회적 지위의 불일치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출신 지역에 따른 배제의 구조가 약화되면, 호남에서도 계급에 따른 정치성향 차이가 더 커질 것이다. 

 

유럽보다 계급/계층에 따른 문화적 차이가 적은 미국도 Annet Lareau의 질적 연구에서 보여주듯, 중산층과 노동계급 자녀의 훈육 내용이 다르다. 그런데 한국은 자녀 훈육 내용의 차이도 거의 없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징을 잘 나타낸 영화가 <기생충>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로 표현되는 계급/계층 차이를 얘기하지만, 박사장 집의 문화와 기택 집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 <기생충>의 핵심 메시지는 계급/계층 분리라기 보다는, 무수히 많은 계단 장면으로 표현되는 계층이동이다. 한국에서 빈곤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 아니라, 계층이동의 기회라는 맥락에서 표현된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의 내용은 기회평등, 계층이동을 중시하는 미국의 입맛에 상당히 맞았던 영화였다.

 

 

 

 

정리하자면, 한국 사회의 특징은 고착화된 수저계급론과 그에 따른 수렁과 절망이 아니라, 동일한 목표를 향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실시하는, 그래서 활발한 계층이동이 오히려 스트레스인 그런 사회다. 

 

이런 사회가 지속될 것인가?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안정화되고 고착된 계층분리 사회로 되어갔듯, 한국 사회도 그럴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한국의 중상층과 상층도 그런 "안정된" 사회를 열망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특징인 역동성은 활발한 계층이동과 그에 따른 갈등의 이면이기도 하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미국은 여전히 역동적이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 가장 역동적인 계층이동을 보이는 집단은 이민자다. Immigrant Paradox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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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

한국은행 박용민, 허정 연구원의 전체 보고서

 

재미있는 분석인데, 이 분석은 결혼할 당시의 남녀의 소득을 본 것이 아니라, 현재 결혼을 유지 중인 25-64세를 대상으로 하였다. ILO의 이상헌 선생이 페북에 썼듯이, 이렇게 하면 한국에서 실제로 소득동질혼이 약한지, 아니면 소득 동질혼이 이루어졌다가, 남편의 소득이 높아서 여성이 경력단절을 더 쉽게 하고, 남편의 소득이 없으면 여성이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게되어 나타나는 현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분석에 쓰인 자료다. 가금복의 개인 소득을 이용했는데, 통계청 mdis에서 일반 공개하지 않는 자료다. 이런 분석을 할려면 부부 각자의 소득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mdis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 가금복 자료는 부부 개인 소득이 없다. 가계동향조사는 부부개인 소득을 제공하는 것에 비해 가금복으로 가구소득을 파악하면서 자료 공개 범위가 오히려 축소되었다. 가계동향조사는 1998년인가 이후 부부 개인 소득을 제공하고, 나머지 가구원의 소득은 하나의 변수로 제공한다. 가금복은 가구원 모두의 개인 소득을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 소득은 공개자료에서 제공하지 않고 있다. 개인소득이 포함된 자료는 한국은행 같은 연구기관은 접속이 가능하고, 그게 아니면 별도로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야만 쓸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연구가 드물다.  

 

그건 그렇고, 여러 사람들이 가질 의문은 한국에서 소득동질혼이 결혼 당시의 소득으로 봐도 다른 국가보다 낮을 것인가이다. 그런데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있다.

 

사회학 연구자들에게는 이제 상식이 된 결과일텐데, 박현준 교수의 연구 시리즈(예를 들어 요기, 요기, 요기)를 보면 한국은 교육 동질혼이 강화된 서구 국가와 달리 1990년대 초반 이후 교육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교육 동질혼이 약화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교육 동질혼이 강화되다가, 교육팽창이 이루어진 그 이후로는 오히려 약화된 것이다. 교육 동질혼의 단순 비율만 본 것이 아니라, 부부의 학벌 분포를 통제한 후 상대적 오즈를 본 것이다. 

 

교육이 소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감안할 때 소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소득 동질혼 추세도 줄어들었을 개연성이 상당히 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물론 추가 연구를 필요로 한다. 혼인 결정의 계층 중요성이 줄어들고, 사회적 개방성이 높아진 결과일수도 있지만, 전혀 반대로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계층 지위가 아닌 부모의 계층 지위가 혼인에서 중요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구 소득에 끼치는 부모의 효과는 줄어들고 개인의 교육, 경력, 직업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교육 동질혼의 감소, 소득 동질혼의 감소는 가구 소득 불평등, 삶의 질의 불평등의 감소에 기여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인구학적 메카니즘과 감소시키는 메카니즘이 혼재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 없이 한 두 가지 결과로 지르는 주장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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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의 구간을 물어본 자료로 불평등을 분석하는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요즘이야 소득 자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해져서 개인, 가구 상세 소득이 있었지, 옛날에는 그런 자료가 매우 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을 분석했다.

 

소득 구간을 객관식으로 물어본 자료를 grouped data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이런 자료를 이용한 불평등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국가 간 비교는 아직도 대부분 구간 소득 자료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Milanovic의 논문들). 

 

그럼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이런 자료로 불평등 분석하고 가족 배경 통제해도 문제는 없는걸까? 의문이 생긴다고 구간 소득 자료로 분석한 연구는 이상하거나 틀렸다고 페북에서 용감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본데, 그런거 아니다. Davies & Shorrocks (1989)이 이미 한 세대 이전에 여기에 대해서 연구해서 Journal of Econometrics에 논문을 출간했다. 경제학 방법론 논문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저널의 의미가 뭔지 알거다. Shorrocks은 소득불평등 분해에서 자기 이름 붙은 방법론을 개발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구간 소득으로 측정한 불평등 정도와 상세 소득으로 측정한 불평등 정도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소득의 구간이 5개 이상이면 "any bias present is relatively small"이다. 그러니 구간 소득으로 측정한 분석에 오류가 클거라는 조바심은 고이 접어두셔도 괜찮다. 

 

그런데 구간 소득이 아니라 연속변수로 소득을 물어봐도 구간 소득으로 물어본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하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이 소득을 반올림 내지는 내림해서 보고하기 때문이다. 월소득이 323만원이면, 걍 300만원 쯤으로 대답한다. 이런 식의 패턴 때문에 연속변수 소득도 특정 소득 지점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소득 분포의 그래프(density graph)는 너무 금액 단위(bin)을 자세하게 나누면 그래프가 오히려 부정확해진다. 적절하게 구간으로 봐야 분포 그래프가 정확하다. 미국 세금 자료와 SIPP 자가 보고 소득의 격차를 연구하면서 직접 체크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요기, 요기). 

 

구간 소득을 이용할 때 한 가지 이슈는 톱코딩이다. 예를 들어, 보통 100-200만원 사이면, 중위값이 150만원으로 코딩하면 되는데 (랜덤값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최고 응답 구간이 1천만원 이상일 때, 여기에 어떤 값을 줘야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1천만원은 하위값이라 부적당하고, 그 위의 값을 쓰려니 어느 값을 써야될지 막막하다. 이 주제도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연구했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법은 상수를 곱하는거다. 불평등 연구하면 빼놓을 수 없는 David Autor 등도 톱코딩 소득은 1.3을 걍 곱했다. 또 다른 방법은 톱코딩 이하 소득분포를 감안해서 log normal distribution을 가정하는거다. 연도별로 구간 소득값이 같더라도, 조금씩 상위 소득으로 이동하면, log normal distribution의 톱코딩 변환값은 변화한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EPI에서 여러 톱코딩을 적용해서 불평등을 비교한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미국 <Current Population Survey>에서 2010년에 톱코딩을 없애기 전에 모든 소득불평등은 톱코딩에 이런 식의 임의적인 조치를 취했다. 제가 GOMS 자료를 이용한 논문을 쓸 때 이 방법론들을 모두 적용해보고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걸 확인했었다. 

 

그러니 뭔가 의심이 들 때는 남들이 연구해놓은건 없는지 찾아보는게 좋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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