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사: 학벌주의 심해지길 바라는 고대생글

국민일보 기사: 사이다 팩트 폭격이라는 반박글


고대생은 제공된 기회에서 내가 성공했으니 더 이상의 불확실성은 없어야 한다는 관점, 그에 대한 반박글은 대입 기회 제공이 완전히 공정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추가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얘기. 


최근 몇 번에 걸쳐 얘기했듯 학벌주의를 바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박글이 모두 공정한 기회 제공과 반복적 기회 제공을 이상적 사회로 그리고 있다. 두가지 논리 모두 기회균등 기획이라는 틀에서 나오는 사고다. 




그런데 설사 기회균등의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대생의 소망과 달리 학벌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다른 하나는 능력지표로써 가지는 교육의 한계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배제적 컨셉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현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어떤 활동은 기존 지식의 완벽한 습득과 반복을 요구하고, 다른 활동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혁신을 요구한다. 교육은 주로 전자의 지표인데, 이 지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시간주립대 교수인 스캇 페이지가 행한 실험 중에 이런게 있다. 시험 성적이 좋은 애들끼리만 10명 모아놓은 그룹보다, 시험성적 좋은 애들 5명, 중간 성적 5명을 섞어 놓은 그룹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는 것이다. 다양성이 곧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더라는 것. 


현재의 대학 입학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혁신은 비슷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할 때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때 생겨난다. 학문 분야에서도 자기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끊임없이 곁눈질해야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우수 인재들끼리만 끼리끼리 뭉치고 다양성을 추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고, 학벌이 어떤 능력의 완벽한 지표일지라도, 완벽한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도태된다.  


(그런데 다양성을 강조하는 페이지 교수의 실험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 지식의 습득을 잘한 우수 성적 그룹이 기존 문제 해결과 혁신 모두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록 한계가 있지만, 우수 인재를 우수 대학에서 선발하는 과정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교육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는게 바로 수월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학 입학 선발 기준으로 미래의 모든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최대적용의 원칙을 가지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지만, 그 기준이 향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정확한 기준은 아니다. 


학벌이 20대 중반의 청년의 능력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표이기는 하나 사회적 성공지표로써의 신뢰성(reliability)이 매우 높지는 않다. 학벌이라는 가장 좋은 지표도 미래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지표로써의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40-50대에 이른 사람들은 학창시절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있던 친구들의 처지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실감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 성적 몇 점으로는 측정할 수 없던, 하지만 돌이켜 보면 뭔가 달랐던 능력 차이다. 통계에서 항상 얘기하는 학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고용주나 인사 담당자는 알 수 없는 능력(unobserved heterogeneity)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학벌이 한계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분야들이 해보기 전에는 누가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신뢰감있게 잘파는 세일즈맨이 있고, 똑같은 이론을 배워도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학생이 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더욱이 경제가 변화하면서 학벌주의가 가지는 능력 지표 기능이 강화되기 보다는 약화되고 있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게 소프트 스킬이다. 경제가 변화하면서 피플 스킬 내지는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는 이유를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공감 능력이 높으니까. 


그런데 정규 교육은 소프트 스킬을 측정하는 지표로써의 기능이 작다. 소프트 스킬이 생산성 향상과 회사 이윤 추구에 중요해질수록 학벌주의의 기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좀 더 포말하게 얘기해 보자.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정규 분포가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고, 파란색이 낮은 사람들이다. 능력 지표로써의 교육의 한계 때문에, 또한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 불확실성 때문에, 현 시점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의 variance가 학벌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요구되는 능력의 최고점에서 학벌이 높은 사람들 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포션이 커지게 된다. 설사 고학벌의 평균이 높더라도, 최상층 인재 충원으로 갈수록 학벌의 중요성은 낮아진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능력주의 또는 실력주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Meritocracy는 마이클 영이라는 영국 사회학자이자 소설가가 처음 쓴 말이다. The Rise of the Meritocracy라는 소설에서 쓴 용어. 


그런데 마이클 영은 이 용어를 실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공정한 사회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가 되는지를 비꼬기 위해서 썼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지적 능력, 교육 성취, 기타 개인의 성취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가 어떻게 계급 재생산을 영속화시키고 사회의 통합을 망치는지 비꼬기 위해서 공적, 장점, 우수성을 뜻하는 merit과 그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cracy를 합쳐서 meritocracy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많은 사회에서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성취를 이루는 훌륭한 사회를 칭하는 말로 둔갑하였다. 능력주의 사회가 이상향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British Journal of Sociology에 실린 논문


며칠 전 영국사회학지에 재미있는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사회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회학 연구는 부모 배경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끼치는데, 교육은 한 매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교육 외에도 부모와 자녀의 사회적 성취를 연결시키는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연구에서 교육은 최종 학력이 무엇인가로 측정하고, 추가로 몇 가지 교육 변수를 통제한다. 


그런데 설리반등 일군의 영국 사회학자들이 5세, 10세, 16세의 지적 능력 점수를 비롯하여, 출신 중고교의 특성, 그 때의 성적, 대입학력고사 성적, 영어/수학 능력, 학위 타입 등의 매우 광범위한 지적 능력과 교육 성취에 대한 변수를 통제했더니, 대기업 매니져나 변호사 의사 등의 상층 전문가가 될 확률에서 부모의 계급이나 소득 같은 가족 배경이 끼치는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가족 배경의 독립적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연구는 처음 봤다. 이 결과는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교육과 지적 수준으로 온전히 설명이 되더라는 것. 




문제는 이렇게 지적 능력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급이 자기 재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SKY로 대표되는 엘리트 대학 입학생 중 강남 출신이 늘어나는 것은 이들이 남다른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부모들의 희생으로 더 많은 공부를 했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성취는 사회적 혜택이 아니라 자신의 노오력의 결과로 본다. 이 사회에서 "박애"에 기반한 정책은 남기 어렵게 된다.  


요즘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Richard Reeves의 Dream Hoarders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상위 5~10%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수많은 투자를 하며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공정"이라는 말도 meritocracy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공정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과정 상의 공정이 모든 것도 아니다. 인위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가져오는 조치를 추가로 취하지 않는 공정은 한 사회의 계급생산을 영속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홍춘욱 경제팩트] 한국 여학생은 왜 이공계 진학을 기피할까? 


여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수학 실력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이라는 홍춘욱 박사의 주장. 


홍춘욱 박사의 칼럼에 재미있는 논문이 하나 등장하는데 Guiso 등 4명의 학자가 2008년 Science에 출간한 "Culture, Gender, and Math." 


아주 센세이셔널했던 논문인데, 이 논문의 주장은 아래 그래프 하나로 요약된다. 2개 그래프 중 아래 주황색 그래프가 World Economic Forum의 Gender Gap Index (GGI). 지수가 높을수록 양성평등도가 높은 국가. 이 지수는 한국의 높은 여성차별을 논의할 때 자주 인용되는 지표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의 수학 성적 격차는 성평등 지수가 낮은 국가에서 높고, 성평등 정도가 좋아질수록 수학 성적 격차가 줄어든다. 첫번재 그래프에서 노란색이 성별 수학 성적 격차. 보다시피 오른쪽으로 갈수록 (=성평등이 높아질수록) 격차가 줄어듬. 그래서 이 논문의 결론은 여성의 낮은 수학 성적은 해당 국가의 성차별 문화 때문이라는 것. 성별 수학 성적 격차의 문화결정론이 할 수 있다. 



이렇게 센세이셔널했던 논문이 검증을 피할 길은 없다. 이 논문 이후에 문화결정론에 대해 논박하는 논문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을 끄는 것은 Stoet & Geary의 2015년 Intelligence 논문


요점인 즉, Guiso et al의 2008년 논문이 2003년도 PISA 자료를 사용한 것인데, 그 이후 데이타를 사용해보면 동일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아래 그래프를 보면 맨 위 2개가 2003년 자료를 사용한 것이고, 그 아래가 2006년, 2009년 PISA를 사용한 것. 2003년과 2009년의 가장 큰 차이가 Iceland의 위치 변화인데, 보다시피 2003년 대비 2009년에 Iceland의 성별격차 지수가 바뀌니 남녀평등문화와 성별 수학 격차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zero로 변화함. 


Stoet & Geory는 국가 간 비교 뿐만 아니라 국가 내 비교를 통해서 남녀 간의 수학 성적 격차, 특히 상위권에서의 격차는 robust하다고 주장함. 남녀 간 수학성적 격차를 문화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럼 성별 수학 성적 격차와 문화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건 또 그렇지가 않음. 올 5월 AER P&P에 실린 Nollenberger 등의 논문에 따르면 남녀 평등 문화와 수학 성적은 밀접한 연관이 있음. 


이들은 이민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성별 수학 능력 격차를 측정. 9개 이민 대상국(destination countries)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민 대상국의 특성을 통제한 후(통계적으로 fixed effects model) 부모 세대의 origin countries의 문화적 특성이 성별 수학 성적 격차에 나타나는지 살펴본 것. 부모 세대의 origin countries의 갯수는 35개. 


Destination countries의 특징을 FEM으로 통제했기에 국가 간 institution의 차이는 통제됨. 또한 이민자 자녀들이 모두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교육시스템의 차이, 교사의 문화적 차이도 통제됨. 남는 것은 부모 세대의 문화적 격차.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도가 높은 국가에서 온 이민2세대의 성별 수학 격차가 성평등도가 낮은 국가에서 온 이민2세대의 성별 수학 격차보다 훨씬 낮음. 약 70%의 성별 수학 격차가 문화적 요인으로 설명됨. 


이렇게 연구마다 결론이 다르다는 것은, 이 주제에 대해 대다수가 동의하는 결론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 어쨌든 이 세가지 연구 중 마지막 연구가 가장 문화와 성별 수학 성적 격차의 인과관계에 가까움.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성적 격차가 모두 문화에 의해 설명될지는 모르겠으나, 성차별 문화와 성별 수학성적 격차에 상당한 상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는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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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사: 중학생 13만명 줄고 대학 진학률 70%대 무너져…대학 ‘비상’


대학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막상 닥치기 전에는 잘 실감이 안날 것. 얼마나 드라마틱한 감소가 예상되는지 후덜덜함.  




한국의 신생아수는 1971년이 102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1970: 100만

1975: 87만:    5년 전 대비 13만명 감소 (13% 감소)

1980: 86만

1985: 66만:    5년 전 대비 20만명 감소 (23% 감소)

1990: 65만

1995: 72만

2000: 63만

2005: 44만:    5년 전 대비 19만명 감소 (30% 감소)

2010: 47만

2015: 43만



1970년 이후 신생아수 변화는 3번의 급감기와 3번의 안정기로 나눌 수 있음. 보다시피 각각의 감소기에 분모가 더 작아졌기에 절대수 대비 비율적 감소폭은 더 커졌음. 70년대초의 13% 감소에서 2000년 후반은 30% 감소로 감소폭이 크게 증가하였음. 


신생아수 감소가 장기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중된 급격한 감소인 것도 재미있는 특징임. 예를 들어 81년과 82년의 감소 폭이 매우 크고, 2001년과 2002년의 감소폭이 매우 큼.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름. 


3번의 안정기는 75-80년 사이의 짧은 시기와,  1985-2000년 사이의 15년 간, 그리고 2005년 이후 현재까지의 10여년간임. 물론 5년 단위로 대충 본 것이고 각 연도별로 살펴보면 구체적 기간은 변화함. 그러나 대략적 추세를 보는데는 아무 문제 없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에도 신생아수의 큰 감소가 있었는데 대학 진학자수는 별로 줄어들지 않음. 하지만 앞으로는 큰 감소가 예상되는데, 그 이유는 대학 진학률의 변화 때문임. 


19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1990년대 초에는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에 30%초반에 불과하였음. 전체 대학신입생수가 30만명이 조금 넘었음. 


그런데 1970-1975년 사이 13만명의 신생아수가 감소했지만, 이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할 때 진학률은 약 10%포인트가 증가함. 출생 코호트 사이즈는 줄었지만 대학신입생 코호트 사이즈는 오히려 약간 증가하였음. 70-75년 의 신생아수 감소는 대학 진학자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음. 


1980-85년 사이 신생아수가 감소한 코호트가 대학에 가던 1999-2004년 사이에도 대학 진학자수는 문제가 안됨. 그 전 시기 상당 기간에 걸쳐 꾸준히 대학 진학률이 증가하였고,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짧은 시기에 진학률이 10%포인트 가까이 추가로 증가함. 2000년대 초에는 80%가 대학에 진학하기에 65만 코호트 사이즈에 80% 진학률을 대비하면 대략 대학 신입 코호트 사이즈는 50만명이 됨. 1970년생 코호트에 비해 코호트 사이즈는 35% 줄었지만, 대학 진학 사이즈는 70% 증가한 것. 


고교 졸업 인구가 줄었음에도 대학가기가 더 어려워 진 것은 이처럼 경쟁자가 늘었기 때문. 


어쨌든 신입생수의 변화와 대학증원 확대로, 비록 여러 부침이 있지만, 50만명 전후의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추세는 2000년생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2019년까지는 지속될 것임.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위기를 떠들지만 아직은 1985-2000년 사이의 신생아수가 안정된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호시절이라 할 수 있음.  


하지만 위에 링크한 동아일보 기사에서 써있듯 2020년 부터 사정이 완전히 달라짐. 80%를 넘던 대학 진학률이 70% 이하로 쪼그라들고 앞으로도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큰데, 출생 코호트 사이즈는 2000년 이후 2-3년 사이에 30% 감소함. 대학 진학률을 70%로 가정하면 신입생 총수는 대략 30만명이 조금 넘을 것. 60%로 진학률이 떨어지면 대학 신입생 수는 27만명으로 낮아짐. 앞으로 5년 이내에 대학 신입생이 갑자기 40% 가까이 격감할 것으로 예상됨. 


이렇게 되면 모든 대학이 정원을 축소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대학의 1/4-1/3이 문을 닫는 것도 막연한 공포만은 아닐 수 있음.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대학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됨. 교수 출신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신생 박사가 교수직을 얻는 것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하늘의 별따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함. 


그야말로 대학에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 


2020년 부터 상당 기간 새로운 equilibrium이 형성될 때 까지 어느 대학이 살아남아 버티는가가 관건이 될 것임. 





ps.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최근 이화여대의 평생교육 단과대 설치 시도를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행군시기를 버티기위한 준비과정의 하나로 이해함. 교육부 주도의 대학 "개혁"에 불만이 많겠지만 파편화된 개별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지도 않음. 이화여대 사태가 앞으로의 대학 변화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 진화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물건너 간 듯.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주간동아 기고문


이화여대 사태에 대해 또 한가지 생각해볼 점이 학위장사가 과연 유망하냐는 것. 예전에 이주호 전교육부 장관이 "한국은 인적자본 1등 국가인가?"라는 글에서 한국의 교육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고 보여준 적이 있음. 


내가 다른 자료로 분석해봐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불평등이 늘어났지만 그 원인이 교육 격차의 확대 때문이 아님.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기술의 숙련 편향적 발전이 불평등 증가의 원인이라는 경제학의 주장과 한국은 잘 맞지 않음. 


미국과 유럽에서도 21세기에 들어서는 고등 교육의 노동시장 리턴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고 있음. 




이 기고글에서 알리고 싶었던 얘기의 핵심은 아래 두 단락: 


"... 한국에서 학력 프리미엄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꾸준히 감소한다. 2014년 현재 대졸자의 고졸자 대비 학력 프리미엄은 22%로 90년보다 33%p나 감소했다. 비율로 보면 2014년 현재 대졸자의 학력 프리미엄은 90년대 대비 40%에 불과하다. 대학원 졸업자의 학력 프리미엄 감소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같은 기간 80%p 감소했다. 프리미엄이 4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대졸자와 비교할 때 대학원 졸업자는 현재 연소득이 단지 5% 높을 뿐이다. 


같은 기간 대졸자와 초대졸·대학 중퇴자의 소득격차도 크게 줄어들었다. 유일하게 학력 프리미엄이 늘어난 경우는 고졸 미만자 대비 고졸자 항목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25~59세 남성 가구주 중 고졸 미만자는 매우 적다. 여성의 경우 자료 확보가 가능한 1998년 이후 학력 프리미엄의 변화 경향이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원인에 대한 질문이 뒤따라야겠지만, 그건 이제 연구를 해야지 ...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소득과 학업성취

교육 2016.07.02 21:51

- 시장을 보는 눈(채훈우진아빠): 교육자원과 학업성취도의 관계

- 시장을 보는 눈(채훈우진아빠): 가족배경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

- Reardon: The Widening Academic Achievement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교육은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관심사인 듯. 막강블로거이자 막강 이코노미스트인 채훈우진아빠님이 재미있는 포스팅을 두개 올려주셨다. 


채훈우진아빠님의 주장은


1. 부모의 학력 통제 후 소득은 교육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심지어 높은 소득이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2. 대신 부모의 관심, 사교육비, 학생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렇게 요약이 된다.  


그런데 소득 효과의 순효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소득효과가 없다는 측에서 하고 싶은 주장은 부모의 소득이 아닌 부모의 관심, 내지는 본인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학력(물려받은 두뇌)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학업성취에서 물려받은 두뇌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학력과 부모의 소득은 서로 강한 상관관계를 지니기 때문에 부모의 교육(인지능력)을 통제하지 않은 부모의 소득 효과는 완전히 spurious effect이거나 과대 계상의 오류를 가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소득이 교육에 끼치는 효과를 측정할 때 부모의 관심, 사교육비 등을 통제해야 하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한 번 생각해보자. 


본인의 노력과 부모의 관심, 투자 변수를 모두 통제한 후의 소득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본인이 열심히 하는 것, 부모가 높은 소득으로 사교육비에 투자하는 것, 소득이 높은 부모가 심적 물적 여유가 있어 아이의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모두 통제하고 남은 순효과로써의 소득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소득이 교육에 끼치는 메카니즘(기제)를 모두 통제하고 난 후 그래도 남는 소득 효과를 본다는 것은 아이의 노력도, 부모의 관심도, 부모의 교육 투자도 모두 상관 없는 소득의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희화화시킨 것이기는 하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이는 마치 공부하는 시간에 상관없이 비싼 책상에서 공부하면 성적이 오르는지, 100만원짜리 펠리칸 볼펜을 쓰면 싸구려 모나미 볼펜을 쓴 것보다 학업성적이 오르는지를 검증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주장이 통계를 잘못 적용한 예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over-control의 문제, 즉 mis-specification의 문제를 가진다. 더 큰 문제는 현실에 대한 실체적인 함의도 없다.  


소득을 순수히 통제변수로 쓴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소득과 교육성취의 상관관계를 보고자 한다면 채훈우진아빠님이 소개한 논문과 같은 model specification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래 표3은 이 번 불평등 연구회 심포지움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의 일부다. 전하람,임혜정 선생의 글인데 주제는 어머니의 취업여부와 학업성취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만, 소득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함의가 있다. 


표에서 보면 부모의 학력과 자녀기대교육수준, 가구 구성 등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가계소득은 부모의 학교참여, 방과 후 감독, 사교육 참여, 교육비 투자에 모두 강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이 블로그에서 보여주지 않은 표 4.3을 보면 부모의 교육관여와 학습시간을 통제하기 전의 소득은 수학 성적 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만, 교육관여와 학습시간을 통제한 후에는 소득은 수학 성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소득 --> 교육관여/교육투자 --> 학업성취


위와 같은 메카니즘이 소득이 학업성취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이다. 소득이 학업성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소득이 교육관여/투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ps. 부모의 관심, 자녀와의 대화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그 역의 관계 즉, 학업성적이 좋은 자녀들이 부모와 얘기를 잘하는 역인과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부모의 관여가 가지는 효과는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이코노미스트 대학 랭킹


미국 교육부에서 얼마전에 발표한 대학졸업자의 10년 뒤 소득 추적 조사 자료를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것. 


이코노미스트의 대학 랭킹은 대학 입학생들의 여러 능력으로 볼 때 기대되는 소득과 실제 그 대학졸업자들의 소득을 비교하여 어느 대학이 학생들의 능력을 더 많이 올리는가로 랭킹을 매긴 것. 


이 방법론은 교육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은 누구나 읽어봤을 것으로 예상되는 Dale & Krueger의 논문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 Krueger는 최저임금 논쟁에 자주 소개된 그 크루거임. 


Dale & Krueger는 소위 잘나가는 대학이 잘나가는 이유는 입학생들이 잘났기 때문이지 그 대학에서 잘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 랭킹 높은 해당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갔을 때의 소득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이 통계 분석으로 입증. 


처음에 자료를 보고, (1) 대략 평균으로의 회귀 효과, 즉, 대학 학벌의 시그널 효과에 noise가 있기 때문에, 명성이 높은 대학은 대학 졸업 초기에 실력에 비해 소득이 적고, 명성이 낮은 대학은 실력에 비해 소득이 높은 효과가 있거나, (2) 명성이 높은 대학이 실력에 비해 많이 버는 후광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충 살펴봐서는 그렇지 않은 듯. 


위 기사에서 하버드(소득+)와 예일(소득-), 칼텍(소득-)과 MIT(소득+)의 차이가 눈에 띔. 




이 기사에서 사용한 자료는 대학별 졸업자의 소득을 미국세청 세금 자료를 이용해 추적한 것. 이코노미스트는 이 자료를 Cornucopia of Data 라 부름. 


한국에서도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자료임. 프라이버시라는 미명 하에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서 못하는거지.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논리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게 중립적인 듯 하지만, 사실은 기득권들의 이익에 복무함 (나중에 자세히).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지난 7월3-5일 중앙대에서 열린 제2회 한국불평등연구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최재성(성균관대 경제학과), 황지수(한국은행)의 논문. 


2010년 서울 고교의 자사고 전환이 학생들의 학력에 끼치는 효과를 측정한 결과,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하위 65%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저하됨. 반면 상위 30% 학생의 수학실력은 향상. 


아래 그래프의 선은 서울지역과 비서울지역의 각 퍼센타일의 학력격차를 측정한 것. 서울 지역은 2010년에 급격한 자사고 전환이 일어났고, 지방은 그러한 변화가 없었기에 2009년과 2011년의 차이를 자사고 전환의 효과로 해석할 수 있음. 자사고 전환이 효과가 없다면 2009년과 2011년의 그래프에 차이가 없을 것. 


하지만 보다시피 자사고 전환은 성적 하위권 학생들에게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쳐, 학생들의 평균 학력저하로 이어짐.


최.황은 이러한 결과는 2008년에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 등이 발표한 논문과는 상반되는 결과라고 주장. 자사고 전환의 주요 근거가 된 이 논문에서 이주호 장관 등은 성적에 따른 고교 선택(즉, 자사고 전환)이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었음.



전체 논문은 요기서 다운 로드 가능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http://nber.org/papers/w19653


대학에서 교수의 연구 성과를 결정하는데, 조직과 스타 교수의 영향에 대한 분석. 진화생물학 학과를 이용한 연구. 페이퍼를 다 읽어볼 생각은 없지만, 논문에서 보여준 그래프들은 무척 흥미로와 여기 소개.


일단 학교별 진화생물학과의 출간 논문수를 보면 아래 표에 보다시피 학교별 격차가 줄어들고 있음. 대학 간, 연구자 간, 연구 수준의 평준화?



하지만 이는 연구자 간의 생산성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님. 개인별로 보면 아래표에서 보여지듯, 연구 성과의 격차는 오히려 커졌음.




이 일견 모순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요인 중 하나는, 스타 과학자가 엘리트 대학에 속하는 비율이 줄어들었기 때문. 1980년에는 100명의 스타 교수 중 95%가 탑 50 학교에 속했지만, 2005년에는 82% 정도로 줄어들었음. (스타 연구자의 조직에 따른 sorting이 줄어든건지, 대학 조직이 연구자의 성과를 결정하는 정도가 줄어든건지는 아마도 향후 연구 주제.)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학교의 명성에 관계없이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 아래 그래프에서 첫번째는 공동연구자가 속한 학교의 명성의 격차, 두 번째는 공동연구자가 속한 학교의 물리적 거리. 보다시피 해가 갈수록 소속 학교의 명성 격차에 관계없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해가 갈수록 소속 학교의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


아마 정보 통신의 발전이 물리적 거리의 제한을 없애고 생산력을 높인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음. 나 역시 1,000 ~ 1,800 키로 떨어진 곳에 사는 분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함. 


이 결과가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학 연구자의 사례와는 달리 학력과 소득에 따른 지역 집중도는 높아졌기 때문. 뿐만 아니라 학력과 소득에 따른 회사 간 격차도 커졌음. 즉, 조직과 지역에 따른 sorting이 다른 영역에서는 커지고 있지만, 대학에서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겨레 기사: 빈곤층엔 대안 없는 대안학교.


모두가 같은 교육을 받는 공교육은 19-20세기 진보의 커다란 성과 중 하나다. 빈부와 관계없이 동일한 내용의 교육을 동일한 시설에서 받는 시스템이 18세기의 귀족 교육에 비해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듯 하다.


교육은 비싼 산업이다. 국방비도 전체 GDP의 3%를 넘지 않지만, 공교육에 전체 국민 생산액의 7-8%를 사용한다. 이 중 5%정도가 정부 예산이고 2-3%가 학부모가 대는 돈이다. 이 돈의 상당부분은 물론 소득 상위 20%가 낸 세금이다. 공교육이 없어지고 모든 교육이 대안학교 식의 사교육으로 바뀌면, 없는 사람들은 지금 공교육이 제공하는 수준의 교육을 자녀들에게 결코 제공할 수 없다. 너무 비싸서. 


그 의도와 관계없이 공교육이 아닌 것에서 대안을 찾는 거의 모든 시도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걸로 결말이 날 것이다. 지금은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재벌 자녀가 영훈국제중학교 정도에 넣을려고 하지만, 대안학교가 활성화되면 재벌은 그들만의 대안학교를 만들게 될 것이고, 교육 예산을 줄이자고 요구할 것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