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현대 기사



보통 H 교수라고 칭해지지만, 기사에서도 실명을 썼으니 이제 실명으로 불러도 되겠지?


이 사건은 여러가지로 할 말이 많은 사건임. 징계가 확정되고 난 후에 좀 천천히 얘기할려고 했는데, 징계는 계속 미뤄지고 학생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했기에, 뭐라도 얘기를 하는게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듦. 


이 분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을테고, 이슈는 잘못의 정도, 상당성임.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3개월 징계를 권고한 것으로 보았을 때, 과거의 선례에 비추어 해임이나 파면을 할 정도의 내용은 당시에 확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함. 


이 경우 해임이나 파면을 하면 정식 재판 절차를 통해서 교수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음. 교수는 교원법에 따라서 징계를 받는데, 법이 허용하는 징계가 파면, 해임, 그 다음이 3개월 정직임. 해임에 이를 사안이 아니면 아무리 괘씸해도 3개월 이상의 징계가 불가능한게 현재의 법. 이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징계를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징계를 먹이기도 함.  


의도적으로 과잉징계를 한 사례는 아니지만, 해임 후 징계취소로 복귀한 사회학과의 전례도 있음. 2000년에 동국대 ㄱ 교수의 경우 성폭력을 행사했고, 학교에서 해임까지 했지만,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를 통해 해임 취소 처분을 받고 복귀하였음. 경찰조사도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대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면된 나향욱 교육부 기획관도 재판을 통해서 복직이 거의 확정된 상태. 재징계를 한다지만 파면은 불가함. 아마 최대 강등일 것. 신상필벌은 그 절차를 지켜야하고, 비례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 그게 근대사회의 근간인 죄형법정주의 아니겠음? 





그런데 도대체 왜 서울대는 징계를 계속 미루고 있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함. 


하나는 학생들이 의심하듯이 3개월 징계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학생들의 반발이 지속되니까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는 것. 하지만 조직의 위기 관리 대응의 일반적 사례로 봤을 때 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함. 


다른 하나는 대학 본부에서 얘기하듯 일부 징계사항에 대한 외부 조사의 결과를 기다라고 있기 때문. 외부 조사 내용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기된 의혹으로 보았을 때 횡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성희롱이나 갑질은 서울대 내부 조사로 충분하겠지만, 횡령은 펀딩을 준 주체가 있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문제. 


횡령이 확실해지면 대학본부 입장에서는 교육공무원 징계양형기준에 의거해 해임이나 파면을 의결할 근거가 생김. 2014년 법률 개정을 통하여 "연구비의 부당 수령 및 부정 사용"의 경우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경과실인 경우 또는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중과실인 경우"에도 해임이 가능해졌음. 반복적 연구비 부정 사용이 확실하면 설사 그 액수가 적더라도 해임이 가능함. 실제 어떤 징계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권센터의 권고인 3개월 정직을 넘어 파면-해임을 고려할 근거는 명확해짐. 


하지만 성희롱 및 기타 품위유지의무의 경우에는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인 경우 또는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만 파면-해임이 가능함. 그렇지 않으면 정직이 최대 징계임. 갑질은 웬만큼 심하지 않으면 해임이 불가능함. 좋든 싫든 이게 현재의 징계 양형 기준임. 


아마도 파면-해임에 대한 요구가 실제로 관철될지는 대학본부에서 말하는 외부의 조사 내용이 핵심이 될 듯. 횡령 의혹에 대해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사회학이 다른 사회과학 분야와 다른 독특성은 사회학은 관계의 학문이라는 것. 1인 사회는 형용 모순임.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로도 경제학을 할 수 있지만 사회학은 불가능. 사회학자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은 편임. 그런 입장에서 H 교수의 행위를 용납하는 사회학자는 거의 없을 듯. 


앞으로 교육공무원 징계 수준도 바꿀 필요가 있음.  


다른 이슈도 있지만 그건 또 다음 기회에.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전체 논문


아래 그래프는 지난 50년 간 사회과학 분과별로 탑10 저널에 실린 논문 중,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대한 논문이 차지하는 비중. 


바 그래프는 지역연구로 특정된 논문들 중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 연구의 비중이고, 바 그래프 안에 있는 흰색 선은 전체 논문 중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 연구의 비중. 


보다시피 사회학은 다른 학문보다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대한 연구로 탑10 저널에 논문을 출간하는 비율이 다른 사회과학 분야보다 상당히 낮음. 


사회학 전공자가 한국을 연구한 영문 논문을 SSCI 미국 저널에 싣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그래프. 사회학은 그 어려움의 정도가 다른 사회과학보다 어려움. 


많은 미국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교수직을 잡고 싶어하고, 좋은 저널에 몇 편의 논문을 출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닌 미국을 연구하는 수 밖에... 한국을 연구하더라도 미국 연구에 한 다리 걸치는게 확률을 높이는 방법. 


한국 연구를 활성화하려면 한국 연구가 전세계 사회학계에 주는 이론적 함의가 크거나, 데이타의 퀄러티가 높아야 하는데, 30여 페이지 논문에서 전자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렵고, 후자를 통해 어필하자니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데이타 국수주의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놀랐음. 기왕 외교 잘알못, IR 완전 문외한의 감상을 아래 포스팅에도 적었으니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일대 사건에 또다른 인상비평 감상문 하나쯤 남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듦. 




김정은의 트럼프 초청은 정의용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그걸 바로 수용하고 5월 내에 만나겠다고 하는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를 의제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 비핵화는 당연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아직 특정되지 않았음. 최종 단계로 북미수교를 여러 분들이 주장하지만 미국이 그걸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없었음. 


북이 핵을 내주고,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 평화체제로의 이행, 수교를 받아낸다고 윈윈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북에게 남는 협상카드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음. 한국으로써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북은 모든 카드를 내보인 것. 


결국 일련의 드라마틱한 전개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쥔 것. 북미수교를 최종단계로 명시하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지, 경제지원 정도만 제시하고 북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토를 선언하고 경제제재를 지속할지 (이 경우 한국은 당연히 미국과 함께해야), 아니면 전쟁으로 돌입할지, 모두 트럼프가 결정함. 중국도,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트럼프 혼자 결정하는 것. 


그런 면에서 이 번 북미대화는 김정은의 일대 도박이라고 생각함. 





어제 오후 한국 정부에서 북한 관련 중대발표를 백악관에서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내용이 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음. 북미정상회담이라면 당사자인 미국이 발표하는게 상식임. 중대발표는 북미정상회담이어야 하는데 이걸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를 자처하는 한국이 발표한다는게 말이 됨?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특사가 백악관에서 발표하는 중대 내용이 뭐가 있을지? 정의용 실장 발표 이전에 김정은이 트럼프를 초청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미국이 아닌 한국이 발표하는 걸 보고, 트럼프가 아직 결정을 안내렸을 것으로 짐작했음. 정의용 실장이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수용을 넘어 만나는 날짜까지 5월 이내로 명시할 때 허걱 했음. 


트럼프 답지 않게 북미정상회담의 공의 일부를 한국으로 돌린 것.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함. 모든 결정권을 자기에게 갖다바쳐준 한국 정부에게 일종의 배려를 한 것으로 생각됨.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자기에게도 credit을 달라고 말은 함. 





그리고 아래 포스팅에서 댓글을 단 보수 분은 주한미군철수를 큰 걸림돌로 보던데 과연 그럴지는 의문임. 주한미군철수가 협상의 레버리지일지는 몰라도 최종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김정일이 여러 번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음. 클린턴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에게 그 얘기를 했고, 2007년 정상회담 때도 그 얘기를 했음. 


북한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북한이 미국과 수교를 하게되면 중국과의 관계 정립을 새로 해야 함. 이 때 이이제이를 할 수 있으려면 주한미군이 있는게 북한 입장에서 나쁠게 없음. 





이 일련의 사건을 기획한 브레인들에게 찬사를. 최종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만으로도 이 분들의 기획력은 외교사에 남을 업적임. 


한국의 입장을 미들맨으로 바꾼 것은 커다란 전략적 변화였음. 박정희-김일성의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외세의 간섭없는 자주적인 통일"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지켜야 하는 원칙이었음. 김대중-김정일의 6.15 남북 공동성명에도 자주가 첫번째 항목으로 들어가 있고, 노무현-김정일의 정상선언문에도 6.15 성명의 고수가 담겨져 있음. 


이런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북핵위기 국면에서 한국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세운 것. 이 시나리오의 기획자로 알려진 문정인 교수는 학자로써 자신의 주장이 정책이 되고 현실이 되는 최고의 영광을 보고 있음. 나님과는 비교가 안되는 급의 학자지만, 그래도 무지 부러움. 





한 가지 덧붙여 글을 수정하자면, 이제야 4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이해가 됨. 미들맨 외교가 전략이었는데 북미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미들맨 전략과 매우 괴리됨. 


대북특사의 발표를 보고 대북정책관련 문재인의 최대 위기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 정상 회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미들맨이면서 책임은 지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염려.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김정은이 6개 항목을 다 받아준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김정은이 제안한 정상회담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으로 생각. 


하지만 북미정상회담 직전의 남북정상회담은 북미회담 성공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미들맨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음. 오히려 북미정상회담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요소가 됨. 톱니가 안맞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이제보니 다 들어맞음. 





Ps. 정의용 실장의 영어를 들으면서 역시 영어는 빠다발린 발음이 아니라 또박또박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 


Pps.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현재 상황은... 현실도피. ㅠㅠ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아래 포스팅한 "문재인의 평창 외교전 승리?"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느낀 외교 잘알못으로써의 감상을 말하자면, 보수가 확실히 무능해지긴 한 듯. 상황 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평가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됨. 


예전의 남북대화는 남과 북의 대화였음. 


현재의 휴전협정이 북과 미국의 협정이라 평화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북한 편을 든다고 욕먹었음. 통미봉남이라는 북의 전략에 말려든다고. 


한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과 친해지면서 미국과 갈등을 빚거나 (진보의 정책),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북한과 척을 지고 한국의 역할은 없어지는 (보수의 정책) 그런 양자택일. 그게 지금까지 내가 봐 온 대북정책이었음. 이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면 안보 측면에서 차라리 후자가 낫다고 생각함.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이 두 가지 패턴을 따르지 않고 북미대화를 이끄는 중개자 역할을 하겠다고 대놓고 얘기하는데 이 입장 자체에 대한 비판은 나오지 않고 있음. 


지금까지 나타난 바로는 운전자론이라는게 방향을 제시하고 끌어가는 driver가 아니라 양자 간에 물건을 실어나르는 middleman 전략. 과거에 보수도 진보도 써본적이 없는 새로운 전략임.


한반도 평화유지가 목적인 한국의 전략적 입장은 미국 북한 모두와 다르다는 현실, 현재의 전쟁 위험 고조와 남북관계 경색은 남과 북의 문제라기 보다는 북미 간의 문제라는 판단에 바탕한 전략임. 


진보의 대북 접근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그런데 이렇게 변화된 정책에 대해서 보수가 제대로된 평가를 내놓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패러다임을 가정하고 헛다리를 짚거나 아니면 걍 저주만 퍼붓고 있음. 어떻게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는지. 


결국 성공할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예전의 양자택일로 돌아갈지, 나로써는 쉽게 예측하지 못하겠으나 지금까지는 작동하고 있음. 문재인의 미들맨 전략을 일단 미국과 북한이 모두 수용해서 한국을 통해 서로 간의 입장을 타진하고 있다는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WP 기사


헐. 


펜스 미부통령은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면서 문재인의 대북 engagement 정책에 어깃장을 놓는게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였음. 누가봐도 한미 양국의 이견이 노출되는 분위기. 


그런데 펜스 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공군 2호기에서 행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을 수용키로 했다고 발언 함. 


펜스 부통령의 인터뷰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하는 것(further engagement)에 합의했다고 함. 


펜스 부통령은 예전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대북 대화와 이 번이 어떻게 다른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물었고(= 압박하였고), 문 대통령은 대화 자체로 북한에게 보상을 하지 않고, 경제 제재 등 최고 수위의 압박을 지속하며 대화를 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 대화의 시작에는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과 같은 전제 조건이 없음. 일단 무조건 대화를 시작하는 것.  


이 결정은 백악관 전체에서 조율되지 않은 펜스 부통령의 개인적 견해도 아니고 트럼프와 매일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함. 


코피(bloody-nose) 전략에서 대화로 한반도 분위기 급변? 


이 기사가 미행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 후속 조치를 두고봐야겠지만, 이렇게 되면 이건 평창 외교전에서 문재인 정부의 완승이 아닌지.  





ps. 미국이 문재인 정책 싫어하는줄 알고 북한과 만나지 말라고 내정간섭 발언을 하던 아베는 어쩔겨. 평창 외교전에서 가장 스타일 구긴 케이스인 듯. 


pps. 평창 올림픽은 평양 올림픽이라고 어깃장 놓던 보수도 입맛이 쓸 듯.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건강 문제로 1~2개월 블로그 업데 없을 예정입니다. 큰 인기가 있는 블로그도 아니고, 원래 불규칙하게 업데했지만 이 번엔 업데 못하는게 확실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길 것 같아 정기적으로 체크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는게 좋을 듯 해서요.


다치지 말고 안전한 연말연시 보내시길~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가장 씁쓸한 점은 중증외상센터를 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냐에 대한 의견 개진은 별로 없다는 것.  


중증외상센터는 사회 밑바닥 계층을 위한 의료 시설이라는 것을 이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 


사회의 최저계층은 정치적 목소리가 없음. 여론 형성에 거의 참여하지 못함.  


중증외상센터가 중산층을 위한 시설이었으면 이 시설의 필요성, 이 시설 때문에 받은 혜택에 대한 간증이 쏟아져 나왔을 것. 


이국종 교수가 김종대 의원의 비난에 대해서 대응하며 했던 얘기 중에 "여러분들은 귀순 군인 1명에게 관심을 쏟지만, 우리 병원에는 이런 환자가 150명이 있다"는 것이 있음. 그렇게 아주대에 중증외상 환자가 많고, 이 병원을 거쳐간 중증외상환자가 많겠지만, 아무도 이 논란의 와중에 나와서 의견을 내고 있지 않음. 


중증외상센터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여론형성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 


늘상 하는 얘기지만 이 때문에 최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확대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움. 최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비용은 들지만 정치적 이득은 없음. 동네에 공원을 만들면 중산층이 산책하며 즐기고, 표로 연결되지만, 최빈곤층에게 혜택을 주면 님비현상으로 오히려 표가 떨어짐. 그렇다고 최빈곤층이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도와주는 것도, 제대로 감사를 표하는 것도 아님. 이분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쁨. 복지의 확대는 중산층에게 혜택을 주는데 빈곤층도 묻어갈 수 있도록 정책을 짜는게 최선임. 




그런 면에서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150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큰 자산이자 기회임. 목소리가 없는 중증외상의 위험에 노출된 소외계층에게 이국종이라는 스타 의사를 통해 목소리를 안겨줄 수 있는 것.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가 아니었으면, 병원에 큰 적자를 안기고, 중산층은 별 혜택도 받지 못하는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기나 했겠음? 폐와 복부에 여러발의 관통상을 입은 병사가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중증외상센터가 갖춰져 있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음? 


한 사회의 진보는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고, 집단의 시위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과장된) 영웅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정의당에서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테러 운운하며 헛발질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김정숙 여사가 직접 말린 곶감을 트럼프 내외에게 대접했다는 소식에 일부에서 말들이 있는가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한다고. 

 

그런데 분들이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이라는 자리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부인이라는 포지션을 이해하지 못한다. 깊이 들어가면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변화와 유지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번에 방문한 트럼트 대통령만 해도 결혼을 했다. 자식 5명이 서로 다른 명의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이반카, 도날드 쥬니어, 에릭은 첫번째 부인과 낳은 자식들이다. 알려져 있듯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번째 부인이다. 혼인 재혼의 반복으로 조부모와 손자손녀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영부인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고, 분명히 공적 인물이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것도, 공직에 임명된 자리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경제적 공동체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의 공동체로 확장된 것이다. 혼인과 가족관계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서 영부인보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감안할 영부인이 받는 경호와 일정 정도의 영향력은 불가피하다. 부부 모두가 전문직이다가, 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다른 명이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수행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당선되지 않은 배우자를 통해 그대로 관철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애와 영식도 비슷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원래 직장에 계속 근무한다.

 

웃기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영부인이라는 자리가 가족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유지되는, 대통령의 배우자가 없으면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지위가 아니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채우는 지위라는 점이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대통령이 영애일 영부인 노릇을 대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도 영부인이 없으면 자식이, 자식이 없으면 다른 여성 친척이라도 데려다가 영부인 역할을 시켰다. 예를 들어, 평생 총각이었던 부캐넌 대통령은 조카가 영부인 노릇을 했다.


현재의 영부인은 대통령직의 특수성 때문에 특수 가족관계인 그 배우자에게 부여하는 지위가 아니라, 영부인이라는 정부 조직 내 어떤 지위가 있고, 이 지위를 가족관계를 통해 채우는, 혈연을 통해서만 채워지는 정치적 지위다.  

 

그런데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을 First Gentleman (영부군?) 자리를 반드시 채우지는 않는다. 당장 박근혜 전대통령을 보라.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2부속실을 없앨까 고민했다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영부인이 했던 역할, 청와대 안주인으로써의 역할을  전대통령 자신이 했다. 

 

영부인이라는 자리는 뭘까? 봉건시대 왕에게는 반드시 중전이 있어야 했던 전통의 잔재인가? 즉, 미국에서 대통령이라는 포지션이 생길 때 남아있던 봉건적 요소가 영부인 자리인데 그 나름의 기능이 있어서, 또는 그 후 경로의존성으로 현재도 유지되는 것인가? 영부인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만, 영부군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 않는 것은, 마치 여성에게 일과 가정사 모두를 감당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포지션에 대한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어떤 이론이 있나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검사의 위증 교사

기타 2017.11.06 18:36

우병우 : "증거인멸 같은거, 저도 검사 출신인데 누구든지간에 시키겠습니까? 그런거 한 적 없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질의에 우병우 전수석이 한 말이다. 증거인멸 같은거 검사 출신은 안시킨다고. 우 전수석은 이런 것은 너무 상식적인 일이라, 검사가 증거인멸을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반어법으로 답했다. 


우병우 전수석의 윤리의식에 비추어도 너무 터무니 없다고 얘기했던 일이 바로 검사 출신이 누군가를 시켜 증거인멸 시키는 것. 


하지만 댓글수사방해 사건은 검사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우병우 전수석도 검사출신인 나를 뭘로 보고 증거인멸 교사했다고 물어보냐고 불쾌하다는 응답을 했던 그 일을 현직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나온 사건이다. 


현직 검찰 간부들이, 바로 자신들이 그 구성원인 검찰, 기소독점권을 가진 그 검찰의 국정원 사무실 압수 수색에 대비해 허위 서류를 가져다 놓은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수사와 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공무집행방해·위증교사)를 받는 사건. 


이런 일을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가? 현직 검찰의 직업 윤리 측면에서 이 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똑같이 형법의 저촉을 받는 일이지만, 직업윤리를 따지자면, 뇌물받고 죄를 무마시켜줄려고 노력했던 검사와, 권력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같은 검찰이 시행하는 수사를 방해하고 위증을 교사한 죄 중에서, 후자가 훨씬 더 나쁜 짓이 아닌가? 


 


박근혜 정권 시절은 전문직의 윤리적 바닥을 본 시기이기도 하다. 


물대포 사건의 진단서를 엉터리로 발부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의사, 댓글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호중, 이제영, (고) 변창훈 검사. 


전문가의 직업윤리가 이 보다 더 떨어질 수는 없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전두환 본인이야 구국의 결단을 했다고 생각할 것. 광주학살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국가의 안위를 위한 선한의지의 발산이라고 생각할 것. 


박정희라고 안그랬겠음?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분연히 떨쳐일어나 쿠데타를 한거지.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하는 인간치고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선한 신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음. 


두테르테가 마약상을 살해할 때 선한 의지가 없었겠음? 악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선을 실현한다고 생각할 것.  




그러면 상대방을 대할 때 선한 의지를 가정하지 않고 이기적 이해를 추구한다고 가정하면 안되는 것일까? 


상대방의 뜻을 선한 의지가 아닌 이기적 의지라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님. 개인의 이기적 이해 추구가 합쳐져 사회적으로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는게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 아님? 


자본주의의 이기적 시장거래가 정직과 협동이라는 공동체적 virtue의 근원이라는 due commerce 관점. 서로의 이기적 이해를 끝까지 추구하고 그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사회적 조화와 안정의 첩경이라는게 자본주의 정신임. 실제 현실은 온갖 갈등 투성이지만.




전두환이 선한 의지로 광주학살을 자행했다면, 이명박은 due commerce의 정신에 입각해서 나라를 운영한 것.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임. 후자의 관점은 봉건제의 신체적 속박을 타파하고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냈음. 


개인 권리의 보편성과 평등성이라는 근대의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학살을 자행하는 선한 의지를 막으면서 동시에 개인 이익 추구의 극단이 가져오는 폐해를 극복하는 길이 있는지 모르겠음. 


진보적 정치란 상대방의 선한 의지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음. 


공동체적 가족문화에서 성별 역할 분업과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때 선택지는 무엇인지, 전통적 가족구조와 동성애자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대중교통 운영의 효율성과 장애인의 통행권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게 맞는지, 대의제에서 정치적 권리는 평등하게 주어졌지만, 경제적 권리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을 때 사회적 개입을 통해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게 맞는지, 개인의 권리라는게 그렇게까지 확장가능한건지, 생산의 사회성은 높아지는데 성과는 개인적으로 향유되어 불평등이 높아질 때 국가와 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해서 생산의 사회성에 기여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지 등등. 


한꺼번에 다 못해도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진보.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