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로 1~2개월 블로그 업데 없을 예정입니다. 큰 인기가 있는 블로그도 아니고, 원래 불규칙하게 업데했지만 이 번엔 업데 못하는게 확실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길 것 같아 정기적으로 체크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는게 좋을 듯 해서요.


다치지 말고 안전한 연말연시 보내시길~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가장 씁쓸한 점은 중증외상센터를 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냐에 대한 의견 개진은 별로 없다는 것.  


중증외상센터는 사회 밑바닥 계층을 위한 의료 시설이라는 것을 이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 


사회의 최저계층은 정치적 목소리가 없음. 여론 형성에 거의 참여하지 못함.  


중증외상센터가 중산층을 위한 시설이었으면 이 시설의 필요성, 이 시설 때문에 받은 혜택에 대한 간증이 쏟아져 나왔을 것. 


이국종 교수가 김종대 의원의 비난에 대해서 대응하며 했던 얘기 중에 "여러분들은 귀순 군인 1명에게 관심을 쏟지만, 우리 병원에는 이런 환자가 150명이 있다"는 것이 있음. 그렇게 아주대에 중증외상 환자가 많고, 이 병원을 거쳐간 중증외상환자가 많겠지만, 아무도 이 논란의 와중에 나와서 의견을 내고 있지 않음. 


중증외상센터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여론형성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 


늘상 하는 얘기지만 이 때문에 최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확대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움. 최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비용은 들지만 정치적 이득은 없음. 동네에 공원을 만들면 중산층이 산책하며 즐기고, 표로 연결되지만, 최빈곤층에게 혜택을 주면 님비현상으로 오히려 표가 떨어짐. 그렇다고 최빈곤층이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도와주는 것도, 제대로 감사를 표하는 것도 아님. 이분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쁨. 복지의 확대는 중산층에게 혜택을 주는데 빈곤층도 묻어갈 수 있도록 정책을 짜는게 최선임. 




그런 면에서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150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큰 자산이자 기회임. 목소리가 없는 중증외상의 위험에 노출된 소외계층에게 이국종이라는 스타 의사를 통해 목소리를 안겨줄 수 있는 것. 


이국종 교수의 스타파워가 아니었으면, 병원에 큰 적자를 안기고, 중산층은 별 혜택도 받지 못하는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기나 했겠음? 폐와 복부에 여러발의 관통상을 입은 병사가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중증외상센터가 갖춰져 있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음? 


한 사회의 진보는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고, 집단의 시위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과장된) 영웅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정의당에서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테러 운운하며 헛발질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김정숙 여사가 직접 말린 곶감을 트럼프 내외에게 대접했다는 소식에 일부에서 말들이 있는가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한다고. 

 

그런데 분들이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이라는 자리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부인이라는 포지션을 이해하지 못한다. 깊이 들어가면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변화와 유지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번에 방문한 트럼트 대통령만 해도 결혼을 했다. 자식 5명이 서로 다른 명의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이반카, 도날드 쥬니어, 에릭은 첫번째 부인과 낳은 자식들이다. 알려져 있듯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번째 부인이다. 혼인 재혼의 반복으로 조부모와 손자손녀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영부인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고, 분명히 공적 인물이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것도, 공직에 임명된 자리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경제적 공동체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의 공동체로 확장된 것이다. 혼인과 가족관계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서 영부인보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감안할 영부인이 받는 경호와 일정 정도의 영향력은 불가피하다. 부부 모두가 전문직이다가, 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다른 명이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수행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당선되지 않은 배우자를 통해 그대로 관철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애와 영식도 비슷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원래 직장에 계속 근무한다.

 

웃기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영부인이라는 자리가 가족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유지되는, 대통령의 배우자가 없으면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지위가 아니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채우는 지위라는 점이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대통령이 영애일 영부인 노릇을 대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도 영부인이 없으면 자식이, 자식이 없으면 다른 여성 친척이라도 데려다가 영부인 역할을 시켰다. 예를 들어, 평생 총각이었던 부캐넌 대통령은 조카가 영부인 노릇을 했다.


현재의 영부인은 대통령직의 특수성 때문에 특수 가족관계인 그 배우자에게 부여하는 지위가 아니라, 영부인이라는 정부 조직 내 어떤 지위가 있고, 이 지위를 가족관계를 통해 채우는, 혈연을 통해서만 채워지는 정치적 지위다.  

 

그런데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을 First Gentleman (영부군?) 자리를 반드시 채우지는 않는다. 당장 박근혜 전대통령을 보라.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2부속실을 없앨까 고민했다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영부인이 했던 역할, 청와대 안주인으로써의 역할을  전대통령 자신이 했다. 

 

영부인이라는 자리는 뭘까? 봉건시대 왕에게는 반드시 중전이 있어야 했던 전통의 잔재인가? 즉, 미국에서 대통령이라는 포지션이 생길 때 남아있던 봉건적 요소가 영부인 자리인데 그 나름의 기능이 있어서, 또는 그 후 경로의존성으로 현재도 유지되는 것인가? 영부인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만, 영부군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 않는 것은, 마치 여성에게 일과 가정사 모두를 감당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포지션에 대한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어떤 이론이 있나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검사의 위증 교사

기타 2017.11.06 18:36

우병우 : "증거인멸 같은거, 저도 검사 출신인데 누구든지간에 시키겠습니까? 그런거 한 적 없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질의에 우병우 전수석이 한 말이다. 증거인멸 같은거 검사 출신은 안시킨다고. 우 전수석은 이런 것은 너무 상식적인 일이라, 검사가 증거인멸을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반어법으로 답했다. 


우병우 전수석의 윤리의식에 비추어도 너무 터무니 없다고 얘기했던 일이 바로 검사 출신이 누군가를 시켜 증거인멸 시키는 것. 


하지만 댓글수사방해 사건은 검사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우병우 전수석도 검사출신인 나를 뭘로 보고 증거인멸 교사했다고 물어보냐고 불쾌하다는 응답을 했던 그 일을 현직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나온 사건이다. 


현직 검찰 간부들이, 바로 자신들이 그 구성원인 검찰, 기소독점권을 가진 그 검찰의 국정원 사무실 압수 수색에 대비해 허위 서류를 가져다 놓은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수사와 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공무집행방해·위증교사)를 받는 사건. 


이런 일을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가? 현직 검찰의 직업 윤리 측면에서 이 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똑같이 형법의 저촉을 받는 일이지만, 직업윤리를 따지자면, 뇌물받고 죄를 무마시켜줄려고 노력했던 검사와, 권력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같은 검찰이 시행하는 수사를 방해하고 위증을 교사한 죄 중에서, 후자가 훨씬 더 나쁜 짓이 아닌가? 


 


박근혜 정권 시절은 전문직의 윤리적 바닥을 본 시기이기도 하다. 


물대포 사건의 진단서를 엉터리로 발부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의사, 댓글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호중, 이제영, (고) 변창훈 검사. 


전문가의 직업윤리가 이 보다 더 떨어질 수는 없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전두환 본인이야 구국의 결단을 했다고 생각할 것. 광주학살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국가의 안위를 위한 선한의지의 발산이라고 생각할 것. 


박정희라고 안그랬겠음?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분연히 떨쳐일어나 쿠데타를 한거지.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하는 인간치고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선한 신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음. 


두테르테가 마약상을 살해할 때 선한 의지가 없었겠음? 악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선을 실현한다고 생각할 것.  




그러면 상대방을 대할 때 선한 의지를 가정하지 않고 이기적 이해를 추구한다고 가정하면 안되는 것일까? 


상대방의 뜻을 선한 의지가 아닌 이기적 의지라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님. 개인의 이기적 이해 추구가 합쳐져 사회적으로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는게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 아님? 


자본주의의 이기적 시장거래가 정직과 협동이라는 공동체적 virtue의 근원이라는 due commerce 관점. 서로의 이기적 이해를 끝까지 추구하고 그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사회적 조화와 안정의 첩경이라는게 자본주의 정신임. 실제 현실은 온갖 갈등 투성이지만.




전두환이 선한 의지로 광주학살을 자행했다면, 이명박은 due commerce의 정신에 입각해서 나라를 운영한 것.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임. 후자의 관점은 봉건제의 신체적 속박을 타파하고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냈음. 


개인 권리의 보편성과 평등성이라는 근대의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학살을 자행하는 선한 의지를 막으면서 동시에 개인 이익 추구의 극단이 가져오는 폐해를 극복하는 길이 있는지 모르겠음. 


진보적 정치란 상대방의 선한 의지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음. 


공동체적 가족문화에서 성별 역할 분업과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때 선택지는 무엇인지, 전통적 가족구조와 동성애자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대중교통 운영의 효율성과 장애인의 통행권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게 맞는지, 대의제에서 정치적 권리는 평등하게 주어졌지만, 경제적 권리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을 때 사회적 개입을 통해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게 맞는지, 개인의 권리라는게 그렇게까지 확장가능한건지, 생산의 사회성은 높아지는데 성과는 개인적으로 향유되어 불평등이 높아질 때 국가와 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해서 생산의 사회성에 기여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지 등등. 


한꺼번에 다 못해도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진보.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이재명의 기본소득계산기.


진지한줄 알았더니 그냥 장난. 


부부와 자녀 2명의 4인 가족이면 320만원. 

4인 농어촌 가구 연 기본소득이 520만원

4인 농어촌 가족 중 1명이 장애인이면 620만원. 


반면 자녀 없는 30대 부부는 60만원.


대통령할 생각 전혀 없음. 


ps. 이 번 포스팅의 분류는 경제사회학도, 불평등도, 복지국가도, 정치도 아닌 기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나는 경찰의 물대포에 시위자가 사망하는 일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고, 훈련을 통해 막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시위 현장에서 경찰도 흥분해서 과잉 반응하는 일은 다반사다.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도 물의 위력으로 사람이 죽을 것으로는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는 것은 이런 "사고"가 아니라 이 사고를 어떻게 수습하고 처리하는가에 있다. 시위가 빈번하면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이 번 백남기 농민의 부검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국가기관과 시민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건 민주주의의 법률이나 작동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작동의 일부로 역할하는 주체들의 책임성 문제다. 





한 국가의 공적 영역을 구성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고,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다. 시민사회라는게 운동권 시민 단체나 어버이 연합 같은 극우 단체를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의사협회, 변호사협회 등의 직능단체가 모두 시민사회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시민단체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변호사 법률 사무소를 오픈할려면 지역 변호사협회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 협회가 국가 기관이 아니라 시민단체다. 재판이라는 공적 활동의 자격 조건이 시민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할려면 토플과 GRE를 봐야 하는데, 이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적 비영리 시민 단체다. 미국에서는 의대의 허가도 사적 기관에 의해 주도된다. 의대 학력 인증 기관이 국가가 아니라 시민단체다. 


이러한 사적 전문가 단체가 공적 영역을 구성함에 따라 한 국가의 공공성은 국가기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국가기관에 의해 중첩적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개인 전문가는 때로는 매우 독특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의사는 개인이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한 의사의 판단은, 죽음이라는 매우 개인적 사건을 사법기관의 개입이라는 매우 공적인 사건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이 경우 조직이나 권력자의 압력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알아낸 최선의 방법은, 전문가에게 독립성을 부여하고, 조직은 가이드라인만 부여할 뿐, 구체적인 판단은 개인의 양심에 맞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거해 상부의 명령이 하부에 관철되지만, 판사들은 개인의 판단에 의해 판결을 내린다. 상부의 지시에 의해 판결이 바뀌지 않는 것이 적어도 원칙이다. 때로는 판사의 편견에 의해 황당한 판결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재판의 불편부당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조직은 원칙만 정할 뿐 판단은 개인이 한다. 


그런 면에서 사망진단서는 의사 개인의 판단에 의해 발부하는 것으로, 백선하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서울대에서 고칠 수 없다는 원칙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하나는 이 번 사망진단서가 의사 개인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었냐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를 발부한 레지던트가 사망진단서 작성 시 개인의 양심이 아닌 상부나 외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상당히 농후한 정황증거들이 있다. 


사망진단서에 본인의 판단이 아니라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 주치의 백선하 교수와 상의해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는 이례적 메모를 진단서에 남겼다. 백남기씨의 사위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레지던트가 전화 통화에서 병사가 맞냐고 세 번 물었다고 증언했다. 현재 그 레지던트는 잠적 중이다. 


의사 개인의 판단과 위배되는 윗선의 압력은 의사 개인이 발부하는 사망진단서 작성 시 개인 전문가의 양심에 따른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백남기 사위의 증언, 사망진단서에 남겨진 기록, 전화 통화 기록 등은 조직이 위력을 발휘하여 양심을 꺾도록 만들었다고 의심되는 정황 증거다. 진단서가 양심에 따른 최선의 판단 결과가 아니라 상부의 압력에 의한 강압의 결과라면 이는 무효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고려할 점은, 이렇게 상당한 정황 증거가 있을 때, 시민사회와 조직이 무엇을 하는가이다. 내가 이 번 사건이 백선하 의사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서울대병원"이라는 조직 전체의 문제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서울대는 압력을 부인하고 있다. 


이윤성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 병원 특위에서 밝혀야 할 점은, 백선하 의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론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레지던트가 발부한 사망진단서가 외부나 상부의 압력없이 양심에 따라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윤성 교수 역시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윤성 교수가 언론에서 밝힌 개인 의견은 그의 개인 의견일 뿐이다. 특위위원장이 개인 의견이나 밝혀서 뭐에 쓰나. 그의 행동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병사라는 황당한 판단을 내린 조직을 보호하는 행위일 뿐이다. 특위의 결론은 압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윤성 교수는 이 결론에 책임이 있다. 





한 가지 크게 다행인 점은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심폐정지는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이 번 입장표명은 매우 중요하다. 상당수의 의사들이 백선하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제 서울대병원과 의사 조직체가 해야 할 일은 이 번 사망진단서 작성에 상부나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를 밝히고, 그에 걸맞는 징계를 해야 한다. 만약 압력이 전혀 없었는데도 레지던트와 백선하 교수가 그런 식의 진단서를 발급했다면 그들은 기초적인 의학 지식 미달로 조직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려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다. 




ps. 부검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처세도 비난받을만 하나, 의사의 진단서가 병사라면 영장 발부를 거부할 논리적 근거는 떨어지는 것 아닌가? 


pps. 이 번 사건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찰과 검찰이 보인 황당함이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이화여대 사태

기타 2016.08.11 15:54

또 한 번 어그로를 끌겠지만 나는 이화여대 사태를 좋게만 보지는 않는다. 


학생들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모든 시각에 대해 반여성의 이미지를 덧씌우는데, 사안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의 반응이 반여성주의적 마초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한 쪽의 편을 들기에는 여러 짜증스러운 일들이 섞여 있다.  




우선, 이대 학생들의 초기 농성은 "감금"이라는 명백히 불법적, 인권 유린 행위를 동반했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데, 학생들이 막아서 못나갔다. 나는 이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금된 상태에서 학대를 당하지 않았어도 감금은 감금이다. 감금 피해자들은 경찰에 23차례나 신고를 했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처벌 의사 역시 밝혔다. "다만세"를 부르는 여학생이 했어도 감금은 징역5년 이하에 처하는 중범죄다. 감금 피해자가 멀쩡히 걸어나오고 학생들 중 탈진한 경우가 있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멘션들이 있던데, 정상이 아니다. 


많은 시위가 거주물에 대한 점거를 동반하지만,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감금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점거 외에 감금이 상징적으로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 번 시위는 전반적 여론이 의아할 정도로 학생들의 불법 감금 행위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며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금죄 수사에 총장이 압력을 행사토록 요구하는 학생들의 무리수도 아마 우호적인 사회적 여론에 편승한 것일테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 행위 현장에서 국정원 직원인 여성이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감금(법적으로 이 국정원 직원은 감금이 아닌 것으로 판결났다)이라고 분노하던 여론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번 사태에 총학생회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무척 다행스럽다. 아마 운동권 총학생회가 관여했으면 보수 언론으로부터 인질극을 벌인다고 난도질 당했을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 그 원칙에는 별 관심도 없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 번 사태에서 학교 측에서 평생교육 단과대 설치를 철회한 가장 큰 이유는 1,600여명의 경찰을 동원한 후폭퐁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동원은 불법 감금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학교 측의 미숙한 대응 때문에 여론이 학교 측에 불리하게 형성되었지만, 감금의 불법성에 촛점을 맞추어 여론을 충분히 환기한 후 경찰 투입을 요청했으면 사태의 전개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감금 행위가 없었다면 경찰을 동원한 학교 측의 행위에 동감할 수 없겠지만, 감금이 있는 한 이해할 구석이 있다. 





일부에서는 사건 초기에 이대생 집단행동의 심리적 배경에는 이대 순혈주의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아마 이대 순혈주의가 상당히 영향을 끼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타당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순혈주의가 이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거의 모든 대학에 순혈주의가 있다. 모든 사회적 행위의 동기가 순수 그 자체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명분이 옳다면 동기가 불순해도 옳은 건 옳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대는 평생교육 단과대 설치를 백지화 했다. 학생들이 요구하던 가장 큰 목표가 달성되었다. 설사 부분적으로는 이대 순혈주의에 심리적 기반을 두었다 할지라도, 이 결과는 이대생들이 한국 대학 교육의 모순을 짚고 승리를 거둔 위대한 순간이라고 여러 언론에서 칭송하였다. 나 역시 동의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승리의 긍정적 측면이 확대 재생산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애초의 목표가 달성된 후 이대생들은 운동의 동력을 두 가지로 이끌 수 있었다. 하나는 학내 문제에 치중하면서 이대 순혈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다른 하나는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혁, 개선을 유도하는 쪽이다. 


농성을 계속하며 나오는 학생들의 요구를 볼 때 이 사태의 전개는 안타깝게도 후자보다는 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보면 현 시점의 이대 사태는 대학의 구조적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는 순수한 학내 문제로 바뀌고 있다. 이대생, 이대졸업생과 학교 당국의 알력 문제. 


이루고자 하는 다른 목표도 없이 수사 중단과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대화 요구도 아니다. 사퇴 외에는 아무런 요구도 없는 사람과의 대화는 쉽지 않다. 합의할게 없지 않나.   


현 시점에서 평생교육 단과대 설치의 정당성과 대학의 변화 방향에 대한 논의는 이대 점거 농성에서 실종되었고, 총장이 얼마나 진정성있게 사과하냐는 문제만 남았다. "사퇴가 곧 사과"라는 주장이 이를 대표한다. 


이대생들이 한국 교육 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이끌어갈 책임은 없지만, 그들이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었다고 칭찬을 받은 그 만큼, 이러한 전개는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은 다른 요구 사항이나 진행 사항이 있나?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조선일보에서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과장은 금물. 한국의 연구개발투자는 전세계에서 탑이다. 1인당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이다. 이스라엘이 한국과 비슷.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은 노무현 정권 이후 R&D 투자를 꾸준히 늘려서 GDP 대비 미, 일, 독을 모두 추월했다. 2014년 현재 전체 GDP의 4.3%로 세계 1위다. 이스라엘이 2위로 4.1% (자료 소스는 OECD R&D 자료). 3위 일본은 3.6%. 4위 핀란드 3.2%. 미국은 2.4%. 


한국은 연구개발에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솔까 외국에 있으면 한국의 공격적 연구개발 투자가 부럽게 보이기도 한다. 한국 출신 해외 거주 과학자들도 한국에서 뿌리는 연구개발비 탈려고 애를 쓴다.  


소스: 요기




인력 수급도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딱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래 그래프는 전체 고용 인력 중 "연구자"로 분류할 만한 인력의 비중이다. 보다시피 한국이 약 12%로 전세계 톱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불과했으나, 학력의 급속한 신장과 더불이 2000년대에 급속히 상승해 미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   


외국에 나간 인력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연구 인력의 공급이 많아서 이들에 대한 대접이 낮기 때문. 


연구개발에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으니, 이제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인력 운영의 노하우를 개발해야.  


소스: 요기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만, 나는 나향욱 파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상벌이 여론재판에 의해 좌우되는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정부에서 직업 공무원의 인사까지 그렇게 결정해야 하는가? 


그의 죄가 직업 공무원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고의 벌인 파면에 해당하는가? 


물론 나향욱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기자와의 만남은 개인적 술자리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 그의 "개돼지" 발언은 비록 취중이라 할지라도 사적 발언이었다고 할 수 없다. 기자와 만나는 공적 자리에 중대한 말실수를 할 만큼 과음을 하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큰 정책적 잘못을 저지른 것도, 비위가 있는 것도, 직위를 이용해 갑질을 한 것도 아니다. 술자리에서의 말실수일 뿐이다. 


기자 및 대국민 상대 업무의 비중이 높은 "고위공직자"로써 업무를 원활히 진행할 자격이 없기에 강등을 한다고 해도 이해하겠다. 


아마 고위공직에서 중간관리자로 강등당하고 남아있을 공무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금이 최종 월급 등에 의해서 결정되기에 일정정도 삭감도 당할 것이다. 즉, 그가 당할 실제적 불이익은 파면, 강등 사이에 큰 차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파면당하는 이유는 여론에 크게 영향을 준 괘씸죄가 아닌가? 이렇게 해서 공무원들을 통제하고 또 일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겠는가? 


"신상필벌"은 공로의 정도에 합당하게 또 죄의 정도에 합당하게 상벌을 내리는 것이다. 뷰라크라시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벌의 체계가 잡혀서 여론재판이나 최고권력자의 심기에 의해서 상벌이 결정되지 않는다. 


나는 나향욱의 발언도 짜증스럽고 나향욱이 신속하게 공직에서 파면되는 한국의 공직사회 작동 시스템도 짜증스럽다. 


직업공무원이 아닌 우병우는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버티고, 직업공무원인 나향욱은 신속하게 파면되는 사회. 참... 




ps. 어떤 분이 나에게 그러더라. 교수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잘못의 정도를 벗어나 큰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그러면 반드시 소송이 걸리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소송에서 이겨 교직에 별 문제없이 복귀한다고.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