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니의 패러독스, 평가와 채용의 공정성
많은 사람들이 아는 그 폴라니 아니고 다른 폴라니.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토가 자동화가 왜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없는가에 대해 쓴 논문에 나온 얘기인데, 내용인 즉, 사람은 자기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패러독스. 분명히 판단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고 흐름으로 그런 판단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지식을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언어 능력이라든지, 사진을 딱보면 개 사진인지, 쿠키 사진인지 구별하는 능력이라든지, 남들이 하는거 보고 배워서 따라하는 능력이라든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라든지, 직장에서 사수가 하는거 보고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자기도 뭔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능력이라든지.
도대체 이걸 왜 이렇게하고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판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AI니 컴퓨터니 자동화니 뭔가 프로그래밍하고 기계한테라도 가르치는데, 설명을 못하니 자동화나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매우 어렵다.
일하는 지식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일을 가르치는 사수도 모른다. 하다보면 이상하게 알게된다. 군대에서 일류대 나온 이병보다 고졸 병장이 더 낫다고 하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다. 짬밥으로 밖에 표현을 못하는 암묵지 습득 얘기다.
좋은 대학 나오고 시험 잘 본다고 회사에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게 아니다. 일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을 그래도 선호하는 이유는 곧바로 써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학력이 trainability의 시그널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육이 시그널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닌데, 시그널의 기능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경력이라는게 그래서 중요하다. 가능태로만 있던 능력을 현실에서 검증해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웃컴이 나온 사람이 경력자다.
시험잘보고 뭔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회사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많다는 한 신호이지 그 자체는 능력이 아니다. 시험보는 능력은 별로인데, 회사의 일을 익히는 능력은 괜찮은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시험보는 능력의 불일치가 있다. 이 경우 회사는 누구를 뽑아야 공정한걸까?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런데 후자를 뽑는게 더 안전하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기업을 위한 인재를 길러내고 싶어도 뭘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기업인들이 매일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쓸모없다고 한탄하는데, 그럼 뭘 가르치라는 말이냐고 물어보면 얘기를 못한다. 기업인들도 모른다. 뭘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하다보면 알게되는 그런 tacit knowledge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일이 돌아가는 상당한 이유는 바로 이 암묵지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으로 뽑는 시스템이 더 공정하고 생산성을 높이지 않냐고? 맞다, 정실에 좌우되는 인재 채용보다는 나은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소개를 받는다. 사회학의 유명한 weak-tie thesis (취업 정보는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서가 아니라 알지만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테제)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토익 점수가 좋은 지원자 보다는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내부자가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추천하는 사람이 그 회사에 더 나은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 회사에서 일해봤기에 일의 성격을 알고있는 내부자가 여러 사회적 관계를 통해 오랫동안 관찰해서 평가하는 것이 토익 점수보다 훨씬 더 종합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 내부자가 아는 사람을 추천하는 정실 인사가 시험봐서 뽑는 공정 인사보다 더 종합적이고 효율적이다. 기준을 시험 점수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잘하는 능력으로 바꾸면, 정실인사가 시험보다 더 공정하다.
암묵지 외에 시험 한 가지 기준으로 인재를 채용하는게 잘못된 또 다른 이유는 혁신의 필요성 때문이다.
요즘 모두들 혁신, 혁신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알면 그게 혁신인가. 아무도 모르는 뭔가 새로운걸 하니까 혁신이지. 혁신은 가르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혁신이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어떤 분위기에서 혁신이 되는지 골머리를 썩히는거다. IT 기업에서 뭐 이상한 놀면서 일하는 분위기 만드는거라든지, 양복 대신 티셔츠 입히는 것이라든지, 모두 혁신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분위기 잡는거다.
그런데 혁신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대해서 대략적 합의가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1) 뭔가 다르지만 (2)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끼리 (3)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혁신이 더 잘되더라는거다.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가장 큰 문제점은 "(1) 뭔가 다르지만"이라는 조건이 가장 충족이 안되는 방식이라는 것. 시험은 단일한 기준으로 인재를 채용한다. 뭔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뭔가 비슷한 사람들이다. 이런 조직은 원래하던 일을 반복하고 익숙한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지만 대신 새로운 문제가 닥치면 해결을 못하거나 느리다. 혁신이 안된다.
그러니 시험만으로 인재채용을 하라고 하면, 혁신을 포기하라는 얘기와 비슷한 주장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럼 회사에 들어와서 누가 더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회사에 기여했는지는 정확히 체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제대로 못한다. 뭔가 기준을 만들면 그 rule of game에 의해서 굴러가고, 그 규칙이 경향적으로 능력을 체크하기 때문에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오직 경향적으로 체크할 뿐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아무리 정치한 정량 평가를 도입해도 마지막은 정성으로 결정한다. 뭔가 부정을 저지르기 위해서도 아니고, 최종 평가를 정성으로 하는게 그들에게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이 방법 외에 정량에서 잡히지 않는 기여도를 반영할 더 나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능력 측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회학 논문으로 직조공의 성과 측정에서 영국과 독일의 차이점에 대한 것이 있다. 산업혁명 직후 직조공은 천을 얼만큼 짰는지에 따라 보상하는 성과급(piece rate)이었다. 같은 기계를 사용하고 결과물이 너무 명백하게 보이는 산업인데, 영국과 독일의 보상 체계가 달랐다. 영국은 천의 길이에 따라 보상했고, 독일은 베틀의 왕복횟수에 따라 보상했다. 영국은 output, 독일은 input으로 보상한 것. 그래서 나온 결과가 영국은 천의 길이는 긴 대신, 엉겼고, 독일은 천의 길이는 짧았지만 매우 조밀한 하이퀄러티 천을 생산했다. 둘 중 어느 보상 체계가 더 공정한 것인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한 가지 기준을 세워 채용이라든가, 진학이라든가, 승진이라든가 등등등에서 사람을 줄세우는 공정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공정을 만들면 사회발전이 지체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