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부로 달려가는 세계
이재명이 충청에서 압승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있는데, 코로나 시대 문재인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건 아이러니하게도 여당의 후보로 유력한 이재명.
예전에 서울신문 인터뷰(기사는 요기, 전체 인터뷰는 요기)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한국은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 때의 대응과 이 번 코로나 위기의 대응이 매우 다른 국가다. 2008년 이명박 시절에는 위기에 대응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쓴 국가 중 하나지만, 이 번 코로나 위기에는 상대적으로 돈을 가장 적게 쓴 국가다.
아담 투즈의 칼럼에서도 나오듯 2008년의 세계경제 위기에서 전세계가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위기 때 정부의 역할 확대다. 상대적으로 많은 정부 예산을 투여한 국가의 경제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았고, 돈을 아낀 국가의 경제적 충격은 상대적으로 컸다. 예산을 꽤 투자한 미국은 상대적으로 빨리 2008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유럽은 그러지 못했다.
이 블로그에서 이명박 정부의 위기 대응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다. 대운하나 4대강 사업 자체는 별로지만, 무슨 핑계를 써서라도 재정을 확충한 것은 2008년의 위기를 맞이한 이명박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었다. 작은 정부를 기치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재정지출 면에서 가장 큰 정부였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2008년에 재정을 확충한 직후부터 한국에서 1990년대초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소득 불평등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에 한국 통계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불평등이 줄어드는걸로 통계가 나와서 통계청 공무원들이 당황한적도 있었다. 4대강이 그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아무도 안믿긴 했지만.
이 번 코로나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락다운이라는 개인 자유를 크게 침해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마스크가 강제되었고, 엄청난 자금이 풀렸다. 바야흐로 위기 대응 방식의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작은 정부, 규제완화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큰 정부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이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출현했다. 2008년 위기에서 시작된 큰정부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 코로나 위기로 세계화되었다고나 할지.
그런데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대응방식도, 전세계가 그 때 배운 교훈도, 코로나 위기 다른 국가의 대응방식도 모두 잊거나 무시하고 재정건전성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다. 홍남기 장관에게 무한 신뢰를 주었고, 자영업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다. 불평등을 줄이고, 재정을 확충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고조시킬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적극적 조치를 취하는걸 꺼려했다. 한편으로는 방역의 성공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조치였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조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세계적 변화의 조류와 일치하는 주문을 한 야당이나 진보가 없다. 대놓고 큰 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후보는 이재명 밖에 없는거 아닌지. 정책적 야당 역할은 여당에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창시절 3.1운동이 주변국가에 끼친 영향에 대한 교과서의 기술을 보면서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한 국가의 변화가 이상하리만큼 타국가의 변화, 세계사적 흐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 메카니즘이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