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시 응시·합격자 성비 공시해야…임금도 공개하자"
연합기사: 이재명 닷페이스 인터뷰, 채용시 응시·합격자 성비 공시해야.
기사에 달린 댓글 보니, 한 명이라도 여성이 많으면 어떻게 하겠다는거냐라고 비아냥되던데, 이 제안은 당연히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이론적 근거와 타국의 사례도 확실하고. 제가 알기로 요즘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누가 조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제안의 의미를 조금 설명하고자 한다.
채용시 응시, 합격자 비율을 파악해서 성이나 인종별로 지나치게 차이가 나면 차별이라고 판정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첨병, 미국에서 채택한 방법이다. 미대법원 판례로 지원자와 합격자의 성별, 인종별 격차가 크면 차별로 간주한다.
차별의 의도를 실증하지 않고, 차별의 구체적 메카니즘이나 제도도 밝히지 않고, 기업이나 조직의 전반적 문화나 반복행위에서 차별이 없으면 생길 수 없는 결과를 보고 차별이라고 판정한다. 이런 차별을 "구조적 차별"이라고 한다. 반복되어서 패턴화되고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차별이다.
이 때 차별의 판정은 (잠재적) 후보군과 실제 합격자(내지는 승진자) 간의 차이가 "충분히" 커야 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의 기준은 "2-3 표준편차 이상의 격차"라고 통계적 기준까지 떡하니 대법원 판결로 박혀있다.
실제 응시자와 합격자를 비교해서 성별이나 인종별로 차이가 나면 차별이라고 판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잠재적 응시자군과 합격자를 비교해서 차이가 나면 차별로 판정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1977년의 Hazelwood School District 판결이다. 헤이즐우드라는 지역의 학교에서 흑인 교사의 수가 적어서 차별이라고 소송이 걸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부분 백인이라 교사도 그렇게 된거라고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는 차별로 판결이 났다. 그런데 이 차별 판정의 방법이 사회과학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응시자의 인종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이즐우드가 미국 중부 세인트루이스 지역에 있는 곳이다. 미법원에서는 센서스로 이 지역의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의 백인과 흑인 비율을 추정해서, 이를 잠재적 응시자 비율로 간주했다. 추정된 잠재적 응시자 대비 헤이즐우드 지역 흑인 교사의 비율이 너무 적어서 차별이 아니면 이런 결과가 생길 수 없다는거다. 차별이 없다면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흑백 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비율과 헤이즐우드 지역의 흑백 교사의 비율이 크게 차이날 수 없다는게 논리의 핵심이다.
미법원은 차별 판정에서 어떤 통계방법론을 쓸지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사회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법으로 2-3 표준편차 이상 차이가 나면 차별이라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했다. 이 기준은 여러 법원 판결에서 인용되었다. 2-3 표준편차라는 건, 소위 말하는 95% ~ 99.9% 유의수준과 비슷하다. 헤이즐우드 판결에 사용된 통계는 두 모집단 표본 비율의 차이 검증이라는 기초통계 수업에 배우는 수준이다. 복잡하게 여러 변수를 통제하지 않았다. 이 판결만 그랬던게 아니고 다른 많은 재판에서도 기초통계학 수준의 통계방법론으로 차별 판결이 이루어졌다. 잠재적 응시자든 실제 응시자든, 응시자의 성별, 인종별 격차는 없다는게 기본적 가정이다.
이러면 당장 여성은 이공계가 적은데 엔지니어 뽑는데 남녀 비율을 맞추라는거냐라는 식의 질문이 나올거다. 당연히 그런거 아니다. 기업은 성별 격차가 나는 합리적 이유를 소명하기만 하면 된다. 잠재적이든 실질적이든 응시자의 조건에 차이가 있을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으면 된다.
여기서 핵심은 기업이 소명을 해야 한다는거다.
확실하게 차별이라고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은게 아니라, 결과에서 차이가 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고용주가 해명하는게 핵심이다. 결과적 차이가 있을 때, 이 차이에 대한 입증의 책임이 고용주측에 있다!
이 방법을 한국에 적용하는데 발생하는 큰 난관 중 하나는 미국에서 사용한 "잠재적 응시자" 컨셉을 한국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잠재적 응시자는 많은 경우 지역노동시장에 기반한다. 하지만 한국은 지역노동시장 컨셉이 약하다. 특히 대졸자는 노동시장이 기본적으로 전국이다. 한국 통계청은 센서스 지역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차별 시정을 위해서는 응시자 정보를 수집하는게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공정"한 채용을 위해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데, 저는 블라인드 채용이 그렇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별은 과정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작은 차별이 누적되면 결과는 커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차별을 해도 우리는 블라인드 채용해서 응시자 정보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저의 개인적 선호는 그렇다는 거고, 일반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의 선호는 상당히 크더라.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유지하면서도 응시자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역시 미국에서 사용한 EEO Self-identification form과 같이 응시자의 인적 정보를 별도로 수집하면 된다. 미국은 이 정보 수집이 의무다.
어떠한 방식이든 기업이 응시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합격자 대비 비율을 공시토록 하는 것은 차별 수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별 고용/승진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정보의 수집이다.
Ps. 이 방법과 관련된 여러 이슈와 고려점들이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