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최저임금: 어용지식인 벌써 다 죽었음?

sovidence 2017. 7. 22. 01:07

최저시급이 노동시장에 끼치는 효과는 학문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음. 최저시급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게 경제학의 이론이지만 현실은 이론처럼 깔끔하게 최저시급을 올린다고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오지 않음. 


심지어 최저시급을 올려서 고용이 줄어드는게 꼭 나쁜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림. 높은 임금은 구조개혁을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음. 최저 임금도 못주는 기업과 자영업자는 문을 닫는데, 이들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이 공중분해하는 것이 아님. 이들 자본이 최저임금 이상을 줄 수 있는 자본으로 흡수됨. 이 경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구조적 고도화가 강제됨. 


한국의 서비스업 생산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도 낮은 임금에 있을 개연성이 상당함. (50대 이상의) 노동자를 싸게 부릴 수 있는데 뭐 때문에 자본을 투자하고 어렵게 생산성을 향상시킴? 


이렇게 최저시급의 효과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칼럼에서 전방위적으로 최저시급 인상을 공격하고 있음.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은 내년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은 경영부실과 섬유산업 경쟁력 상실로 망하는 기업을 "최저임금발 감원 본격화"라고 거짓말하며 이데올로기 투쟁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음.  


하나하나 좀 살펴볼 필요가 있음. 


우선 최근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주진형의 비판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큰 문제였으면 1989년 이후 평균 9%씩 30년간 12배 넘게 인상한걸 비판해야지, 지금까지는 가만있다가 16% 인상 한 번 하니까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비판하는 건 좀 뜬금없음. 최저임금 높여서 한국 경제가 망했으면 망해도 진작에 망했음.  


최저임금 인상이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분석이 정확히 않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임. 미국에서도 주구장창 연구했는데 결론이 나오지 않음. 시애틀에서 최저임금을 왕창 올린 것의 효과도 정확히 무엇인지 모름.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것을 부모없는 자식이라고 비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음? 하나마나한 소리지. 주진형이 뭔가 근거가 있어서 반대하는 것도 아님. 너도 나도 정확히 모르는 효과를 왜 모르느냐고 큰소리치는건 걍 최저임금 비판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임. 이런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음?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가 반드시 증가하는 것도 아님.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낮지 않다는 오석태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는 분명히 동의하나, 최저임금 상승률과 미달률의 관계를 1대1인 듯 언급한 것은 정확하지 않음. 


아래 그림은 초간단으로 그려본 최저임금 인상률과 미달률의 관계임 (좋은 그래프는 아니나 대충 관계를 볼 수는 있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미달률이 같이 높아지는 관계가 항상 나타나지 않음. 최저임금 미달률은 2003-2007년 사이에 이상 급등하고,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서 현재의 상태에 이른 것. 왜 이 시기에 이렇게 미달률이 올랐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있음? 특히 2003-2007 사이에 미달률이 3배 증가하였음. 


2003년까지 최저임금 미달률이 5% 미만인데, 1989년에서 2003년까지의 최저임금 상승률은 9.99%로 2003년에서 2016년 사이의 인상률 8.4%보다 훨씬 높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까지 최저임금 미달률은 매우 낮았음. 9.99%씩 오를 때는 미달률이 안오르다가, 8.4%씩 오르면 미달률이 오른다는 것임? 


아마도 최저임금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 다음부터 인상률과 미달률 변화가 밀접한 관계가 생긴다고 생각할 것. 하지만 2010-2012년 사이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높아졌지만, 미달률은 오히려 낮아졌음. 인상률 낮춘다고 미달률 반드시 낮아지는거 아님. 


사실 최저임금 미달률은 노무현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절에만 증가하였음. 노무현 정권은 최저임금 증가율이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았지만, 박근혜 정권 시절은 이명박 정권 다음으로 증가율이 낮았음. 증가율 정도가 정반대지만, 두 정권 동안 미달률이 증가한 것. 이러한 결과는 최저임금 미달률 증감이 정권의 행정권력 사용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을 시사함. 미달률 증감은 행정의 디테일에서 결판이 날 것. 


현재 경제상황이 괜찮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실업률이 증가할 가능성은 낮음. 그런데 최저임금 안올릴 이유가 뭐임?  



부가로 다른 나라의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1968년의 시간당 최저임금의 현시점의 가치는 1만2천원에 달함. 당시의 실업률은 4% 미만으로 완전 고용에 가까웠음. 실업률과 노동시장은 최저임금보다는 경기상황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음. 그렇다고 최저임금 상승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유의하게 늘렸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음. 





최저임금 올린다고 고용이 줄어드는 것도 명확치 않고, 최저임금 올린다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도 명확치 않다면, 도대체 최저임금의 효과는 뭐임? 


아래 그림은 Piketty & Saez가 보여준 최저임금과 상위1%의 소득지분의 관계임. 보다시피 상당히 밀접한 역상관관계임. 



사실 이 그림은 매우 이상하게 다가와야 함. 최저임금과 탑1%가 무슨 상관이람? 상위 1%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임? 


최저임금과 상위1%의 소득 share나 불평등이 상관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아마도 최저임금의 직접적 효과 때문이 아니라, 최저임금이 경제적 배분을 둘러싼 권력 관계의 proxy이기 때문일 것임. 


최저임금의 효과는 불명확하지만, 빈곤 감소, 불평등 감소를 원하는 진보 세력은 최저임금 상승을, 보수세력은 최저임금 동결을 원해서, 최저임금이 세력관계를 볼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일 것임. 


다시 말해 최저임금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의 정책적 접점일 가능성이 큼.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가 분명했다면 "증거기반 정책"이 모토인 미국 리버럴들이 이 정책을 접었을 것. 하지만 그런 효과가 분명하게 안나타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계속되는 것. 


한국에서 진보, 보수 정권 모두에서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음. 최저임금이 이데올로기 투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문재인 정부들어 최저임금을 높이 올리니 보수측에서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최저임금을 이데올로기 투쟁의 쟁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보여짐. 




이런 상황인데 최저시급 인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나서서 방어하는 사람도 하나 없음. 어용지식인 벌써 다 죽었음? 


문재인 정부에서 세금 올리겠다는데 이건 또 어떻게 싸울지.  




ps. 그래서 이 번 포스팅의 분류는 "정치"임. 


pps.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플레가 유발된다는 걱정이 있는데, 요즘 세상에 인플레 걱정이라니 무척 반가움. 


ppps. 최저임금 인상으로 걱정되는 계층은 영세 자영업자와 더불어 50대 이상의 노년층임.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된 계층인데, 고용이 줄어들면 이 계층이 우선 타격을 받을 것. 


pppps. 개인적으로는 최저임금 1만원 목표 달성보다는 행정력을 이용한 미달률 줄이기가 저소득층 소득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함.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 진지전 구축으로 전선이 그어지는 것도 정치적 선택의 하나라고 생각. 오바마가 정책적으로 훌륭한 선택을 했지만 정권은 결국 트럼프에게 넘어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