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긴 하지만 놀랍지는 않다. 

 

한국 정치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표현하는데, 그 의미는 보수가 표를 얻기 더 쉽다거나, 빨갱이 공격이 쉽게 먹힌다거나, 영남의 의석수가 호남보다 많다거나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행정부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선출된 권력이 그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행정부 공무원들의 실행이 필수적. 늘공 공무원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선출 권력의 의지를 사보타지할 수 있다. 한국은 주로 보수가 계속 집권해왔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보수의 정책을 디폴트로 생각한다. 사회경제적 이념과 관련된 정책 부서는 보수적 정책을 선호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  

 

기재부가 공개적으로 청와대와 거대여당에 반항하는데, 과거 김대중 정부가 처음 들어섰을 때 정보부서는 간첩질도 서슴치 않았다. 늘상 대북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통일 정책으로 전환하니까 정보부 요원들이 관련 정보를 미국으로 빼돌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방문시 뒷통수를 맞기도 했다. 대통령이 외교에서 뒷통수를 맞았는데 간첩질한 공무원을 처벌도 못하고 가능한 조용히 정보부서에서 물러나도록 한게 전부였다. 이런게 역사적으로 보수가 장기집권해서 만들어놓은 행정부의 힘. 법률에 써있지는 않지만 늘공 사회에서 공기와 같이 흐르는 암묵적 합의. 

 

앞서 포스팅한 "대통령제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은 선출된 대통령의 권위에 의해서 행정 체계가 움직인다. 그런데 그 권위가 진보가 집권할 때와 보수가 집권할 때 현격하게 다르다. 보수의 장기집권으로 행정부 내부에 켜켜이 쌓여있는 보수 정책 선호의 암묵적 합의가 보수의 권위가 진보의 권위보다 쉽게 관철되는 이유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칭해지는 한국의 제도에서도 행정부에 쌓여있는 보수정책 선호의 암묵적 합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 + 180석 거대 여당>의 조합에도 흔들리지 않고 반항하는 기재부를 보라. 그런데 권위와 권한이 훨씬 제한된 연정으로 이룩된 내각제에서 진보 정책이 더 쉽게 실현될리가 있겠는가. 

 

한국에서 대북 정책, 복지 정책 등은 진보적 아젠다가 많이 들어왔지만, 진보가 경제 정책에서 재정건전성이 아닌 확장 재정을 실시하는 것은 아마 이 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 동안 진보는 보수보다 더 가열차게 재정건전성에 얽매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돈쌓아서 이명박 정부가 쓸 수 있도록 해준거나 마찬가지. 미국으로 치면 클린턴 정부에서 나라빚을 줄인걸 칭찬하는 기조가 한국 진보 정부에서도 계속되었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보가 확장 재정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경제 기조를 바꿀려고 하니 지금까지 반항할 필요도 없었던 기재부에서 이제 반항을 하는 것. 

 

이런 행정부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가 계속 집권하는 것. 그 전까지는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한 진보가 행정부의 사보타지를 해결하지 못해 삐걱대는 모습을 계속 보게될 것이다.

 

진보가 계속 집권하면 행정부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보수에게 유리한 쪽이 아니라 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 때는 행정부에서 진보정책이 디폴트고 보수정책이 변화가 되는 것. 진보 정책은 행정부에서 스무스하게 집행되고 보수 정책은 사보타지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진보의 목표는 늘공의 디폴트가 진보 정책으로 암묵적 합의가 되게 만드는 것. 

 

이게 제가 이 블로그에서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진보 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 비례대표 몇 석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는 것이 아님. 진보 정책을 실현한 다른 국가의 역사적 사례를 볼 때나, 제도주의의 이론적 입장으로 볼 때나, 한국 사회를 진보쪽으로 바꿀려면 민주당 장기 집권이 필수적이고 가장 현실적.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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