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 입사제도 논란이 짜증스럽고, 씁쓸하다.


대학별 줄세우기, 지역 편중 등으로 난리인데, 어느 대학에 몇 명을 할당했느냐는 오히려 부차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성이 대학총장에게 할당을 주고 추천을 의뢰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것 아닌가?


할당의 문제는 총장 추천제를 받아들이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기술적 이슈다. 한국 대학에 서열이 있다는게 비밀도 아니고, 삼성의 호남 홀대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임을 보여준다.


대학은 정부의 인허가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준국가기관이다. 국립대 교수와 직원은 공무원이기도 하다. 사립대라도 대학의 입학과 졸업은 정부의 규정 하에서 인정된다.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 요구는 대학 입학 전형에서 고등학교 학교장 추천 전형과 비슷한 것이다. 대학입시는 교육, 입시제도라는 (준)법률적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게다가 어떤 학생이 아카데믹 잠재성이 있는지 평가하는 것은 고등학교의 필수 업무 중 하나다.


즉, 삼성의 총장 추천제는 삼성이라는 일개 사기업이 공공 부문인 대학의 업무를 규정하는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삼성 입사가 장학금도 아니고, 법학대학원이나 의학대학원 같은 것도 아니다. 입사 지원자에게 교수 추천서를 요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추천서는 평소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교수가 의견을 전해주는 것이다. 추천서를 쓰기 위해 학생을 평가하는 작업을 대학이나 교수가 추가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학 총장이 학생을 선발해서 삼성에 추천할려면 각 대학은 삼성에 적합한 인재가 누군지를 학교 차원에서 평가하는 전에 없던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기업 삼성이 공공 부문인 한국 대학 전체에 이 기능을 요구하고 대학은 군말없이 수용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건 오직 어느 대학이 몇 장의 추천권을 받았는지일 뿐.

총장 추천제는 대학은 삼성의 인사부로 일하고, 대학 총장은 삼성 인사부 말단 직원, 그것도 비정규직 직원 노릇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공부문이 사적 부문을 법률과 제도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부문이 공공부문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통제한다.


아무리 한국은 건희제가 다스리는 신성 제국이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도 되나? 나만 이걸 황당해 하고 있는 건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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