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문


“자동화는 기존의 직업을 없앨 뿐 아니라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직업을 충분히 창출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예전에는 제조업에서 없어진 일자리가 서비스업의 일자리로 대체되었다. (중략) 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산업이 중간기술의 직업을 없앨 것이다.”


오늘 신문에 실렸다고 해도 믿을 만한 이 문장은 196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실렸던 기사의 일부다.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한창이던 64년 린던 존슨 대통령은 ‘기술, 자동화, 경제적 진보에 대한 국가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위원회는 기술 진보와 기계가 고용을 없앨 것인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자동화가 고용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자동화의 효과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60년대의 자동화는 일자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 달리 일자리를 없애게 될까.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자. 기계가 인간 노동을 상당수 대체하는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한다. ...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는 이야기다. 식량뿐 아니라 공산품과 기본적인 서비스에서 모두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 인류는 처음으로 노동력 희소성의 시대에서 노동력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노동이 삶의 필요조건이 되는 제약의 세상에서 해방돼, 노동 없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게 가능한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뜻한다. 경제의 근본 문제가 희소한 자원의 분배에서 풍부한 물자의 분배로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인류가 이처럼 풍요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폭발적 기술 변화였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기술 발전의 정체에 따른 성장률 둔화다.


... 다시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기술, 자동화, 경제적 진보에 대한 국가위원회는 자동화의 와중에 일시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져 고충을 겪는 사람을 위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고용 기회가 적으니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기본소득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존슨 대통령은 ‘빈곤과의 전쟁’을 통해 미국 전체의 빈곤율을 큰 폭으로 낮췄다. 풍요의 시대에 빈곤 문제를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잉여노동의 문제를 낳을지는 알 수 없음. 칼럼에도 썼듯이 역사적으로 이런 두려움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음. 4차 산업혁명으로 잉여노동력 문제가 제기될 때 진보 진영에서는 이 두려움을 이용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게 남는 장사.  


19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기본소득을 실제로 도입하려고 여러 실험을 했던 이유 중 하나도 기술진보가 고용을 없앨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 


어느 나라든 기본소득을 먼저 도입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실제 효과와 관계없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음. 


현실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경제 성장 지체와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시간이긴 하지만...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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