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주간동아 기고문



정부와 통계청이 소득 자료와 재산 자료 공개를 거부하는 핵심 논리가 프라이버시 보호. 하지만 복지국가일수록 중앙 정부가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고, 연구를 위해 공개하고 있음. 


정작 필요한 프라이버시는 정부에서 보호하지도 않으면서 부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악용하는 경우가 빈번함.  


"과학은 진보 편향이 있다 (science has a liberal bias)"라는 말도 있음. 정확한 통계는 없는 사람들의 편. 정확한 통계 없이 복지도 없고 평등한 사회도 없음.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 투명성이 낮아지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반면, 진보 정권에서 정보 공개권을 강화하는게 우연이 아님. 


통계 입국이 복지 강화의 길. 





최근 한국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 딸의 재산이 이슈가 되었음.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재산 공개 의무를 지지 않는 자녀가 의혹 대상이 된 것이다. ...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다르다. 모든 사람의 세금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 매년 10월이면 모든 노르웨이인의 소득 정산 보고서가 공지된다. 언론은 최고 소득자가 누구인지 보도하고, 정치인과 유명 인사의 소득을 소재로 기사를 쓴다. 누구나 이웃, 친구, 동료의 연소득을 확인할 수 있다. ...

노르웨이만 유난한 것이 아니다. 스웨덴도 1903년 이후 모든 세금정산 보고서가 공공자료가 됐다. 전화 한 통이면 누구든 타인의 세금 명세를 알 수 있다. 이때 정보 요청자의 실명을 밝힐 필요도 없다. ...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세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소득과 관련한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복지 확대와 양립하기 어렵다. 복지는 필연적으로 개인 정보의 정부 집중을 필요로 한다. 복지 수혜자를 제대로 가려내려면, 또 복지 재원을 충분히 마련하려면 소득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 

소득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려면 정확한 통계 정보가 필요하다. ... 미국은 한국보다 프라이버시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부 보안을 요하는 직종을 제외하면 모든 연방정부 공무원의 개인별 연봉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많은 주정부가 주공무원의 연소득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주립대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  

많은 국가가 국세청 소득 자료와 서베이를 연계해 불평등 증가의 원인을 밝혀내려 애쓰고 있다. 미국도 여러 서베이와 세금 자료를 연계해 연구한다. 최근 발표된 불평등에 대한 중요한 사회과학 논문의 상당수가 개인의 세금자료를 직접 분석한 것들이다. ...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 다른 나라보다 자료를 연계해 이용하는 게 쉽다. 교육, 소득, 의료 정보를 연계해 불평등과 빈곤 정도를 파악하고 정책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늘었는지, 누가 빈곤층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유럽 복지국가는 모두 이렇게 한다. 전 국민의 자료를 분석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 노력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국민 복지는 정보의 공개와 정확한 통계의 작성에서 시작된다.


주간동아의 부분개편으로 이 글이 저의 주간동아 마지막 기고문이 되었습니다. 2년 넘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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