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의 자격요건

기타 2009. 7. 19. 03:41
어떤 조직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해당 분야에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그 조직을 채우는 것일게다. 해당 조직의 행동양식이나 목표를 바꾸겠다는 생각이면 그 조직의 수장으로 어떤 굳건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겠지만, 조직을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만들려면 무능한 사람이 최적이다.

그런 면에서 현병철 교수의 인권위원장 임명은 인권위 무력화 시도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실무 경험이 없으면 이론적 바탕이라도 튼튼하면 좋을려만 현 교수의 논문 목록에서는 그런 면을 찾기 어렵다.

현 교수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인권과 관련된 연구나 실무경험이 없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덜커덕 맡는 것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인권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낙마시키기 위해서 논문표절을 문제 삼는 건 별로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학문은 외국에서 배운 것을 물려주는 교육(티칭)이었지, 새로운 내용을 밝혀내는 연구(리서치)가 아니었다. 논문을 쓰는 연구는 장식물에 가까웠다. 바꿔야할 잘못된 관습임에 틀림없고, 많이 바뀌었지만, 이걸 문제삼아 공직 진출의 기회를 박탈하는게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참여정부 때 보수주의자들이 억지에 가까운 논문표절의 잣대를 들이대서 여러 사람을 물먹였지만, 굳이 똑같이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학문적 발전을 위해 표절을 금지하고 그런 문화를 만들었는데, 정치적 동원의 논리만 되어서야 쓰겠는가. 표절이 교수직을 유지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지만, 공직에 진출할 때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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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혁명이 20세기와 같은 비약적인 생산력을 가져오지는 않을거라는 신경제 비판론자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정보통신혁명이 서비스산업의 비약적 생산력 발전을 "아직은" 동반하지 않는다는 거다.

컴퓨터 사용은 60년대부터 꾸준히 늘었다. 9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컴퓨터를 피부로 느끼지 시작했을 뿐이다. 중요산업에 중앙컴퓨터는 우리가 PC를 쓰기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컴퓨터 칩의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컴퓨터의 연산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지 않냐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맞다, 컴퓨터 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하급수적 발전이 생산력의 기하급수적 발전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이 그에 맞춰서 늘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가지 저널이 출간되자마자 도서관에 갈 필요없이 내 이메일로 출간 사실을 통보해 오고, 인터넷 접속 만으로 논문을 받아볼 수 있지만, 내가 그 저널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궁둥이 붙이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가 어떤 쌈빡한 아이디어가 있을 때 가지고 있는 데이타를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단시간 내에 복잡한 모델을 돌려볼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논문으로 쓰기 위해서는 옛날에 타자기로 썼던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만큼을 라이팅에 보내야 한다.

인간이 손과 머리로 직접 해야 하는 서비스를 기계와 로봇이 대신해주는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즉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서 인간이 만족할만한 자동화, 로보트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20세기에 봤던 급속한 생산력 발전을 신경제로 다시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ps1. 전기모터는 1800년대 초에 발명되었지만, 전기가 일상의 삶을 바꿔놓은건 20세기 중반이다.

ps2. 오트론 대신에 스타크래프트하는 게 발전인 건 분명한데, 자치기 하다가 오트론하는 발전만 못하다.

ps3. 아이팟이 워크맨보다 훠~얼씬 좋기는 하지만, 라이브 연주회가 아니면 음악이 없었던 시절에서 워크맨 듣던 것과 비교해서 훠~얼씬 덜 혁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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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규제완화와 투자촉진 차원에서 꺼내든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도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대표적인 보수우파 인사가 좌파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이유가 뭔가.


“여기 와서 직접 살펴보니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세계 일류 수준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삼성의료원이나 서울대학병원 같은 최고 병원을 별다른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스웨덴에 가서 그곳의 한국 의사들과 조찬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 자신들조차 동료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4~6개월 기다리는 것은 예사라고 했다. 치과는 도저히 안돼 한국에 와서 진료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오바마정부가 국가적 재앙으로 떠오른 의료보험 시스템을 영국이나 한국 같은 단일보험 시스템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나. 단일보험에 대해 워낙 반대가 극심해 공보험을 만들어 사보험과 경쟁시키려 하지만 이것도 공화당과 보험업자들의 반대 등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하다. 요컨대 시장에 맡겼다가 실패한 시스템을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이 병원의 대형화를 유도해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 건보 시스템 훼손과는 상관없다는 주장도 많다.


“영리의료법인을 제한 없이 허용한다면 지금의 건강보험시스템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 뻔하다. 대형 보험회사들이 앞다퉈 영리의료법인을 설립해 엄청난 연봉을 주며 인기 의사들을 데려갈 것이고 환자가 몰리면 일본처럼 간호원 7~9명이 따라붙는 초특급 병실을 만들어 무한 영리추구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결정적으로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모든 의료기관이 건보 시스템의 적용을 받도록 한 당연지정제는 무너지고 건보 시스템은 별 볼일 없는 비영리병원하고만 계약하는 초라한 존재가 될 것이다...”


주간 조선 기사.

이게 도대체 내가 알던 그 정형근이가 한 발언이 맞나? 장성민 전의원과의 라디오 인터뷰 후 장 전 의원이 "정형근이가 살아남기 위해 무섭다... 무서워"라고 얘기했는데, 정형근이 정말 무섭게 변했다. 정형근 부임 이후에 건강보험공에서 별 말이 없어서 죽은 듯이 지내나 했더니 이렇게 변했네. 이 정도 인식이면 같이 토론하면서 일할 만 하겠다.

그래 인정한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진보개혁세력의 투쟁이 아닌 보수 우파의 시혜로 이룬 복지라는걸. 이거, 니네들의 훌륭한 성과 맞으니까 쭈~욱 잘 지켜라.

추가로,

현재 미국에서는 1% 상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전국민 의료보험을 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시벨리우스 보건 장관이 전재희 장관에게 한국의 의료보험을 한 수 가르쳐달라는 기사도 얼마 전 나왔다.

이에 대해 클린턴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라이시의 칼럼이 읽을 만하다. 1% 부자에게 추가 과세해서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라이시는 "담대하고", "공정한" 아이디어라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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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wanted you to know that this assignment got me out of a traffic ticket this morning.

La Cienega was shutdown to due an accident and I was trapped. So, I made a u-turn which included driving over a curbed median. A motorcycle cop pulled me over and gave me a lecture about how this isn't Texas (I have texas plates) and "cowboy driving" is not acceptable....whatever that means. So I told him that I had to get to campus for the mid- term and I had a limited amount of time to complete the homework assignment. I pulled out assignment #3 to make my story credible and he took it with him when he went back to his motorcycle.

When he came back he told me that it seemed like the assignment was going to be enough punishment and he let me go.

"숙제만으로도 충분한 처벌이 된 것 같다." ㅋㅋㅋ

USC의 부동산개발학 석사과정의 얘기랍니다.

별 관계없는 얘기지만, USC는 캘리의 어려운 경제 때문에 경쟁하는 주립대들이 찌그러져서 오히려 학생수급이나 교수 채용에서 유리할지 아니면 망가지는 캘리 경제의 어려움에 같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재작년인가 교수 채용하면서 자기네는 하버드를 경쟁상대로 삼고있다는 식으로 멘트를 날려서 약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죠. 하긴 예전에 김태희나오는 하버드 학생들 드라마 찍을 때 USC에서 찍기는 했습니다만.

캘리주립대는 해고는 물론이고, 10개 캠퍼스 중에 하나를 문닫는 것도 논의중이라는군요.

소스는 http://real-estate-and-urban.blogspot.com/2009/07/rigors-of-usc-masters-in-real-esta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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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분들과 달리 부가세 인상에도 죄악세 인상에도 동의한다는 입장이고, 이 거 하면 명박통을 훨씬 덜 미워하겠다고까지 했는데, 결국은 말을 안듣는군요.

죄악세 인상 인한다는 연합뉴스 기사

노대통령이 예전에 국가를 위해 자기 지지기반을 돌보지 않았던 모범 사례로 캐나다의 멀루니를 든 적이 있죠. 멀루니가 도입한 세금이 연방부가세입니다. 부가세를 늘리는 것 같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말만 그렇게 하고, 정치적 신뢰만 잃었지만요... 

어쨌든 우리나라도 OECD 평균 따라갈려면 부가세를 지금의 거의 두 배쯤 더 걷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하면 특히 자영업자들로 부터 외면받고 정권을 잃게될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몰락은 어떤 면에서는 중과부적인 일입니다. 용산참사처럼 밀어붙이지 않아도 영세자영업자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점점 힘들어질 겁니다. 자영업자의 비율은 줄이고, 이들에게 괜찮은 임노동직을 제공하는게 저는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임노동직은 창출하지도 못하면서 밀어붙여서 목숨만 앗아가는 법질서 확립 말고요.

제3세계는 non-standard employment라고 얘기되는 비정규직보다, informal worker라고 얘기되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 문제가 더 큽니다. 우리나라는 비공식 부문 문제가 거의 없지만, 대신 자영업자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인구의 30%가 자영업자라고 마치 우리나라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것처럼 사탕발림으로 얘기하지만, 이거 사실 골치거리죠. 안정적 수입보장이 안되는 계층이 많아서 위기시에 무척 위태롭거든요.

명박통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한다면, 세금을 올리고, 사회서비스업을 늘려서, 자영업으로 갈 인력이 사회서비스업의 임노동직에 흡수되도록 하는게 좋다고 생각되는군요. 시장통가서 세상 좋아졌다고 산지 직거래 드립을 칠게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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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 게임의 맥아리 없는 시구로 인기 좀 깎아묵었겠다.

잠바 안, 청바지 속에 두툼한 방탄복 입은 거 너무 티난다. 이 더운 여름에.

경호팀에게 대규모 스테디움에서의 시구는 악몽과도 같다더니만.

한국 대통령들은 시구하면서 방탄복을 입었던 것 같지는 않다. 총이 없으니 대통령 시구도 가벼운 차림으로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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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이 예상보다 빨리 낙마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도 재빨리 사퇴하는 걸 볼 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뭐가 되었든 명박정부가 이전보다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나라당의 반응도 신속하게 청와대에 전달된 것 같고, 여의도연구소의 민심동향 체크도 순발력있게 보고되었다. 국정쇄신까지는 아니지만, 일하는 스타일에 (일시적인 변화일지라도) 변화가 있는 건 확실하다.

작년 촛불시위는 명박정부로 하여금 공권력에 기대는 공안정부가 되게 만들었는데, 올해 노전대통령의 서거 정국은 명박정부로 하여금 여론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연대 가능성이겠지. 대안 정치 세력이 없을 때는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지만, 대안 정치 세력이 나오면 선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대안 세력 없이 개별적인 분노의 폭발일 때는 공안으로 억누를 수 있지만, 대안이 생기는 순간부터 일이 좀 복잡해진다.

이런 것도 견제라면 견제다. 천성관을 두고 버티는 명박통보다는 냉큼 짜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는 명박통이 그래도 남은 3년반 동안의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서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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