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에서 하위 20%의 가구소득이 급감하고, 상위 20%는 급증했다고 난리가 남.


예를 들면: 조선한겨레.


아래 그림은 한겨레 보도임. 소득하위 20%는 전년동기 대비 급락하고, 소득 상위 10%는 전년 동기 대비 급증함. 


이 그래프만 보면 2018년에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음. 





그런데 2018년 가계동향조사는 표본구성이 바뀌고, 샘플수도 바뀌는 등 전년 동기와 직접 비교할 수 없다고 여러 사람이 여러 곳에서 얘기하였음.  


지난 번에도 얘기했지만, 가계동향조사는 생난리를 쳤던 그 조사임. 통계청장을 교체하는 등 그 난리를 쳤는데도 불구하고, 가계동향조사에서 어떤 결과는 믿고 어떤 결과는 의심해야 하는지 아무런 논의도 없이, 또 자극적인 통계 숫자를 뽑아서 생난리를 치고 있음. 금붕어 아이큐도 아니고, 참. 


일반적으로 선거보도를 경마식 보도라고 잔뜩 비판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고용, 소득의 경마식 보도가 이어지고 있음. 


이전에 이우진 교수진이 분석했던 2018년 1/4분기 신규패널과 기존패널 아이디가 있는 자료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2017년과 2018년결과를 단순 비교하는 가계동향조사는 하나도 안믿음. 






4/4분기 원자료가 없어서 100% 자신있게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보기에 통계청 자료를 통해서 난리를 칠만한 뉴스가 없음. 


아래 그림은 통계청 보도자료를 이용해서 그린 상위 20%와 하위 20%의 2018년 가처분 소득 및 균등화 가처분 소득의 변화임. 


보다 시피 상위 20%나 하위 20%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음. 1분기 대비 4분기에 하위 20%의 소득은 6천4백원 줄었고, 상위 20%의 소득은 43만원 줄었음. 


균등화 소득으로 보면 상위20%/하위20%의 균등화 5분위 배율이 5.94에서 5.47로 감소함. 고용과 소득의 절대액수는 계절변수에 상당한 영향을 받지만, 상대적 배율은 계절변수의 영향도 작음. 한겨레에서 보도하듯이 2017~18년에 소득5분위 배율이 4.61에서 5.47로 올라서 소득 불평등이 크게 악화되었다면, 2018년 초반대비 하반기에 소득주도성장의 분배 개선 효과가 대폭 나타난 것임? 





위의 한겨레 왼쪽 그래프에서 2018년 1분기에 하위 20% 소득이 지나치게 감소한 것은 실제 소득의 변화라기 보다는 데이타 문제일 가능성이 훨씬 큼. 그것도 2018년 데이터가 튀는게 아니라 2017년 데이터가 튀어서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함. 위 한겨레 그레프에서 2017년 4/4분기에 하위 20%의 소득이 갑자기 상승함. 2018년 4/4분기의 2017년 대비 하위20% 소득 급감은 현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걍 2017년에 튄 자료의 반영일 가능성이 제일 큼. 


2018년에 하위 20%의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음. 하위 20%의 균등화 가처분 소득이 1사분기에 82만9천8백원이었다가, 4사분기에 82만3천4백원으로 6천4백원 줄어든게 다임. 2사분기에 하위20%의 소득이 2만원 올랐던게 오히려 튀어 보임. 이 정도 변화는 그냥 표본오차의 범위에 있는 매우 정상적인 등락임. 


한 줄 요약하면, 2018년 가계동향조사를 2017과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2018년 전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음. 


그렇다고 소득 분포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님. 모른다는 거지. 내년에 가금복 데이타가 나오기 전에는 소득분포 관련 2018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쉽게 얘기할 수 없음. 지금의 난리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함의를 뽑아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통계를 이용한 쇼를 벌이고 있을 뿐. 





Ps. 폐기하기로 했던 가계동향조사를 2017년 4사분기 결과를 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가 나온다고 급하게 되살린 현 정권의 업보니, 현 정부가 누굴 원망하지는 못할 것. 그건 그렇고, 툭하면 팩트체크를 떠들지만 한국 언론의 통계를 이용한 팩트 체크 능력은 상당한 문제가 있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준비해야 하는거 아닌가?


2심에서 뒤집어진다면 좋겠지만, 아닐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렇게 여당 전체가 올인하는게 옳은가? 억울했던 아니었던 한명숙도 결국 손절매 당했다. 1심에서는 무죄였지만, 2심에서 유죄였고, 대법에서 확정되었다. 대법까지 가서 결과가 바뀌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 때 가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할 것인가? 





많이 얘기하지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 가지 패턴이 있었다. 


경제에 집중하던 시기에는 지지율이 오르고, 정치 이슈가 터지면 지지율이 떨어진다. 노대통령 시절에는 야당에 의해, 또 본인이 제기해서 지속적으로 정치 이슈가 공론의 중심에 있었다. 이렇게 가면 어려워진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초기의 낮은 지지율에 비해 후반기에 상당한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 비결은 2008년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소득불평등이 줄어드는 등, 4대강 삽질의 성과가 나타났고, 정치 보다는 경제 이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촛불, 2009년 용산참사 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 시기의 후반기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박정희 후광 외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절반의 힘은 여기에 있었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올해 대북정책의 실질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예타면제 등 확장적 재정과 소득주도정책의 성과도 나타난다면, 현 정부의 지지율은 상당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고, 2020년 총선에서도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총선은 촛불혁명으로 야당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현 집권 여당에 대한 평가이다. 적폐청산이 총선의 주요 이슈가 되기 어렵다. 민주당이 오래 집권하는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 맛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적 효과면에서 총선결과는 김경수 지사의 재판 결과보다 더 크다. 이 기회를 김경수 지사의 억울함을 풀자고 위기에 빠뜨리는게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정인지... 여당에서 올인하지 않아도 김경수 지사의 2심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또 법적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동지에 대한 의리, 부당하게 느껴지는 결과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이해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20년 집권을 노리는 집권당이 어떻게될지도 모르는 결과를 두고 올인하는거는 아니지 않은가? 우상호 의원이 사법탄핵은 민주당이 좀 과했다라고 얘기했다는데, 변화의 신호이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이 법알못의 인상비평이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향신문 양권모 칼럼: 문재인 정부의 토건 본색


차마 이럴 줄 몰랐어요. ‘토건 대통령’ 때의 삽질을 문재인 정부에서 겪게 될 줄 짐작이나 했겠어요. ... 개발과 토건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자유한국당 뺨치는 것 같아요. ... 모욕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런 토건 잔치는 ‘MB 따라하기’ 같아요.


이 문제로 화난 진보 분들도 많고, 문재인 정부 비판안하고 뭐하냐고 한 마디씩 하는 분들 많은 듯. 


최저임금 문제로 어용지식인 벌써 다 죽었냐고 한 마디 한 적 있는데, 이 번에도 마찬가지. 어용지식인도 아무나 하는거 아닌 듯. 그러길래 토건 욕은 왜 그렇게들 하셨는지. 


이 블로그에서 꾸준히 얘기했듯, MB의 4대강이 꼭 나쁜게 아님. 경기가 다운되고 마땅한 수단이 없을 때는 삽질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함. 특히 경기 하강으로 불평등이 확대될 때는 삽질이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도 있음 (요기서도 얘기). 이 얘기 하고 다니다가 민주당 인사들과 진보 분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문재인 정부도 결국 삽질을 하고야 마는 것. 


일자리 통계를 통해서도 여러 번 얘기했듯, 건설경기만 과거 정권처럼 유지되었으면 작년 일년 내내 떠들었던 고용참사도 그 정도가 상당히 달랐을 것. 고용에 가장 큰 문제가 생긴 집단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저소득 여성층이 아니라 40대 남성임을 기억할 것. 한국의 경제 구조상 40대가 무너지면 가계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감. 이들 완화시켜주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함.  


올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최저 임금이 인상됨. 작년처럼 일자리에 문제가 있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보수 측에서 생난리를 칠 것은 명약관화. 최저임금은 이미 올리기로 했고, 복지도 확대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정책을 필수있는 정치적 동력을 유지할 것임? 40대 남성의 고용을 유지하고, 자영업의 반발을 억누를 가장 좋은 수단이 무엇임? 지역에 돈 풀기에 삽질보다 더 나은 수단이 현재 있음? 추세적 경기 하강을 예측하면서 돈을 풀지 말라는 것은 또 뭐임? 


작년 연말 통계로 민간소비가 증가하니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는데, 1년 내내 종말이 다가오는 듯이 얘기하다가 이제서야 뭔가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 작년에도 삽질을 해서 경기를 유지했으면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평가도 달랐을 것. 올해 삽질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작년에 삽질 예산을 대폭 줄인 것이 문재인 정부의 패착. 


물론 예타면제가 가진 문제점들이 있음. 하지만 삽질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현재 나은 정책임. 복지확대와, 최저임금인상, 소득증대 정책은 그것대로 또 해야. 


진보의 토건울렁증을 이 번 기회에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람. 





Ps. . 소득주도성장으로 진보의 성장 울렁증도 극복했으면. 1인당 GDP로 경제 성과를 측정하는걸 많이 비판하는데, 문제가 있는거 다 알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보는 딱 한 가지 지표만 선택하라면, 1인당 GDP임.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지표는 아직 없음. 온갖 삶의 질을 측정하는 인덱스를 살펴보면 가장 큰 결정 요인은 역시 1인당 GDP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뉴시스 보도: 500만원 벌금 선고유예

뉴스1보도: 검찰 10개월 구형


교직원 감금 (아마도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된 최은혜 전 이대 총학생회장에게 벌금의 선고 유예가 내려짐. 


이 사건에 대해서 2016년 당시에 요기, 요기서 언급한 적이 있음. 법알못이지만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특수감금 혐의가 농후하고 지도부 없는 민주주의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게 주장의 요지. 당시에 그거 아니라고, 절대 감금이 아니고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라고 우기던 분들이 이제 뭐라고 할지. 


최은혜 전총학생회장 혼자 기소되고 혼자 2년 넘게 고생한 이 사건은 이제 와서라도 몇 가지 짚어봐야할 점이 있음. 


1. 


우선 "대표없는 민주주의"는 허구라는 것. 


대표없는 시위에서 환영받지 못한 공식 대표가,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 혼자 책임지고 처벌받은 게 바로 최은혜 전학생회장에 대한 벌금 선고 유예임. 시위의 대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식 조직의 대표였기에 혼자 처벌받았음. 


기존 시스템에 항의하는 많은 시위가 불법적 요소가 있고, 이 불법적 요소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대표가 지는 것. 대표로써 영광도 보면서, 협상을 주도하고, 동시에 협상과 행동의 모든 accountability를 대외적으로 담지해야 함. 


그런데 이대시위의 익명성, 무대표성은 민주주의의 완성된 형태로써가 아니라 책임성을 회피하는 기제로 나타났던 것임.


익명성 무대표성이 책임성 회피 기제가 아니라, 대표 없이 모두가 같이 결정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모두가 같이 책임지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민주주의의 결정체였으면, 최은혜 전회장이 혼자 처벌받을 때 나도 같이 처벌하라는 움직임이 있었어야 함. 


하지만 나타난 현실은 그 때 시위에 참여했던 모두가 숨어버리고, 그 때의 모든 기록도 파괴하고,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어떤 후속 작업도 회피하는 것이었음 (2017년 한겨레 21보도). 


학내 시위로 시작했지만 최진실-정유라의 비리가 드러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정당화할 수도 있음. 실제로 무죄 탄원서의 논리 중 하나도 그거 없음. 하지만 이는 결과론일 뿐. 


대표없는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실험은 민주주의가 고도화가 아니라, 대표성도 책임성도 지지않으려는 좋지 못한 의미의 개인주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개선을 바라고 행동하는, 공동선을 위한 의지의 결합이었음. 


지속될 수 없고 (개인적으로) 지지할 수도 없는 형태지만, 그 속에 담긴 긍정적 요소마저 차후에 살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 


2. 


그럼 (특수)감금은 잘못된 행위였는가? 


감금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이화인의 탄원서에도, 변호사의 방어 논리도, 감금 자체를 부인하기 보다는 주동자가 아니라 오히려 말리는 입장이었다는 것. 


그런데 시위를 하다보면 이런 일은 벌어지게끔 되어 있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그보다 더 큰 대의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함. 


감금 사건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분은 아마도 유시민 이사장.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에 관련된 사건(죄명은 폭처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쓴 것임. 항소이유서 내용도 법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독재의 부당함과 독재 치하의 청년을 얘기하였음. 


이 사건은 프락치도 아닌 민간인을 무려 11일 간이나 감금, 고문, 폭행했던 죄질이 상당히 좋지 못한 사건이었임. 


이 때문에 유시민 이사장에 대해서 아직도 이 사건으로 비판하는 분들이 있음. 유시민은 직접 폭행하지 않아서 정상참작이 된다고 치고, 그 때 직접 폭행을 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건의 책임이 분명한 백태웅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지금 비난받고 있음? 백태웅씨는 나중에 은수미, 조국, 박노해, 안병진 등과 사노맹이라는 반체제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음 (다들 지금 정치 일선 내지 이선에서 맹활약 중). 직접 폭행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한 또 다른 관련자인 심재철은 보수로 전향하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음.  


백태웅씨는 지금 하와이대 법학과 교수로 인권법 전문가임. UN에서도 인권 문제로 상당한 활약을 하는 분임. 타인의 인권을 침해했던 범죄자가 아니라 군사독재 시절의 양심수로 국제적으로 인식되고 있음. 보수 입장에서 보자면, 감금 고문 폭행 행위자가 인권전문가가 된 아스트랄한 상황. 


감금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책임을 나눠지고, 그 행위와 관련되었던 목적의 정당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체 행위의 평가는 달라짐. 정치적 시위와 그에 따른 불법행위는 항상 그러함. 


3. 


이대시위의 역사는 최은혜 전총학생회장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함.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끝까지 있었고, 영광을 보지는 못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음. 2016년에 있었던 사건인데, 1심 판결이 2019년 1월에 났으니 2년반을 넘게 고생하였음. 


아이러니 하게도 대표로 인정받지 못한 이대시위의 대표로 혼자 처벌받음으로써 오히려 대표성을 확보하였음. 이대 시위의 유일한 대표임. 


혹자는 경찰과 검찰이 최 전총학생회장만 기소했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텐데, 그거 아님. 언론보도를 보면 최은혜씨는 경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 자신이 주도하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음. 수사기관도 최 전총학생회장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그 정도에서 끝낼 수 있었던 것. 


최은혜 전총학생회장이 지지를 받고 정당성을 부여받을 때, 지금 나서기 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밝히고 당시 시위의 명암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 


86세대가 지금 정치권에서 잘 나가는 이유도 80년대 시위의 대표로 나섰기 때문임을 기억할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향신문 기사


지난 번 장하준 교수 중앙일보 인터뷰 보고 좀 황당했었음. 장 교수가 평소 해왔던 주장이 있기 때문이 이 분이 무슨 얘기하는지 뻔한데 그걸 또 현 정부 비판에 이용하는 중앙일보. 


이 번 경향신문 인터뷰가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명확히 드러냄. 인터뷰어(안희경)가 논쟁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 


재벌에 대한 태도에서 장교수와 한국의 좌파가 입장이 다르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얘기. 저는 중소기업을 살려서 국가경제를 일으키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보다는 장교수의 주장에 더 공감하는 편. 


자본주의 경제는 국민국가 (nation state) 정치 체제 하의 경제 체제고 복지든 뭐든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음. 민주주의도 국민국가 체제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이게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책 대안은 이 한계 내에서 고민해야. 


지난 번 중앙일보 인터뷰 이후 장 교수가 새롭게 비판받은게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데 뭘 또 투자하라는거냐는 것. 그에 대한 장교수의 답이 아래 박스. 


한국 사회가 "공정"에 천착하다가는 망한다는 것. 동의함. 과정이 아닌 결과의 평등으로 담론이 바뀌어야 함. 


안 = 한국 정부도 R&D(연구·개발) 지원해 주잖아요. 다만 지원대상이 분산돼 있고, 한 해 평가를 해 다음 지원 여부를 결정하니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방향이지만….


장 = 혁신과정을 잘못 이해하는 겁니다. 혁신은 사기업이 하든, 과학자나 정부가 하든, 열 개 해서 한두 개 크게 맞으면 돼요. 정말 실패할 위험이 있는 것을 해야 진정한 혁신이 나오지, 안전한 것만 하면 그게 무슨 혁신입니까.


안 = 그럼 예산을 편파적으로 쓴다는 비판도 나오고, 과용한다는 지적도 있으니 골고루 주는 거죠.


장 = 개념을 바꿔야죠. 컴퓨터도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1958년인가 토머스 왓슨 주니어 IBM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컴퓨터 판매 대수가 5대라고 했어요. 그때는 컴퓨터를 살 수 있는 곳이 미 육군, 해군, 공군, 국무부 이런 데밖에 없기 때문에 그냥 소련과 체제 경쟁에서 군사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 했던 거죠. 나중에 그 기술이 세상을 바꿨지만, 그때 이윤만 생각했으면 문 닫았어야 할 산업이었죠.


장 교수의 이 번 인터뷰에서 가장 논쟁이 될 부분은 아래 박스. 상위 1%에만 문제라는 시각은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는 주제. 


한국 사회 상위 1%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잘살지 못하는지는 (데이터가 없어서) 잘 모르겠고, 한국의 상위 10%가 잘사는 편인지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음. 결론은 상위 10%가 특별히 나머지 90%보다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위 10%가 특히 더 못산다는 것. 


한국사회 불평등 증가의 독특성

중상층이 자신을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좀 더 자세히 들여봐야겠지만 한국은 상위 20~30%의 중산층이 두텁고 이들의 여론 지배력이 절대적인 사회라고 생각됨. 이들 중산층이 복지확대에 저항하지 않고 찬성하도록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 


장 = ‘재벌 때문에 불평등이 나온다’, 그건 문제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상위 1%는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잘살지 않는데 상위 10%는 잘사는 편이죠. 문제는 상위 10%지, 상위 1%가 아니거든요. 중소기업이 착취당한다고 하지만 그 중소기업주들은 노동자 착취 안 하나요? 재벌이 권력을 남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규제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누진세로 많이 걷어 복지제도를 확대해 소득재분배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재분배를 하기 전 불평등도가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런 나라도 미국과 비슷해요. 자기가 번 돈 세금 내고 정부 복지수당 받기 전 소득만 갖고 계산하면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세금 내고 복지 지급하기 전, 불평등도로 보면 제일 평등한 나라예요. 그런데 복지는 OECD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잖아요. 복지 지출도 재분배 성향이 높지 않아서, 재분배를 하고 나면 평등도가 OECD 평균 이하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규제를 통해 불평등을 낮춘 거예요.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