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선 박사 논문 게재의 책임 문제
"진정 과도한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학연구회입니다. 학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저질 텍스트에 학문의 권위를 부여하고, 그를 통해 ‘보이루’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한 윤지선의 근거 없는 주장이, ‘한남충’이나 ‘한남유충’과 같은 혐오표현이 학문적 활동이라는 미명 하에서 유포되고 전파되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이 바로 철학연구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 윤지선 박사의 논문이 『철학 연구』의 심사를 통과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교훈은 『철학 연구』의 심사 절차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
"철학연구회"의 심사 절차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데, 어떤 결함이 있다는건지? 한국 학술지의 심사 절차는 거의 똑같지 않은가? 철학연구회는 뭔가 다른 절차를 채택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절차가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짚어줘야 하지 않나?
이런 논문이 나오면 (하도 유명해서 저도 훑어는 봤다) 그 책임은 "철학연구회"가 아니고, 논문 심사 당시의 『철학 연구』 편집장이 져야하지만 대부분의 학회 규정에 따르면 편집장도 아무 책임이 없다. 한국에서 학술지 편집장은 행정직원에 가깝지 논문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리뷰어들이 잘못한거지만, 그렇다고 리뷰어 탓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엉터리 논문이 나와도 책임질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 최대한 문제삼으면 좋은 리뷰어를 구하지 못한 편집자 탓이겠지만,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라는 꼴이 된다. 리뷰어 구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 문제의 재발 방지책과 책임을 생각한다면, 한국 학계 논문 심사 방식의 기계적 결정 과정을 문제 삼아야 한다. 아래는 <한국사회학>지의 판정 기준이다. 학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논문이 아무리 수준 이하라도 두 명의 리뷰어가 "수정게재" 의견을 내면 논문은 대부분의 경우에 나온다. 두 명의 리뷰어가 "수정게재" 이상의 의견을 냈고 그에 맞춰 수정했는데도, 논문이 근본적으로 수준 이하라서 싣지 않으려면, 편집자가 학회 판정 기준을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하는 무리수를 둬야 한다. 그런 분이 없는건 아니다.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매우 드물다.
철학연구회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논문이 함량 미달일 때 학회 판정 기준을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하는 무리수를 둘 편집장을 선출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제출만 하면 다 실어줘서 실제로는 심사라는게 없다는건가? 도의적 책임이라는 실체가 모호한 책임으로는 철학연구회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연구회라는 조직이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는 최성호 교수의 글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예전부터 한 번 얘기하고 싶었는데, 한국학술지의 판정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방식은 편집장의 자의성을 배제하지만, 동시에 학술지 편집장을 맡은 경험많은 학자의 판단을 무력화시킨다. 잘못된 논문이 게재되었을 때의 책임소재도 없애버린다. 저는 윤지선 논문 사건을 이러한 제도적 문제의 산물로 이해한다. 이런 문제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은 학술지 편집장에서 권한을 주고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미국학회지들은 편집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리뷰어들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최종 판단은 편집장의 몫이다. 리뷰어들이 조금 비판적이어도 편집장이 논문을 수용할 수도 있고, 2명이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비판적인 1명의 논리가 타당하면 편집장이 리젝 결정을 내린다. 극단적인 예로, 예전에 Sociology of Education 제출 논문을 리뷰했는데, 저를 포함한 3명의 리뷰어가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논문의 방법론이나 논지가 아니라 연구 주제 자체가 올드하고 발전 가능성과 추가적 기여도가 없다고 편집장 본인이 나서서 장장 5쪽에 걸쳐 해당 주제의 논쟁사를 빽빽히 개괄하면서 평가결정문을 써서 리젝하는걸 본 적이 있다. 진짜 놀랐다. 이 분야는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는 그 자신감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이런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편집장의 자의적 판단이 과도한 경우도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경우도 몇 번 당해봤다). Social Science Research라고 사회학에서 꽤 괜찮은 학술지가 있는데, 여기서 Mark Regnerus라는 학자의 2012년 논문이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동성 커플의 자녀교육을 문제삼는 내용으로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료도 이상하고 논문 심사 과정도 황당했던 것. 미사회학회에서 유명했던 사건이다. 이 문제로 난리가 나서 SSR의 논문 리뷰 과정이 audit을 받았고, 1978년 부터 2014년까지 무려 36년간 이 저널 편집장을 맡은 저명학자이자 고인물 중의 고인물 James Wright 교수는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고 사임 요구까지 받았다. 2019년에 돌아가셨으니, 커리어에서 이 논문 사건이 최대 오점이리라.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의 권한은 "명성"에 근거해 주어질 수 밖에 없다. 학문은 동료평가 외의 다른 외부평가가 불가능한데, 동료 간에는 명시적인 위계가 없다. 편집장으로 엉터리 판단을 자꾸 내리면 자신의 명성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엉터리 논문의 출간을 절대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리뷰어의 1차 판단과, 이를 종합한 편집장의 최종 판단, 두 단계 시스템을 도입하는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다. 편집장의 자의적 판단이 걱정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논문은 편집장과 편집위원 2인 이상이 추가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도 있다. 어떤 형식이든 엉터리 논문 게재의 책임은 편집장이 지게끔 시스템을 만드는게 낫지 않을지.
조직에서 절차의 합리성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면 그 조직이 추구하는 실체적 합리성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절차도 완벽할 수 없다. 자의적 판단 영역을 배제하는 극단적 객관화는 정형화하기 힘든 새로운 문제 해결의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베버가 혁신을 막는 아이런케이지라고 비판한 관료제는 가장 효율적 조직 형태라는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어쩌면 한국의 시스템은 학문적 명성이라는 묵시적 위계의 부재에서 생겨난 문제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