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걸 참는 능력
종교 현상은 사회과학의 대상이지만, 신의 존재 같은 건 사회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이 원래 그랬던건 아니다. 철학에서 사회과학이 뭔가 다른 분야로 독립한 이후에나 성립되었다.
현대 사회과학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연구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 "중범위 이론"이라는거다. 거의 모든 사회현상에 대한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는 이론이 아니라 특정 현상에 특화된 이론을 사용한다. 사회현상이란게 따지고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그 모든 연결을 다 고려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회현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보고 세상 이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분들은 답답하게 느낄거다.
이런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얘기는 엉뚱하게 완성된 논리를 세우지 말라는거다. 인간본성에 따라 성별로 원하는 바가 어떻게 같느니 다르니 하는 주장을 강하게 하면 아무도 안처준다. 그런 주장에 반응하는 정상적인 사회과학자는 한 명도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본성서부터 시작해서 연역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논리가 별 의미없다는걸 깨닫고 주류 사회과학에서 그런 소리 안한지 오래되었다.
예를 들어, 아래보니까 가부장제적 남성부양자 모델에 대한 페미니즘의 반발을 얘기하더라. 여성들이 이 모델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도 이 모델에 의존한다고 불만이던데, 지배적 사회모형은 항상 그런 양가적 태도를 동반한다. 그리고 남성부양자 모델은 여전히 작동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델이 전사회에 걸쳐서 일관되게 작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만 그런게 아니고 어느 사회나 그렇다.
한국에서 혼인율이 낮아진 원인 중의 하나로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성의 경제적 부가 충분하지 않다고 인터넷에서 많이 얘기한다. 가부장제적 남성부양자 모델이 되기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는거다. 하지만 최선영, 장경섭(2012)의 연구를 보면 1930년대 출생 코호트 남성의 결혼 시점 직업이 무직인 경우가 21%였다. 현재보다 지금은 80대인 1930년대 출생자들이 결혼할 당시가 가부장적 남성부양자 모델이 더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새신랑의 1/5이 무직인데도 결혼을 했다. 가부장의 경제적 능력이 결혼의 전제조건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 때는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력 능력을 안따졌나? 세상에 그럴리가. 남성부양자 모델보다 생애사에서 누구나 거쳐야 하는 사회적 제도로써의 혼인의 강제력이 더 컸을 따름이다. 개인 선택의 자유가 낮았기에 가능했던 사회현상이다.
그러니 과거에는 남성부양자 모델에 기반해서 가족 경제가 작동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혼인율이 낮아졌다는 단순한 설명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회적 제도로써의 혼인의 의미가 변화하고, 결혼의 경제적 조건이 변화하고,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기회비용이 변화하고... 등등등. 혼인은 성욕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 경제적 능력으로 채워지는 식욕과 다른 물질적 욕망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 욕망에서 부터 혼인 제도나 패턴을 유추할 수 있는게 아니다.
사회과학적 이해란 이런 복잡한 관계를 알도록 노력하는거다.
(사회)과학적 사고란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어설픈 논리로 설명하려들지 않고 모르는 체로 참는 능력이기도 하다. 미시적 심리와 거시적 사회현상을 모두 포괄하는 완결적 설명은 없다. 근원이라는 환원주의적 설명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현실 세계의 검증테스트를 통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