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화국의 의외의 장점
Chen, Kung, & Ma (2020) 과거시험이여 영원하라.
박권일 선생의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과거시험 제도와 능력주의의 상관성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건 다들 아실 것.
중국 사회학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알게된 경제학 논문인데, 명청 시절에 과거(중국발음으로 keju) 시험에서 성공했던 지역이 교육을 (통한 성공을) 중시하는 문화가 남아서 현재도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성취를 보이고 있다고.
아래 그림에서 X축이 지역별로 과거시험 진사시에 합격한 숫자이고, Y축이 현재의 교육수준(평균 교육연수)이다. 보다시피 강한 정의 상관을 보인다. 이 관계는 현재의 온갖 지역별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남고,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 합격자가 아니라 지역별 대나무, 소나무 숲과 강의 거리(그러니까 종이를 얼마나 쉽게 만들 수 있냐를 측정한 것)를 도구변수로 써서 측정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가족력에 과거시험 합격자가 많을수록 교육이 사회적 성공에 중요하다는 응답이 늘고, 자녀의 교육성취에 대한 기대도 높은 경향이 있다 (Table 6).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 합격자가 많은 지역에 자선단체도 많은 경향이 있어서, 사회적자본도 높다.
그런데 과거시험 합격자가 많았던 지역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교육성취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논문의 Table 10). 부모의 소득과 자녀 소득의 탄력성을 보면, 부모 소득이 1% 높아질 때 자녀 소득이 0.14% 높아지는데, 과거시험 합격자가 1-log 높은 곳에서는 그 효과가 0.10%로 낮아진다. 교육 성취로 보면 부친의 교육 연수가 1년 높아질 때, 자녀의 교육 연수도 평균 4% 씩 높아지는데, 과거시험 합격자가 1-log 높은 곳에서는 그 효과가 0.8%로 거의 없다시피 하다.
쌈빡한 아이디어로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낸 논문으로 인용수가 폭발적이다. 최근 읽은 논문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시험으로 성공하는 문화가 있는 지역에서는 세대간 사회이동이 더 활발하다. 온 국민이 교육에 미쳐서 돌아가는 사회가 가지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교육에 집중 투자하는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는 아니다.
Ps. 다른 한 편으로 어떤 문화는 빨리 바뀌는데, 어떤 문화는 정말 오래 지속된다. 문화의 지속력은 뭘로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Pps. 한국도 지역별로 이런 경향이 있는건지? 베트남도 대표적인 유교권 국가로 과거제도가 있었는데 여기도 그런가? 일본은 과거/고시제도가 없었는데 어떻게 학력 중시의 문화, 고시 문화가 생겼나? 인도는 고시 제도가 없는데 인도계 미국인의 학력성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