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예능과 모지리 창궐의 동시성
TV 프로그램과 예능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지만, 나영석 PD가 대단하다고 느낀적이 두 번 있는데, 하나는 삼시세끼고 다른 하나는 알뜰신잡이다. 특히 후자는 삼프로라든가, 물리학 예능, 아트 예능 등 지식 예능 프로그램의 선두 주자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렇게 요즘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지식을 뽐내는 예능이 오락 프로그램의 하나로 소비되는데, 과거 최고의 지식 예능은 장학퀴즈였다. 장학퀴즈가 뭔지 못들어본 분들도 많을거다. 고등학생이 나와서 단답형 문제를 풀던 TV 프로그램이다. 기장원을 하면 교복을 만들던 선경(요즘 SK)에서 4년 장학금을 줬을거다. 고등학생이 나오던 장학퀴즈와 나름 전문가들의 수다인 알뜰신잡의 출연진 차이가 지난 30-40년 사이 한국 대중 교육의 양적 질적 향상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고교 지식 수준의 상식 풀이가 아닌, 전문가들이 나와서 물리학, 생물학, 역사학, 미학의 지식을 풀어놓고 대중들도 그걸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식예능이 대중 프로그램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식 예능을 즐길 수 있는 대중이 필요하다. 한국 대중 교육의 성공은 지식 예능 프로그램 탄생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 더불어 최근 넥슨 게임 C형 손가락 모양 삽입과 같은 모지리들이나 빠져들만한 논란도 늘었다. 무슨 이유에선가 본인들은 C형 손가락 모양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와 같은 음모론은 음모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황당한 논리다. C형 손가락 모양은 너무 자연스러운 포즈라 도처에 만연할 수 밖에 없다. 이 자연스러운 포즈에 음모론적 의미를 부여하니 사고가 엉망이 된다.
음모론은 "의도"에 기반한 설명으로, 세상만사의 원인을 제공하는 매우 단순한 논리이다. 광범위하게 퍼진 그런 음모라는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결함이다. 음모의 존재 여부를 직접 검증해야 하는데, 그걸 안하고 한 두 가지 에피소드와 같은 사건에 근거해서 심증이 있다고 믿는다. 더 큰 문제는 그 심증은 여러 반증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메갈리아 음모론도 정확히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그런 음모가 없는데, 그 음모가 만연하다고 잘못된 가정을 하는 순간, 편견에 빠져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사고방식이 망가진다. 드러난 증거에 맞춰서 판단하고 의견을 조정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더 깊은 음모가 아닌가 빠져든다.
지식 예능과 음모론 탐닉과 같은 모순된 두 현상이, 교육의 증가와 동시에 나타나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일시적으로 남혐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주장이 주목을 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발전해 왔고, 추가적 발전을 모색하는 사회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여성, 노인, 외국인의 노동시장 참여가 생존의 대안이다. 이들이 좀 더 노동시장에서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사회적 생존이 가능하다. 속도와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이렇게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번 사태와 같은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주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존재하지 않는 음모를 신봉하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는 사마귀가 되어봤자, 아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