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 표현의 한계

sovidence 2023. 12. 21. 04:53

어떤 표현은 혐오 표현이고 어떤 표현은 아닌지를 얘기할려는건 아니다. 그 원칙과 기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어디까지를 허용할지 강한 선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허용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지, 미국에서 대략 확립된 잣대가 있으니, 이 번 기회에 그 기준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하버드, MIT, 펜실베니아대 총장들이 의회로 불려가서 반유대주의 표현이 대학에서 용인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유대인을 인종청소해야 한다 (calling for the genocide of Jews)"는 선동이 대학의 행동 지침 (code of conduct)에 위배되는가라는 질문인데, 총장들의 대답은 "케바케"였다. 

 

이 때문에 의원들과 많은 국민들이 화가났고, UPenn 총장은 사임했고, 하버드 총장은 재신임을 받았지만 표절 이슈가 제기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 총장들의 케바케 답변이 미국의 이전 판례에 비추어보면 틀린 답이 아니다.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 포르노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 혐오표현도 예외가 아니다. "유대인은 싹쓸어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상황에 따라 표현의 자유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런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인지, 아니면 규제 대상인지를 정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일대일(one to one)이냐 아니며 일대다(one to many)이냐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언하는 일대다 언명은 설사 혐오 표현이라도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다. 하지만 대상을 특정하여 혐오 표현을 하는 일대일(one to one)은 규제의 대상이다. 후자는 개인의 자유와 안위를 위협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다대일 (many to one)은 왜 없냐고 질문할텐데, 화자는 항상 한 명이다. 여러 명이 똑같은 소리를 해도 글과 말은 한 명(내지 한 그룹)이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one to one과 one to many로 구분된다. 

 

한국의 예를 들면 "20대 개새끼론", "한남", "386 똥팔육" 등은 일대다 표현으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특정 개인에게 혐오표현을 쏟아부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번 넥슨 집게손 사태에서도 다수가 한 명의 여성을 지목하여 일대일 혐오표현을 쏟아내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일말의 인식이라도 있다면 동참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예전에 윤지선 박사가 한남유충이라는 논문을 썼을 때, 연구 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윤지선 박사의 그 논문도 학술지에 실리는 철학 논문인지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연구 윤리의 측면에서 그 논문은 용납할 수 없다. 연구의 대상이 된 행위자를 특정하여 거짓 정보로 해를 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대일 발화는 학문의 자유의 영역,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선 책임을 동반한다. 

 

여기서 일대일 발화라도 표현의 자유를 좀 더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공인이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공인에 대한 "평가"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죄였다. 하지만 뿌리의 노동자들은 공인이 아니다 

 

국가마다 표현의 자유로 허락하는 혐오 표현의 수위는 조금씩 다르다. 한국은 포로노 금지 등에서 보듯,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는 규제가 강한 편이다. 

 

개인 자유 보호를 위해 일대일 혐오 표현에 대한 좀 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 이 번 넥슨 사태에서 일대일 혐오 표현 행위에 가담했거나, 이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안위를 위협하는 범죄자거나 범죄자의 편이라는걸 알 필요가 있다. 한남이라는 표현에는 뚜껑이 열리지만, 페미를 은근슬쩍 스리슬쩍 하겠다는 개인이 당하는 실체적 위협에는 무감각하다면, 본인은 자유주의와 거리가 멀고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절어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는게 좋다. 

 

SNS에서 글쓸 때 이 정도 조심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Ps. 이렇게 얘기하면 이 블로그에서 아무 표현이나 쏟아내는 분들 있을텐데, 하버드, MIT, UPenn 총장이 문제된게 바로 그 지점이다. 세 학교는 공립이 아니라 사립이라 좀 더 많은 규제의 자율성이 있다. 헌법적으로는 케바케라도 반유대주의 표현을 학교 내에서 금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다. 그런데 왜 그 자율성을 행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블로그도 개인 블로그다. 존칭을 사용하고 가능한 점잖은 표현을 쓰라면 그렇게 하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