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논문의 학술장 위치
연합기사: 자기 논문 표절한 조성경 과기부 차관의 박사논문.
한국에서는 학위 논문을 하드카버 제본해서 학교에도 제출하고 지인들과 공유한다. 학위 논문을 학술연구의 최종 결과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사회학 국제 학술장에서 박사학위 논문의 위치는 unpublished manuscript 이다. 출간이 안된 초고지 그 자체가 논문 출간 성과가 아니다.
학위 논문과 관련해 많이 하는 농담 중 하나가, 교수들의 석사 논문을 찾아서 드러내겠다는거다. 그만큼 석사 논문은 질적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저도 돌이켜 생각하면 석사 논문은 흑역사다.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하는 고정 레파토리 중 하나가, 여기 들어온 사람 중에 칼 맑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의 박사 논문 찾아본 사람 있냐는거다. 아무도(는 아니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회학자들이) 사회학 founding fathers의 박사 논문을 찾아보지 않는다. 하물며 석사 논문은 듣도보도 못했을거다. 제 포인트는 그러니 석사 논문 쓰는데 하세월을 보내지 말라는거다. 석사 논문의 지위가 이렇다보니, 논문을 쓰지 않고 석사 학위를 부여하는 교육기관도 크게 늘었다.
석사논문을 더 발전시켜 박사 논문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이걸 표절이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자기 석사 논문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인용구를 다는 경우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저널 아티클로 실린 논문은 박사 논문에 반드시 인용을 표시해야 하지만, 석사 논문에 썼던 내용은 하지 않아도 되는건 아니지 않은가.
미국 사회학과에서 잘 쓴 박사 논문은 저널에 아티클로 이미 실렸거나 앞으로 실릴 것이고, 긴호흡의 박사 논문은 책으로 나올 것이다. 한국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있나? 예를 들어 2018년에 출간된 김도균 선생의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는 잘 쓴 박사논문 기반 학술도서다. 저널 아티클이나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 박사 논문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읽어볼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논문 3개를 묶어서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많은데, 잘쓴 챕터는 저널 아티클로 나오고, 미숙한 챕터는 학위 논문의 한 챕터로 그치고 만다. 남의 박사 논문 굳이 찾아서 읽어볼 필요는 거의 없다고도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그러니 박사논문이 자기의 다른 논문 표절이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공격이다. 한국은 뭔가 기준이 다르다고 항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식이면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성과가 좋아서 한국에 돌아온 한국 교수들 거의 모두가 박사 논문을 표절한 논문이 있거나, 자기 논문을 표절한 내용이 박사 논문에 있을 것이고, 한국 대학은 그 표절 논문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그 교수를 임용했을 것이다. 자기 모순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박사 논문은 무엇인가?
이건 학위 취득자가 독립적 연구자로써 유의미한 학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능력이 된다는 일종의 자격증 비슷한거다. 크리덴셜(credential)이지 논문 출간 성과에 카운트하지 않는다.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그 기술을 절차탁마하여 성과를 내는게 학위 취득 후의 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