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험의 과소, 과대 추정
기본소득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3년이었던 이 번 실험 결과의 해석에서 유의해야할 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3년 실험이 가지는 한계다. 아래 포스팅에서 쿤리님과 econphd님과의 대화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는데, 좀 더 자세히 얘기하는게 좋겠다. 기본소득을 실제로 도입하면, 사회적 약속은 당연히 이 제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실험은 3년이었지만, 실제 정책은 평생이다. 여기서 오는 격차가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 해석에서 어떤 추정치는 확대 해석해야하고 어떤 추정치는 축소 해석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항상소득론(permanent income)은 소득은 생애주기와 경기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소비는 이 변동을 스무딩해서 늘상 일정한 수준의 소득 그러니까 장기간 평균소득인 항상소득에 기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에서는 단기 소득보다 직업이 계층을 더 잘 반영한다고 주장하는데 비슷한 맥락의 얘기다. 직업이 연소득보다 항상소득의 더 정확한 지표라는 주장이다. 제가 사회학의 이 주장을 검증하는 논문도 썼었다 (제 주장을 검증하는 논문도 나왔고).
이 번 실험이 단기간이라는건 누구나 안다. 단기간의 기본소득 공급 후 1천불의 추가 소득은 없어진다. 그러므로 항상소득론의 가설에 따른다면, 이 번 실험에서 노동공급의 감소, 소비의 증가는 과소 추정되고, 저축과 교육의 증가는 과대 추정된다. 평생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이 번 실험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노동공급은 더 크게 줄어들 것이고, 소비는 더 크게 증가할 것이고, 저축은 덜 증가할 것이다
교육 증가가 과대 추정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기본소득 제공은 교육 증가의 소득 탄력성을 낮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고졸자와 대졸자의 격차가 커질 때는 대학 진학자가 증가하고, 격차가 작아지면 대학 진학이 감소했다. 그러니 기본소득 제공은 교육 투자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3년 간 일시적 소득제공에도 교육투자의 증가가 크지 않았다면,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교육 투자는 상당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번 실험은 교육투자의 노동시장 보상 탄력성을 그대로 두고 (왜냐하면 추가소득을 받은 1천명 외에 다른 사람들의 소득은 그대로니까), 추가 소득이 있을 때 교육에 더 투자하는지를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달리 평생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교육투자의 노동시장 보상 탄력성이 낮아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번 실험에서 교육투자 증가 효과가 크지 않다면 기본소득의 교육증가 효과는 극히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AI의 중요성이 커지는 미래에 교육의 중요성이 더 증가할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번 실험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번 실험에서 드러난 노동공급의 감소가 적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함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번 실험에서 추가 소득 1불 제공에 노동소득이 20센트 감소했다. 노동공급도 그 만큼 감소했다. 일시적 소득 제공에도 노동공급이 저 정도 탄력성으로 줄어들면, 기본소득이 평생 보장될 때는 노동공급이 훨씬 더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 기간 동안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후 미국에서 노동공급 감소(와 이어진 인플레이션)를 생각해보시라. 이 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전체 시장에 가해진다. 이런 충격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조만간 3년간의 추가 소득 제공이 저축과 자산 형성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도 나올텐데, 이 번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저축과 자산에 끼친 영향은 과대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저축과 이를 통한 자산형성의 유인이 감소한다. 항상소득의 관점에서 이 번 실험은 일시적 현금 유입이기 때문에 저축과 자산형성의 유인이 크다. 그래야 현재 높아진 추가 소득을 미래에 스무딩해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기본소득은 이 유인을 제거한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한 복지 국가의 높은 자산불평등과 한국의 낮은 자산불평등을 생각해 보시라. 한국에서 자산불평등이 낮은 이유는 주택의 중요성이 크고, 전세 제도가 있어서 하위계층도 자산을 형성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복지국가는 소비의 안전망으로써의 자산 형성이 불필요하다. 그 결과 복지국가의 자산불평등은 상대적으로 크다. 평생 기본소득 제공은 자산불평등을 줄이기보다는 높일 유인이 큰 정책이다. 그래서 이 번 실험 결과를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정치적 허들이 매우 높은 정책이다. 한 번 도입하면 되돌리는데 드는 비용도 매우 크다. 그런데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이 정책을 추진할 동력은 빈약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