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를 왜 받아들이는가?
총칼로, 내란으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는데?
답은 모른다.
2010년에 포스팅했던건데, 사회과학의 최대 난제가 무엇인지 당대의 사회과학자 13명이 리스트한 적이 있다. Ann Swidler라고 문화가 무엇인지 새로운 정의(culture as a toolkit)를 제시했던 사회학자가 꼽았던 난제는 <안정적 제도의 생성과 유지>였다. 어떻게 하면 한 사회에서 제도가 생성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서 제도(institution)란 법적 제도 만이 아니라 규범과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선거제도란 선거를 하는 규칙과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회전반의 태도를 포괄한다. 많은 신생 국가에서 선거를 해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거 제도와 민주주의의 확립은 결과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결과를 수용하는 문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범 후 선거와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법을 만들고, 선거를 실시하기는 쉽지만, 그에 맞춰서 대다수의 정치인과 국민이 따르게 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서 제도가 한 사회에 생성되고 유지되는지, 어떻게 하면 제도를 다른 사회에 이식할 수 있는지 그 규칙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많은 분들이 느끼듯 윤석열의 쿠데타와 이어진 내란 세력의 준동은 한국에 상당히 장기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다. 저는 두 가지 점에서 윤석열의 내란과 그 동조 세력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 제도에 큰 충격을 가했고, 앞으로 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전통, 제도의 심리적 수용성을 뒤흔들었다. 다른 하나는 법의 빈공간이 있을 때 법의 취지에 따라 행동하는 제도의 문화적 측면을 뒤흔들었다.
어떤 제도도 법률적으로 문서상으로 완벽하게 성문화되는 경우는 없다. 법의 취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문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제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헌법재판관 임명과정, 윤석열의 체포와 압수수색 과정은 모두 논란이 될 수 없는 과정을 논란으로 만들었다. 윤석열 내란과 그 동조 세력의 행동을 박근혜 탄핵 당시의 플레이어들의 행동과 비교해보면 박근혜의 탄핵은 헌법이 정한 절차와 취지를 따른 매우 질서정연한 과정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어떤 것도 논란이 되지 않았다. 법률과 문화를 포괄하는 제도로써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가까운 미래에 없어지지 않을 보수 정당 정치인의 다수가 내란 세력을 신속히 차단하기를 거부했고, 상당수의 보수 정당 지도자들이 실질적으로 내란에 동조했고, 권력의 궁극적 원천인 경찰, 군부의 상당수가 내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 한국 사회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있는 행정 관료들이 법의 취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했다. 정치적 불안정에 행정적 안정을 부여하던 관료제에 균열을 가했다. 이런 대치를 통해 국민의 1/3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력의 사용을 지지하는걸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그의 관저 앞에 모인 무리들은 또 다른 국가 기관인 경호처와 합세하여 국가에서 발행한 체포영장의 집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 시점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은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리적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수용하지 말자는 선동에 가깝다. 소속 정당과 지지 정당에 따라 정책적 이견을 가지는걸 넘어서, 제도 수용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어떻게 될까?
한국 정도로 발전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익숙한 국민이 있는 국가에서 전면적 반동으로 나아간 사례는 없다. 한국도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윤석열 내란의 청산 과정은 상당히 지난할 것이다. 일제와 군부 독재는 그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청산이 어려웠다. 일제 청산과 프랑스 비시 정부의 청산이 다른 가장 큰 이유가 기간이다. 기간이 길면 청산 세력이 광범위하고, 이들 세력이 없으면 국가 역량도 잠식된다. 윤석열의 내란은 짧은 기간이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세력과 집단이 동조하고 참여했기에, 청산이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다.
내란 세력의 청산과 민주주의 제도 수용의 규범과 문화를 발전시켜야할 이 중의 어려운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가 더 단단한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