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학

천관율의 '오늘의 기원'

sovidence 2026. 4. 20. 06:30

한국의 현재사를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밝히는 시리즈 글을 <오늘의 기원>이라는 제목 하에 천관율 기자가 쓰고 있다. <시사In>에서 유료 독자만 볼 수 있는 기획이다. 연재 첫회의 포부에 따르면 천관율 기자는 한국이 21세기에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지금까지의 익숙한 설명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겠다는거다.

 

시간이 지나도 공개되는 글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얼마 없겠지만, 도서관에서 인쇄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시리즈가 끝나면 책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연재 시작부터 흥미롭게 읽었다. 지금까지 4회를 했는데, 1968-85년이 중핵 세대라며 주류가 바뀌었다는 천기자의 이전 주장을 다시 하며, 이 세대가 한국의 경제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비춘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올라섰는데,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두 번째 기적이 왔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발전했고 불평등은 늘지 않았다고 말하고. 최근 연재에서는 이 변화를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혁신주의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발전과 불평등 변화를 꾸준히 얘기했던 바라 팩트 측면에서 새로울 것은 없다. 천기자가 인용한 KDI 2024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상위불평등이 아니라 하위불평등에 의해서 좌우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거 논문에서 처음 주장한 사람이 아마 제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여러 논의가 전개되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질문은 이거다. 한국이 왜 발전했는가?

 

이 질문은 그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2023년도에 올렸던 포스팅 "업데이트된 느낌적느낌 한국 망국론"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했던 바다. 여기에 대해서 이지원 선생이 답글로 김경미 박사, 권형기 교수의 연구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이지원 선생의 소개 덕분에 새로 알게된 건데, 아마 권형기 교수의 저서인 <Changes by Competition>이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깊이있는 연구가 아닌가 싶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천기자의 주장도 권형기 교수의 주장과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권형기 교수의 핵심 주장은 한국이 21세기에도 지속적 발전을 한 이유는 박정희 시대의 노선이었던 국가 주도의 발전, 학술적으로 말해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서,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모델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발전주의 국가 모델이 다른 형태로 지속되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좀 더 말하자면, 한국은 정부 부처의 엘리트 간에 경쟁이 있고, 상황에 따라 누가 이 경쟁에서 승리해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지가 유연하게 바뀌었다는거다. 박정희 초기 혁명 세력의 수출대체산업화와 화폐개혁이 실패하고 경제기획원이 말빨이 안먹히는데, 상공부 관료 중심의 수출 위주 산업화가 성공하고, 다시 중화학 공업화가 상공부 위주로 성공하였다. 이 때 기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달리 중화학 공업화에 저항했었다. 

 

전두환 이후 1980년대부터 벌써 관료들에게서 요소 투입 위주의 성공이 한계에 봉착하고 생산성 위주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기업이 이에 발맞춰서 바꾼게 아니라는게 당시의 플레이어를 인터뷰한 권형기 교수의 주장이다. 당시 한국에서 중소기업의 부품, 소재 산업은 발전이 안되었다. 재벌은 문어발식 확장을 통한 대마불사를 원했고, 이게 경제위기의 한 원인이다. 

 

경제위기 이후에도 김우중을 비롯한 재벌은 과거의 방식(= 문어발식 확산)을 답습하고자 했으나, 국가 주도로 재벌을 변화시켜 특정 분야에 집중하도록 하고, 부품/소재 산업을 발전시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생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는거다. 이 때 뜬 부서는 정통부, 과기부 등이다. 혁신을 주도할 부서가 바뀌었다. <Changes by Competition>에서 말하는 경쟁은 정부 부서 엘리트 간의 경쟁이다. 재벌 간 경쟁이 아니고. 그 결과 한국은 요소투입경제에서 혁신경제로 바뀌었다는 것. 지금은 한국에서 부품과 소재가 오히려 강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도 모두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처라는 말을 도입한게 아이러니하게도 IMF의 원흉으로 욕먹었던 강경식 장관.

 

권형기 교수는 이 전반의 변화를 자본주의의 다양성 (variety of capitalism)의 하나인 statist coordination 모델로 범주지운다. 한국 경제 발전 모델은 국가 조정 모델이고, 발전주의 국가의 21세기형 변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이라는 것이다. 

 

김경미 박사 논문. 권형기 교수 강연

 

제가 경제 발전을 잘 아는건 아니라 확실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 설명은 한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R&D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소수였던 국가에서 전세계 1위인 국가로, 그래서 요소투입이 아니라 혁신이 중요한 기술 선진국으로, 경제발전 이후 불평등이 줄어든 과정과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다. 변화 과정에서 누가 주도하고 각 플레이어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와도 대략 일치하고. 

 

왜 이 설명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지 않았는지가 의문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