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학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최대 난관

sovidence 2018. 6. 19. 15:17

이강국 칼럼: 소득주도성장을 업그레이드 하라

한겨레 기사: 소득주도성장, 재정이 열쇠다


다 맞는 소리.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한꺼번에 시행되기 굉장히 어렵다는 것. 


블로그 9년 넘게 하다보니 어차피 했던 얘기 또 하는 것. 이 번에도 했던 얘기 또 할텐데, 그래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론적 논의를 현실에 적용하면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  


자본주의는 하나의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각 사회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자본주의 발전에 한가지 제도가 장땡이 아니라 미국식 자유경쟁, 스웨덴식 복지, 독일식 중도(?), 일본식 집단주의, 모두 나름 잘 작동하더라는게 Variety of Capitalism (VoC).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국가 내 여러 제도는 친화성이 달라서, 독일식 노동시장 제도에서는, 어릴 때 부터 자기 길을 정해주는 교육제도와, 강력한 실업보장 복지가 친화성이 있고, 미국식 자유경쟁 제도에서는, 대학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경쟁하는 교육제도와, 노동유연성이 친화성이 있다는게 제도주의적 입장인 VoC의 내용.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은 지금까지 보수가 내세웠던 "성장(하면 결국 모두 이익)"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국가 경제 체제임.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한 두 가지 제도를 바꾸면 이 새로운 제도는 기존 제도와 삐걱거릴 수 밖에 없음. 국가의 모든 제도는 서로 친화성을 가지고 상호보완하는 기능을 일정정도 가지고 있는데,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도를 도입하면 기존 제도와 마찰을 빚고, 제도적 친화성이 무너지면서 혼돈이 초래됨. 


다른 제도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재구조화될 때까지 일정 정도의 마찰은 불가피함. 다른 제도까지 모두 재구조화되면 그 이후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메인이 되어서 과거로 돌아가는게 어려워짐. 이강국 교수의 칼럼, 한겨레 기사 모두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을 위해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라는 것. 다 맞는 소리이긴 한데, 이거 할려면 시간이 걸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버". 


제도를 바꿀 때 존버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이론이 칼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 존버에 방해되는 세력을 억누르고 장기간 버티면 결국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는게 맑스의 이론. 이게 변형되면서 스탈린도 나오고, 문화혁명도 나오고, 김일성 일가의 독재도 나오지만, 맑스 이론의 함의가 틀린 것도 아님. 문화혁명 없었으면 지금의 중국식 발전도 없었을 것. 


박정희의 18년, 전두환/노태우의 12년 총합 30년 존버로 한국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그들의 판으로 만들었음.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뭐 스무스하게 진행된 것 같음? 생지랄을 하면서 관철한 것임. 아래 얘기했던 삼당합당 이후 30년까지 계산하면, 해방 후 80년 중 장장 60년을 박정희가 만든 시스템으로 한국 사회를 구성한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군부독재 30년이 한국 사회를 만든 것. 






진보에게 돌맞을 소리하자면, 박정희가 시작한 이 시스템이 극악한 것은 아님. 나름 작동하는면이 있음. 그러니 60년 동안 유지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여기서 머물수는 없다는게 진보의 생각. 


소득주도성장이라는게 이렇게 60년 동안 만든 경제체제를 바꾸기 위한 시작임. 기존의 많은 제도와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음. 


예를 들어 소득주도성장은 자영업자와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음. 70~75%의 경제활동인구가 노동자인데, 이들의 소득이 오르면 자영업자의 소득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대상은 고용주가 아니라 피고용자, 노동자임. 한국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30%에서 20%대 초반으로 낮아졌는데, 타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앞으로 7~8%포인트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큼. 복지국가는 모두 자영업 비율이 10% 초반대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할 때 자영업자의 최소 1/3, 최대 1/2이 아마 버티기 힘들 것.   


이 갈등을 견디고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는 제도를 앞으로 20~30년간 시행하면 한국 사회를 완전히 바뀌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고 기존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무너지면 결국 기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 






한 사회가 근본적으로 체제를 바꿀려면 한 세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관되게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 역사를 보면서 대충 따져본적이 있는데, 한 30년 걸림. 진보가 앞으로 30년간 정책적 주도권을 쥐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 그 기간 동안 정책적 mismatch를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함. 


지금의 소득주도성장 노선은 분배와 성장을 모두 포괄하는 진보의 패러다임임. 이 패러다임이 실패하면 진보는 보수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는 것. 진보라고 해봤자 보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


작년 최저임금 논란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블로그를 좀 과격하게 쓰는건 그 때문임.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성공을 바랄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나오는 질문은 그럼 문재인 독재하자는 얘기인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군부 독재와 비슷하게 진보 독재하자는 주장인가? 문빠가 문화혁명하자는 소린가 (노무현 때 이런 얘기 많았다는거 기억하시는지)? 독재 없이는 이러한 체제 전환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인가? 


사실 독재 없이 체제 전환에 성공하기 어려움. 그런데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조건이 있음. 바로 전쟁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2차 대전 이후 모든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복지국가로 전환된 것이 그 예임. 그 바탕에는 국뽕이 있음. 전쟁보다 국뽕 함양에 좋은 사건이 없음. Thomas Piketty의 주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전쟁으로 인한 자산의 파괴와 복지 도입이 20세기 매우 예외적인 20세기 복지국가 등장의 배경이라는 것.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할 함의는 현재 북한과의 갈등은 위험 요소가 아니라 기회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소득주도성장의 몇 가지 조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더라도 대북문제로 국민적 집단 목표가 형성되면 이 부작용을 넘어설 수 있음. 


복지국가가 국민국가와 함께 발전했다는 것은 큰 함의가 있음. 국뽕없이 평화적 민주주의적 체제 전환 없음. 국뽕을 보수의 무기가 아니라 진보의 무기로 전환해야 함.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러다보면 소수자의 인권에 무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는 함. 


어쨌든 박정희, 전두환에게 3S와 레드컴플렉스가 있었다면 지금의 진보에게는 쇼비니스트적 민족화합과 대북 국뽕이 있음. 이 번 기회를 놓치면 보수의 자장을 벗어나 진보의 새로운 경제 체제를 한국 사회에 도입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는 아마도 진보에게 상당 기간 오지 않을 것임. 





정리하면, 진보에게 한국의 경제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지금보다 더 나은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음.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면 기존 제도와 마찰이 불가피함. 보완적 제도의 도입을 통해 가능한 빨리 극복해야 할 것임. 하지만 일정 기간 그 마찰의 부작용을 버티는 존버가 필요함. 여기서 실패하면 한국의 진보는 보수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이 되는 것. 





Ps. 

쓰다보니 너무 선동적인 것 같은데, 원래 거대담론은 좀 선동적인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