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선비"의 사회학
아니다 다를까, 양비론자들이 나타난다. 넥슨 사태 등에서 나타난 일련의 행태가 메갈 같은 반사회적 여성운동의 반작용이고, 따라서 자기는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메갈이 너무 나간 부분이 있기에 일부 여성이 당하는 것이 한편으로 고소하기까지 하다. 피해를 당한 여성의 편에 서서 한 쪽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조장한다는거다.
이렇게 한 쪽 편을 들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서 여러 격언들이 있다. 황희 정승에 대한 칭찬처럼 중립적 자세의 미덕을 찬양하기도 하고,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예약되어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연탄불 함부로 차지말라는 싯구는 중립이 아닌 열정에 대한 찬양이다. 씹선비라는 (블로그 포스팅이 아니면 쓰지 않을) 단어에 어떤 면에서 중립적 자세에 대한 비난의 의미도 들어 있다.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하는게 맞는걸까? 객관적이면서도 열정적이고, 중립적이지만 지옥의 뜨거운 자리에 가고 싶지는 않은게 사람들의 일반적 희망사항 아니겠는가.
저는 이를 구분하는 잣대가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본다.
세상만사를 일화의 연속으로만 보면,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갈등은 회피의 요소지, 돌파의 요소가 아닌게 되어버린다. 현재의 남녀갈등에서 남성의 억울한 측면이나 일화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어떤 현상이 우연적 요소로 일어나는 특수한 일화인지, 구조적 현상의 반복으로 드러난 한 전형인가라는 판단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개인을 볼 때, 전자인지 후자인지에 따라 가능한 객관적이고 중립적 태도를 취할 지, 한 쪽 편에 써서 지옥의 뜨거운 자리를 피할지를 정할 수 있다.
갈등에 대한 판단은 이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한국의 남녀갈등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으로 생긴 것인지, 구조적 차별은 없는 제로섬 밥그릇 싸움, 내지는 오히려 남성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하려다 역풍을 맞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건 많은 부분에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판단의 영역이다.
제가 실증주의적 통계 방법론에 입각해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어떤 면에서 가장 중립적이고 무향무취의 입장을 가지기 쉬운 접근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몇 가지 이슈에 대해서 어떤 분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명확한 입장을 가지는 이유다. 그래서 명백한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 현상을 별 근거도 없이 중립적으로 대하며 양비론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지적으로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약된 이유는, 중립이라는 태도로 실제로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존속시키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차별에 대한 판단을 못하는 지적 게으름과, 이로 인해 실제로는 구조적 차별을 존속시키는 사악함의 이중 오류를 범한다. 게으름은 성경에서 규정하는 7대 죄악 중 하나다. 게으름으로 인하여 구조적 차별에 대한 의분을 가지지 못했으니 이 또한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로 차별의 존속에 기여했으니, 탐욕에 종사했다고 할 수 있다. 가히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를 차지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 중립적 태도나 훈장질이 씹선비인지 아니면 미덕인지는,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판단하면 된다. 자신의 태도나 입장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짜증나고 불쾌하지만 일화로 넘겨야할 사안인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야할 사안인지는 구조적 문제와의 관련성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갈등을 잘 해결한다는 것은, 구조적 불평등을 기득권층의 지나친 저항없이 해소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덮어서 구조적 불평등을 지속시키는게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는게 좋은지는 입장이 갈릴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큰 이슈지만.
Ps. 그렇다고 구조적 문제가 항상 명확한 답이 있다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 구조적 문제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거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연구 주제나 입장을 제한하려는 일부 움직임에 대해서 매우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Pps. 그러면 구조적 문제, 구조적 차별에 대해 어떻게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가? 일단 사회학 대학원 입학 원서를 찾아보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