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불평등

한국이 경제적으로 보수화되는 이유 중 하나: 하위 불평등

sovidence 2021. 9. 23. 02:48

한국 불평등의 특이점 중 하나가 상위 50%에서의 불평등 보다는 하위 50%의 불평등이 더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러 번 얘기한 사실. 아래 그림은 요기서 포스팅했던 것. 

 

그런데 한국의 또 다른 변화 중 하나가 재분배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감소한다는거다. 아래 그래프는 KGSS의 일부 항목이다. 각 기술에 대해서 동의하는 응답자의 비율. 보다시피 불평등하다거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 정부가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줄었다.

 

이 항목들 뿐만 아니다. KGSS의 복지 관련 항목의 통시적 변화를 모두 체크해 봤는데 전반적인 복지 정책에 대한 지지가 감소 추세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두 경향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다. Lupu & Pontusson의 2011년 논문에 따르면 상층에서의 불평등이 클 때 국가는 재분배에 사회정책에 더 신경을 쓰고, 하위 불평등이 클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중산층과 하층의 격차가 벌어지면, 중산층이 재분배를 오히려 덜 지지한다. 재분배해봤자 자신들에게 떨어질 몫이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중산층과 하층의 격차가 벌어지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오히려 올라갔다고 느낀다.  

 

작년에 출간된 Condon & Wichowsky의 책에 따르면 똑같은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고실험으로 상층과 자신을 비교하면 social spending을 더 지지하고, 상상만으로도 하층과 자신을 비교하면 재분배와 사회정책을 덜 지지하게 바뀐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중산층과 하층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상층과 중산층의 격차를 상대적으로 별로 벌어지지 않았다. 중산층이 복지를 덜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보수화될 객관적 조건이 형성되어 왔다. 

 

청년층에서 보수화가 더 진행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리라. 청년층이 경제적 처지가 더 궁핍해져서 화가 난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부모 세대가 중산층이라 실질 생활수준에서) 최하층으로 떨어지지 않은 대부분의 청년층과 궁핍화가 진행된 노인을 중심으로 한 빈곤층의 격차가 더 벌어졌기 때문에 보수화된 것이다. 일베가 약자를 찾아서 공격하고 조롱하는게 우연이 아니다. 

 

복지의 실질적 혜택을 받는 소득하층에게 돌아가는 파이를 늘리고 재분배를 촉진하기 위해, 하층의 처지가 얼마나 안좋은지 보여주는게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재분배를 하면 마치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하층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가게끔 정책을 짜야만 한다. 

 

보수가 괜히 선별적 복지 강조하는게 아니다. 그렇게 강조해야 복지를 안할 수 있다. 또한 보수 신문들이 괜히 정용진의 일상을 시시콜콜 보도하는게 아니다. 그렇게 해야 최상층과 중산층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서, 중산층이 복지보다는 상층에 심리적으로 동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