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개천용 학파 vs 대통영 학파?

sovidence 2021. 11. 26. 02:47

김종영 교수 칼럼: [열린세상] ‘개천용’ 학파 vs ‘대통영’ 학파/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예정) 저자

 

입시 기회균등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분들을 '개천용'학파로, 지방대를 키워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원하는 분들을 ‘대통영(대학통합네트워크를 위해 영혼을 끌어모은 사람)' 학파로 명명했다. 

 

"SKY 또는 인서울 대학의 독점을 유지한 채 그 좁은 자리에 계층이 낮은 학생들이 더 선발되거나 이들의 계층 이동을 돕는 정책을 제시하는 학파가 ‘개천용’(개천에서 용 나기) 학파다. ‘개천용지수’를 개발한 주병기 교수는 엘리트 대학에 농어촌·중소도시 학생들을 위한 ‘지역균형선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창환 교수는 엘리트 대학 입시에서 공정한 순서는 학생부종합전형, 정시전형, 논술전형이라고 밝혔다. ... 정의의 철학자들은 ‘개천용’ 학파가 개혁을 가장한 채 사악한 교육체제를 영속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비판한다."

 

개천용 학파의 일원으로 제가 호출되었는데, 이건 그냥 오독이다. 

 

이 블로그 꾸준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의 지론이 "기회균등 기획"의 한계다. 김종영 교수가 문제삼은 그 논문도 입시제도 아무리 바꿔봤자 기회균등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주요 주장이다. 어떤 입시제도가 하위계층에 눈꼽만큼 유리한지 보여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다. 정책적으로 기회균등보다 결과평등에 초점을 맞추라는게 모든 논문과 그 동안 썼던 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개혁을 가장한 채 사악한 교육체제를 영속시키는 데 기여"하는 학파로 누군가를 지칭하려면 적어도 주장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주장의 내용도 모르고 험한 말로 비판만 하면 어쩌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기회균등이나 SKY 독점 권력 타파가 아니라 지방균형발전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획으로 뭔가 질적으로 다른 정의로운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상상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한국 사회의 변화를 회고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SKY의 독점이 과거보다 강화되었나? 포항공대(87년 첫 신입생), 카이스트(대학원 밖에 없다가 86년 첫 학부생 선발) 등 이공계 명문대가 생기고, 성균관대나 한양대, 가끔 경희대나 중앙대가 SKY를 앞서는 결과도 나오고 있지 않나? 입시 전형이 다양화되면서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던 시절에 비해 각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선별성(selectivity)이 과거보다 적어도 집중화 완화라는 측면에서 평등화되지 않았나? 통계적으로 각 대학 진학자 수능시험의 분산이 과거보다 커졌을 것 같은데 말이다. 교수 임용에서도 서울대 출신 집중이 줄어들고, 여러 상위권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과거보다 상위권 대학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SKY가 아니라, 상위 10개 대학 정도로 경쟁이 확대되었다. 

 

그래서 정의로워졌나?

 

SKY에서 서울 소재 10개 대학으로 경쟁이 확대되는건 "개혁을 가장한 채 사악한 교육체제를 영속"시키는 것인데, 지방 국공립대 10개를 명문대로 만들어 경쟁을 확대하는건 왜 "개혁을 가장한 채 사악한 교육체제를 영속"시키는 것이 아닌가? 

 

서울대가 10개가 되면, 이 10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 체제를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서울대 정원이 약 3천명인데, 10개면 3만명이다. 다음 정부 정책이 한참 실현될 2025년에 대학에 입학할 2007년생의 총출생아수가 약 50만명이다. 열 개 서울대에 진학하는 인원은 학력 상위 6%다. 상위 6%가 "서울대"를 나오면 정의로운 사회인가? 서울에 있는 기존 명문대까지 합치면, 한 10% 정도가 명문대 출신이 된다. 나머지 90%는 어쩌라는건가?

 

아마,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대 육성이라 차원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의대가 인기를 끌면서 지방의대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지방의대가 서울대 이공계 전공보다 경쟁률이 더 높다. 그래서 의대는 유독 정의로워졌나? 의대는 지방대의 위상이 높아져도 중상층의 이익강화로 귀결되지만, 다른 전공은 아닌가? 그렇게 예측하는 근거는 뭔가? 과거에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명문대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 때는 "사악한 교육체제"가 아니었나? 그 때 서울대의 위상이 지금보다 낮았나? 

 

굳이 예측해 본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중상층의 자기 이익 챙기기 프로젝트로 변질될 것이다. 명문대 진학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최상층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원래 풍부하고, 해외유학 등 다른 출구를 모색하는데 반해, 중상층은 수시확대의 혜택도 못받는 등 자기 자리가 위협받으니, 자신들의 기회를 확충하기 위해서 생각해낼 수 있는 기획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상위 1%가 아닌 상위 10%의 이익챙기기 프로젝트로 변화할 것이다. 

 

미국에서 리차드 리브스가 쓴 Opportunity Hoarding이라는 책이 있다 (요기서 소개).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10%가 어떻게 자기 이익 챙기기를 하는지 비판한 책이다. 한국의 상위 10%라고 다르지 않다. 상위 10%는 상위 1%와 자신을 차별화하며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도모한다. 다만 미국과 한국의 처한 상황이 다르니 대응이 다를 뿐이다. 이게 김종영 교수가 언급한 논문에서 제가 말한 "적응의 법칙"이다. 대학입시 제도 변화에 따른 상위계층 적응의 법칙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갑자기 멈출 이유가 뭔가? 

 

지역 균형 발전의 측면에서, 수도권 집중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대 육성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 기회균등 정책을 넘어선 뭔가 대단히 정의로운 일로 착각하지는 마시라. 지방대 10개 육성도 기회균등 기획의 일부이다. 서울대에서 SKY로, SKY에서 서울 소재 10개 명문대로, 서울소재 명문대에서 지방포함 명문대로, 명문대의 범위만 바꾸는 마이크로 칼리브레이션이다. 이런 걸로 세상 좋아지는 정도가, 적어도 평등을 촉진하는 측면에서, 미미하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다. 

 

저의 지론을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기회균등 기획은 (법적 명시적 차별을 시정하는 것 외에) 지금까지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 지방대 육성은 지방발전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뭔가 다른 기회균등이나 결과 평등을 가져오지 못한다. 기회균등 프로젝트보다는 결과의 불평등을 축소시키는 기획이 훨씬 더 쉽고, 타 국가의 사례를 봤을 때 성공적이었다.  

 

 

 

Ps. 그렇다고 기회균등 기획 모두 폐기하라는 얘기 아니다. 정책의 중심은 결과평등에 맞추어야 한다는거지. 

 

Pps. 제가 관련이 있다면, '개천용'학파가 아니라, 충남 계룡에 기반한 '계룡"학파 아닐까 싶다. 모 교수님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계룡대가 짱이라 서울대가 필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