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또는 실력주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Meritocracy는 마이클 영이라는 영국 사회학자이자 소설가가 처음 쓴 말이다. The Rise of the Meritocracy라는 소설에서 쓴 용어.
그런데 마이클 영은 이 용어를 실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공정한 사회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가 되는지를 비꼬기 위해서 썼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지적 능력, 교육 성취, 기타 개인의 성취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가 어떻게 계급 재생산을 영속화시키고 사회의 통합을 망치는지 비꼬기 위해서 공적, 장점, 우수성을 뜻하는 merit과 그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cracy를 합쳐서 meritocracy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많은 사회에서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성취를 이루는 훌륭한 사회를 칭하는 말로 둔갑하였다. 능력주의 사회가 이상향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British Journal of Sociology에 실린 논문.
며칠 전 영국사회학지에 재미있는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사회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회학 연구는 부모 배경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끼치는데, 교육은 한 매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교육 외에도 부모와 자녀의 사회적 성취를 연결시키는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연구에서 교육은 최종 학력이 무엇인가로 측정하고, 추가로 몇 가지 교육 변수를 통제한다.
그런데 설리반등 일군의 영국 사회학자들이 5세, 10세, 16세의 지적 능력 점수를 비롯하여, 출신 중고교의 특성, 그 때의 성적, 대입학력고사 성적, 영어/수학 능력, 학위 타입 등의 매우 광범위한 지적 능력과 교육 성취에 대한 변수를 통제했더니, 대기업 매니져나 변호사 의사 등의 상층 전문가가 될 확률에서 부모의 계급이나 소득 같은 가족 배경이 끼치는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가족 배경의 독립적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연구는 처음 봤다. 이 결과는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교육과 지적 수준으로 온전히 설명이 되더라는 것.
문제는 이렇게 지적 능력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급이 자기 재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SKY로 대표되는 엘리트 대학 입학생 중 강남 출신이 늘어나는 것은 이들이 남다른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부모들의 희생으로 더 많은 공부를 했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성취는 사회적 혜택이 아니라 자신의 노오력의 결과로 본다. 이 사회에서 "박애"에 기반한 정책은 남기 어렵게 된다.
요즘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Richard Reeves의 Dream Hoarders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상위 5~10%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수많은 투자를 하며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공정"이라는 말도 meritocracy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공정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과정 상의 공정이 모든 것도 아니다. 인위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가져오는 조치를 추가로 취하지 않는 공정은 한 사회의 계급생산을 영속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