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라는 지옥

교육 2017. 10. 23. 12:28

능력주의 또는 실력주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Meritocracy는 마이클 영이라는 영국 사회학자이자 소설가가 처음 쓴 말이다. The Rise of the Meritocracy라는 소설에서 쓴 용어. 


그런데 마이클 영은 이 용어를 실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공정한 사회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가 되는지를 비꼬기 위해서 썼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지적 능력, 교육 성취, 기타 개인의 성취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가 어떻게 계급 재생산을 영속화시키고 사회의 통합을 망치는지 비꼬기 위해서 공적, 장점, 우수성을 뜻하는 merit과 그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cracy를 합쳐서 meritocracy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많은 사회에서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성취를 이루는 훌륭한 사회를 칭하는 말로 둔갑하였다. 능력주의 사회가 이상향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British Journal of Sociology에 실린 논문


며칠 전 영국사회학지에 재미있는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사회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회학 연구는 부모 배경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끼치는데, 교육은 한 매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교육 외에도 부모와 자녀의 사회적 성취를 연결시키는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연구에서 교육은 최종 학력이 무엇인가로 측정하고, 추가로 몇 가지 교육 변수를 통제한다. 


그런데 설리반등 일군의 영국 사회학자들이 5세, 10세, 16세의 지적 능력 점수를 비롯하여, 출신 중고교의 특성, 그 때의 성적, 대입학력고사 성적, 영어/수학 능력, 학위 타입 등의 매우 광범위한 지적 능력과 교육 성취에 대한 변수를 통제했더니, 대기업 매니져나 변호사 의사 등의 상층 전문가가 될 확률에서 부모의 계급이나 소득 같은 가족 배경이 끼치는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가족 배경의 독립적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연구는 처음 봤다. 이 결과는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교육과 지적 수준으로 온전히 설명이 되더라는 것. 




문제는 이렇게 지적 능력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급이 자기 재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SKY로 대표되는 엘리트 대학 입학생 중 강남 출신이 늘어나는 것은 이들이 남다른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부모들의 희생으로 더 많은 공부를 했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성취는 사회적 혜택이 아니라 자신의 노오력의 결과로 본다. 이 사회에서 "박애"에 기반한 정책은 남기 어렵게 된다.  


요즘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Richard Reeves의 Dream Hoarders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상위 5~10%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수많은 투자를 하며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공정"이라는 말도 meritocracy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공정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과정 상의 공정이 모든 것도 아니다. 인위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가져오는 조치를 추가로 취하지 않는 공정은 한 사회의 계급생산을 영속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Posted by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기린아 2017.10.23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수능점수에 대한 연구에서도 지적 능력과 함께 절대 공부시간, 그리고 부모의 '격려와 관심'같은 이슈를 통제하고 나면 부모의 소득과 과외비 같은 이슈들이 사라지는 마법(...)이 벌어지는 연구를 본적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 바이커 2017.10.24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 연구 생각납니다. over-control 문제가 있었던 연구로 기억합니다.

  2. 아이누린 2017.10.23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저 연구를 역으로 생각하면, 가족 배경이 중요한 교육변수가 사회적 성공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성립하지 않나요?

    • 바이커 2017.10.24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능력주의 비판의 핵심이 교육과 지적능력도 결국은 세습된다는 것이니까요.

  3. isaacinseoul 2017.10.24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포스팅이시네요. 반갑습니다. 능력주의에 대해 올리신 말씀도 공감합니다.

  4. 중백 2017.10.24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학적 문제의식이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계급재생산 (혹은 제한된 계급의 상향이동) 이 개인과 사회에 주는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해봅니다.

    즉 계급재생산이 가지는 문제가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급의 제한된 상향이동의 정도가 그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정도가 되는지는 다소 생각이 다릅니다. 계급의 이동, 특히 중산층의 중상, 혹은 상류층으로 상승하는 현상, 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정책을 펼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 느낌에 계급재생산과 관련된 요인들은 개인적 요인, 유전적 요인, 문화적 차이, 자원의 집중 투자 등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기 때문에 정책으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 공정성을 도입하려는 노력은 큰 관점에서 보면 실패해 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자원의 낭비만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심리적 박탈감만 더욱 커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사회의 경제적 소외계층이 어느 정도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포커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계층을 위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을 하는데 자원을 투입하는게 정책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에게 공무원 9급 자리 늘리기는 글쎄올시다 정책으로 보입니다만 ㅎㅎㅎ). 청소년과 교육에 더 미래지향적으로 투자하고, 극빈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그들을 교육하고 이런데 정부가 더 신경써야 아닐까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삼라만상이 펼쳐지겠지만 ^^ 그냥 개인적인 평소 생각입니다.

    • 바이커 2017.10.24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회평등의 이슈인 사회이동 문제보다는 현 세대에서의 불평등 축소가 더 중요하고 정책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기회평등 아젠다를 축소(실패사례=미국)하고 결과평등 아젠다를 확충(성공사례=북구유럽)해야 한다는게 제 지론입니다.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결과가 평등해 지는게 아니라, 결과가 평등하면 기회도 평등해지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Great Gatsby Curve).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하위계층의 사회적 inclusion에 문제가 없는 정도의 생활수준 유지가, 경제적 상위 계층의 혜택 축소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회를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요.

  5. Yu 2017.10.24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글을 올려주셔서 기쁩니다!!

    그런데 Great Gatsby Curve와 "결과가 평등하면 기회도 평등해지는 경향"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 바이커 2017.10.25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평등이 낮은 국가에서 부모 세대 소득과 자녀 세대 소득의 탄력성(=상관성)도 낮으니까요.

      좀 테크니컬하게 말씀드리면, 자녀 세대의 불평등(=Var(C))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소득의 탄력성(=b), 부모 세대의 불평등 정도(=Var(P)), 그리고 기타 요인(=Var(e))으로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Var(C) = b^2 * Var(P) + Var(e)

      여기서 b와 Var(P)의 상관성을 보여준 것이 Great Gatsby Curve입니다. 일반적인 가정은 둘 간에 관련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6. ㅇㅇ 2017.10.25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기엔 한국사회는 아직 너무 보수적이라고 봅니다..

    • 바이커 2017.10.25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긴 하지만 구성원 내 동질성이 커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7. Yu 2017.10.26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교수님.
    원래 포스팅과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번 포스팅이 평등이라는 키워드와 관련있는 글이이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평소 교수님 말씀에 공감하고 있음을 우선 밟힙니다. 아래의 사설에 대해 교수님과 같은 사회과학자는 어떻게 의견을 가지시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아래의 링크의 사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5/2017102503180.html

    • 바이커 2017.10.26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구체적인 숫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료비용은 기술 발전에 따른 변동이 커서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요. 현재 건강보험 흑자 규모가 큰데, 과거에 이렇게 크게 흑자를 볼지 모르고 건강보험비용을 부과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의료 로봇 개발로 의료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니까요.

      그것과 별도로 세금 걷어 재정을 확보한 후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확대해 수혜 계층을 늘리고 이들을 복지 기득권층으로 만들어 복지 유지를위해 어쩔 수 없이 세금인상을 고려하는 경로로 가는 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ㅇㅇ 2017.10.27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s 교수님 글 좀 많이써주세요 글재밌습니다 ㅎㅎ

  9. Ian Twois 2017.10.28 0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색해보니 1958년에 쓰인 저작인가 봅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에 참 뒤늦게 나온 단어가 이렇게 오용되는가 싶기도 하고,
    벌써 60여년 전에 이런 현상과 그 폐해를 생각한 개인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10. Eleanor 2017.10.28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교수님. 영국에서 Employment Relations 공부하는 석사생입니다. 오늘
    포스팅 내용 너무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수업시간에 앵글로색슨 모델과 스칸디나비안 모델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노동시장 모델 자체만 놓고 보면 두 모델 다 노동유연성이 높은 liberal market으로 동일하지만, 국가의 welfare 모델이라는 기준을 하나 더 넣으면 앵글로색슨 모델은 기회 평등이란 측면에서 그냥 safety net만 설정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게 맞고, 스칸디나비안 모델은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훨씬 적극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간 outsider들의 회복을 빠르게 돕는다고 하더라구요. 시장경쟁력과 복지 둘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단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 바이커 2017.10.29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세전 불평등으로 보면 스웨덴의 income & wealth inequality가 미국보다 그리 낮지 않습니다. 하지만 post-tax, post-transfer inequality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스웨덴의 세대간 사회이동은 미국의 세대간 사회이동 보다 높거든요.

  11. 델타건담 2017.11.04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 여름에 출간된 『힐빌리의 노래』같은 책들이 이런 가족 배경이 어떻게 개인의 지적 수준과 능력으로 녹아드는지에 대한 미시적인 경험담이겠죠.

  12. 민민 2017.11.09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