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녹색정의당 0석

sovidence 2024. 4. 14. 02:42

요즘 주로 들여다보는게 미국사회라서 블로그 포스팅이 예전보다 뜸한데, 그래도 총선에 대한 피상적 감상 몇 개는 있다. 

 

하나는 총선예측이다. 여론조사 회사와 관계자는 당연히 조사 데이터에 근거해서 예측하지만, 나름 논리를 가지고 총선 예측을 했던 몇 분이 생각난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는 3월에 "국힘 1당 확실"이라고 예측했다. 한겨레 신문에 그 논리를 실은 적도 있다. 이외에도 잘못된 예측을 한 분들이 꽤 된다. 이에 반해 유시민은 1월에 쓴 칼럼에서 총선은 민주당 안정적 우세로 진단했었다. 

 

제가 아는 가장 쪽집게 예측을 했던 분은 박종희 교수다. 논리인즉,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중반의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중간 평가 선거이고, 그 해 3-4월 대통령 국정 지지율 평균(34-38%)에 의석수 300을 곱하면 대략적인 여당의 의석수를 추정할 수 있다는거다. 그래서 102-114석 (평균 108석)이 예상된다는 것. 이 논리는 대통령제와 실질적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108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석이 어떻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당의 득표와 의석은 그 나름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 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이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은 상당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한국 유권자 니즈의 보수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정책 전선이 우측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기, 요기),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큰 문제라는 인식과  분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계속줄어들었고, 자신의 계층을 중층 이상으로 여기는 인식은 계속 늘었다. 바로 아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삶의 만족도는 계속 높아졌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정부의 개입을 통한 2차 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줄어들었다. 특정 집단에서만 그런게 아니고, 전반적인 경향이다. 

 

녹색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이유는 제도적 측면, 정치지형적 측면, 행위자의 전략적 측면에서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계층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의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에 대한 정책적 니즈와 대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지역구에서는 중도진보인 민주당을 찍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당의 원내 진입과 이들의 선명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구가 줄었다는 것. 

 

이를 한국의 불평등 증감 경향과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 진다. 한국의 불평등은 90년대 중반이후 2008년까지 최하층의 소득 하락과 그 이상 계층의 소득 상승으로  증가했고, 최근 15년 이상 최하층의 소득 상승으로 줄어들었다.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줄어드는 객관적 기반이 있다. 중하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산층이 경제적 처지의 개선을 경험했기에,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두고 논쟁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의 진보 호시절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급격한 위기에 빠지지 않는 이상, 진보와 재분배의 확대보다는 체계적 관리를 통한 안정적 성장을 유권자들은 더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진보 정책의 아젠다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유권자의 전반적 보수화 경향 속에서도 어떻게 진보적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한 방법은 정책의 보수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일부 분야에서라도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하는 것이고 (클린턴), 다른 하나는 좁은 기회의 창을 활용하는 것이다 (오바마). 아무리 유권자가 보수화되어도 경제 위기 때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니즈가 생기고 진보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바마가 2008년 위기 때 Affordable Care Act를 통과시킨 것처럼.  진보 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면 이 때 정책을 법제화할 수 있고, 이 후 진보적 정책은 당연히 누려야할 국민의 권리가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유권자는 항상 유럽 유권자보다 보수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책 수립의 역사적 변화는 유럽과 미국의 방향이 같았다. 

 

좁은 기회의 창이 열릴 때 다수파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