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시작 이후 KGSS에서 꾸준히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10점 리커트 척도에서의 계층 위치다. 주관적 계층인식(Subjective Social Status: SSS)이라는 표준화된 질문인데, 그 변화가 엄청나다. 

 

10점 척도에서 중위값은 5.5지만, 5점이 중간값으로 인식된다. KGSS에서도 5점의 응답 비율이 거의 매년 가장 높다 (단 한 번의 예외가 2005년. 4점 응답이 5점보다 5명 많다). 5점 응답이 꾸준히 25~30%를 차지하여, 항상 단봉형(unimodal) 분포를 보인다. 그래서 계층인식에서 5점 미만(1-4점)을 하층(=중간미만)으로, 5점을 중간층으로, 6점 이상을 상층(=중간초과)으로 구분해서 그 변화를 살펴보았다.

 

아래 그래프가 분포의 변화이다. 2003년에 KGSS 조사를 시작했을 때 자신의 계층이 중간이하라는 비율이 45~50%로 가장 많았다. 상층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자신이 중간층을 넘어선다는 비율이 45%로 가장 높고, 중간미만이라는 비율은 27%로 가장 낮다. 중간과 하층을 묶어도 55%로, 상층이라는 응답 비율 45%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특히 계층지위 상층 인식의 증가는 2012년 이후 박근혜 정부의 등장서부터 시작되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은 드라마틱한 계층인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모든 국가의 GSS를 점검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계층인식의 이러한 변화는 아래 포스팅한 빈곤층 지원 축소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의 급증과 일치한다.

 

이러한 변화의 의미가 무엇일까? 자신이 하층이라는 비율은 줄고 상층은 늘었으니 사회가 좋아진 것인가? 

 

우선, 계층인식 변화의 정치적, 정책적 함의부터. 

 

복지 정치, 정책의 측면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하위계층의 복지 확대는 자신도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인구의 비중이 높았다. 적어도 레토릭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하위계층의 복지 확대는 자신과 무관한 일로 인식할 인구 비중이 가장 높다. 

 

미디언 보터 이론을 적용하면, 계층의 우편도 분포(=상층이라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하층이라는 비율이 높은 분포)는 재분배 정책에 우호적인 투표를, 좌편도 분포(=상층이라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하층이라는 비율이 낮은 분포)는 재분배를 비토하는 투표를 하게 된다. 미디언 보터가 우편도 분포에서는 하위계층에 좌편도 분포에서는 상위계층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계층인식은 2010년까지만해도 우편도 분포였지만, 이제는 좌편도 분포로 바뀌었다.

 

유권자들의 인식이 이렇게 바뀌면 거의 모든 정당의 정책이 보수화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 정당이라 할지라도 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수적 정책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계층 인식 변화의 더 중요한 함의는 변화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드러난다. 

 

계층인식이 이렇게 급변한 이유가 2012년 이후 객관적으로 상층이 급증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KGSS의 질문은 상대적 위치이기 때문에 객관적 소득이나 자산의 변화가 계층인식의 급변을 반드시 야기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2010년대 이후 소득 하층의 상황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상층의 급증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제가 생각하기에 위와 같은 변화는 계층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유니버셜하게 자신의 주관적 계층을 객관적 계층보다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상층보다는 하층의 비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자신을 하위계층이라고 인식하기를 꺼려하고 상위계층이라고 인식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2010년대에 급증한 것이다.

 

계층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계층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한국 사회의 다른 변화와 일치한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성취를 능력의 결과로 간주하면, 자신이 하위계층이라는건 무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반대로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상위계층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과거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를 고쳐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을 때는, 가상의 상위계층을 설정하고 자신을 중간이나 하위계층으로 인식했다. 빈곤은 구조적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빈곤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 문제가 되었다. 중상층은 가상의 상위계층과 자신을 분리해서 인식하지 않고, 이제 가상의 하위계층과 자신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듯하다. 계층정체성의 큰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각자도생을 넘어, 패자에 대한 혐오가 늘어남. 자신은 패자가 아니기에 하층에 속할리가 없고, 중간층도 아니고, 상층에 속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우울한 진단이다. 계층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계층 정체성이 급변했다는 것.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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