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선진국 중 자산소득이 없는 가구가 가장 작은 국가, 한국

sovidence 2025. 4. 28. 23:10

불평등지표 중에서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게 자산불평등이다. 그리고 사회과학에서 완벽한 데이터 같은 건 없다. 언제나 데이터는 듬성듬성하다. 이 단점을 극복하는건 관점과 스토리다. 듬성듬성한 데이터를 꿰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가 그 다음에 생기는 또 다른 자료와 잘 연결되는지 봐야 한다. 

 

아래 그래프는 밀라노빅의 계정에서 따온건데, 자산 소득이 100불 미만인 가구의 비율이다. 보다시피 한국이 노르웨이 다음으로 가장 낮다. 다른 말로 한국은 적은 액수라도 자산 소득이 있는 가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선진국이다. 맨 오른쪽의 페루나 콜롬비아는 경제 발전 수준이 낮아서 그럴 수 있지만, 영국, 네델란드, 벨기에도 자산 소득 100불 미만이 80%에 달한다. 프랑스, 미국, 스웨덴은 60% 수준이다. 한국은 46%다. 

 

 

아래 표는 OECD 지표 중 하나로 순자산이 빈곤기준치의 25%에 미달하는 가구의 비율이다 (소스는 요기). 빈곤 기준치의 25%라는 의미는 자산을 처분하면 3개월은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산 버퍼가 있다는 거다. 그에 미달한다는건, 소득이 없으면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3개월 내에 빈곤선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 한국은 구사회주의권 국가 몇 개를 제외하고, 이 비율이 가장 낮다. 뿐만 아니라 2019년에서 2023년 사이에 그 비율이 더 낮아졌다. 

 

 

하위층의 자산을 보는 또 다른 국제비교 지표로 하위 40%의 자산점유율이 있다. 아래 표에서 보다시피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은 소액이라도 자산소득이 있는 가구의 비율이 어느 나라보다 높고, 하위 40%가 차지하는 자산의 비율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마지막 자료로 그래서 한국의 자산 불평등 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다. UBS Global Wealth Report라는 자료를 시각화한거다 (소스는 요기). 보다시피 비록 가장 낮은건 아니지만, 선진국 중에서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 데이터를 관통하는 스토리는 뭔가? 한국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2008년 이후 소득 불평등이 줄었고, 자산 불평등은 늘었지만, 전체 파이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가구에서 자산이 늘었다.

 

위의 OECD에서 가져온 두 개 지표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2019-2023 사이의 변화인데, 자산이 빈곤선의 25% 미만인 가구의 비율은 줄었는데, 하위 40%의 자산점유율도 줄었다. 달리 말해, 자산 중 상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었지만, 전체 경제 파이가 커지면서 하위계층에서도 자산은 늘었다. 아래 포스팅에서도 말했던 바인데, 2012-2017 사이에 자산불평등이 줄다가, 2017년 이후 증가하고 있는데, 그 정도가 크지 않고, 하위계층의 자산이 악화되면서 불평등이 커진게 아니고, 대부분의 가구에서 자산이 늘어나면서 불평등이 커졌다. 

 

이 데이터들이 모두 정확한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 빈곤율 등 대부분의 지표가 개선되거나, 설사 악화되더라도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이다. 한국은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총자산이 커지고, 전세 제도가 약화되면서, 자산 불평등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경향을 보고 자산불평등 증가를 과장해서 해석하면 안된다. 

 

대부분의 가구에서 자산이 증가했기에, 자산 상속도 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산 상속의 증가가 주변에서 보인다면,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산 상속 불평등의 감소 때문일 수 있다. 예전에는 최상층만 자산 상속을 했지만 (그래서 자산 상속 불평등이 극히 높았는데도 주변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상층도 자산 상속을 하기 때문에 자기 주변에 자산 상속자가 눈에 띌 것이다. 본인이 중상층이거나 그 언저리에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는 자산 상속의 주변 확대, 달리 말해 자산 상속 불평등의 감소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산 지니계수 1일 때는 1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하다는걸 (즉, 자산이 0이라는걸) 기억하시라. 이 상황에서 자산 불평등이 줄어들면, 주변에 자산을 상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건 문제가 아닌가? 문제 맞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불평등 증가, 양극화, 경제적 처지의 악화, 계급 이동의 약화와는 다른 문제다. 이게 과거에 생각하던 불평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걸 이해하지 못하면, 최근 나타난 한국 정치의 보수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놀라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처지가 개선되면, 유권자들의 정치적 태도가 수성으로 바뀐다. 보수화가 나타난다. 늘상 그런건 아니지만 경향적으로 그렇다. 이 블로그에서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몇 년 전 부터 계속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변화한 환경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진보적 아젠다의 실천 가능성을 고민하는게 좋지 않겠나.